지난달 31일 방송된 SBS 의 한 출연자가 화제에 올랐다. 방송에서 다른 출연진들을 돌봐주며 ‘엄마’ 이미지로 부각된 출연자의 안 좋은 과거를 폭로하는 듯한 글이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와서다. 제작진은 무분별한 루머를 막기 위해 시청자 게시판의 폐지 도 고려했지만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중순에는 ‘돌싱 특집’에 나온 한 출연자가 과거 에로배우였다는 의혹으로 화제가 됐고, 제작진은 “본인이 강력히 부인하지 않아 어느 정도 사실인지 추정할 뿐”이라며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 이 방송된 뒤에는 출연진의 과거에 대한 루머가 올라오거나 주거지나 집안 배경 등 이른바 ‘신상털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남녀가 짝을 찾아가는 실제만남과정을 통해 한국인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기획의도를 가진 이 출연자들의 사생활 침해로 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극적인 모습을 담는 카메라와 중계하는 내레이션

이 ‘애정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 방식을 보면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은 “여자 6호가 울고 있다”나 “엄마 없는 24년 동안 많이 울었다”, “남자의 사랑을 얻고 싶다” 등의 시선을 끌만한 상황을 중계만 하는 내레이션과 많은 여자들의 선택을 받은 남자의 표정과 그를 지켜보는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교대로 보여주는 편집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에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남자들의 대결구도를 연상시키는 듯한 인터뷰를 통해 출연진들의 관계를 설명한다. 카메라 앞에 놓인 가장 자극적인 순간들을 발췌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인터뷰를 더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깊은 의미나 프로그램이 제시하려는 메시지를 읽는 것은 무리다. 연출을 맡은 남규홍 PD가 “극적이고 재밌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방송인의 숙명”이라며 “드라마 같은 다큐멘터리”를 프로그램의 이상으로 삼은 것은 의 목표를 명확히 보여준다. 의 명분은 “한국인의 사랑을 조명”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자극적인 설정과 편집을 통해 심리게임이 있다. 시청자들이 을 보며 “한국인의 사랑”을 찾는 대신 다른 출연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듯한 출연자들에게 분노하거나, 화제가 된 출연자의 실제 신상부터 궁금해하는 이유다.

은 “세상의 잣대를 거두기 위해” 직업과 나이를 숨긴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자기소개 후 ‘재벌딸 여자 x호’, ‘사업가 남자 x호’ 등으로 불리고, 그것은 방송 후에도 그들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꼬리로 남는다. 인간이 관계를 맺어나가는 이유와 방법은 사라진채, 그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외적인 조건만이 남는 셈이다. 이혼경험이 있는 남녀가 출연한 ‘돌싱특집’이 여러 흠에도 불구하고 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것은 출연진들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짝’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싱 특집’이외의 출연자들은 학력, 재산, 미모 등 외적인 조건으로 불리고, 조건에 따라 대우받거나 차별받은 뒤 그 조건을 검증하려는 네티즌들에 의해 ‘신상털기’를 당한다. 에서 ‘해운회사 딸’같은 출연자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이 들썩거리는 이유다.

다큐멘터리와 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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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가장 다큐멘터리적인 부분은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라는 남규홍 PD의 말처럼 이 출연자들의 조건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낼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표면적인 정보로 기억되는 출연진이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사회 속의 인간이라기 보다는 구경거리인 ‘남’으로 소비되고, 그들을 전시하는 이 다큐멘터리로 기능한다고 할 수는 없다. 명백히, 은 쇼다.

지금 에 대한 논란과 관심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장르적 규정의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작진은 현실을 그대로 찍는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라고 주장하지만, 제작진이 자의적으로 출연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정체성에 따라 반응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정 조건을 내건 게임에 가깝다. 그게 리얼리티 쇼와 다큐멘터리의 차이다. 제작진이 ‘현실’을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의 기법으로 쇼를 찍으면서 시청자들은 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점에서 은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 더 나아가서는 ‘진정성’의 정의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현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는 아니다.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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