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와! 이겼다! 이겼어!
그리 좋냐. 한양대가 이겨서?

한양대가 이겨서 좋다기보다는 김세진 팀이 이겨서 좋다고 해야 하나?
뭐, 그건 나랑 비슷하네. 나도 성균관대를 응원했다기보다는 신진식이 있는 팀이 이기길 바란 거니까.

그런데 은퇴했다고 해도 오늘은 영 둘 다 생각보다 별로던데? 오히려 장병철? 그 사람만 되게 눈에 띄더라.
장병철 오늘 엄청 잘했지? 사실 프로 은퇴 이후에 다시 실업팀인 현대제철에서 뛰고 있으니까 현역에 가까운 선수이기도 하지만 은퇴 이전에도 정말 대단한 선수였지. 김세진 전성기 때 같은 포지션인 오른쪽 공격수로서는 현대자동차서비스의 후인정과 함께 가장 라이벌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니까. 국가대표에도 여러 번 뽑혔었고.

그런데 되게 기억에 남진 않는데? 배구를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 때 잘하던 선수들, 특히 저 장병철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선수는 제법 잘 기억하는 편인데.
다른 것보다 삼성화재에 있었다는 게 가장 큰 불운이었지. 같은 포지션에 아까 말했듯 김세진이라는 불세출의 선수가 있었으니까. 당시 삼성화재는 정말 베스트 6도 6이지만 그 외 선수층도 엄청 두꺼운 거의 사기 팀이었거든. 네가 좋아하던 김세진은 한양대의 김세진이야, 삼성화재의 김세진이야?
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당연히! 삼성화재.
왜 갑자기 송지효 성대모사를 하고 그래. 어쨌든 네 말처럼 김세진, 신진식 같은 스타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건, 그들이 실업팀인 삼성화재에 들어간 이후인 90년대 중후반부터야. 다시 말해 그들이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던 시기가 이 때라는 건데, 그건 당시 삼성화재가 얼마나 강한 팀이었는지를 방증하지. 오른쪽의 김세진, 왼쪽의 신진식은 요즘 프로야구로 따지면 한 팀에 류현진과 윤석민이 좌우 에이스로 같이 있는 거라고 보면 돼.

김상우는 왜 빼는데? 그 때 김상우가 삼성화재의 미모 평균을 얼마나 높여줬는데.
미모뿐이냐. 김상우는 자타공인 국가대표 센터였다고. 오늘 한양대에서 뛴 최강 세터 최태웅도 삼성화재에 있었으니까 당시 삼성화재가 얼마나 사기 팀이었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지. 볼을 공격수에게 배급하는 세터도 최고, 그걸 좌우, 가운데로 공략하는 공격수들도 최고. 이러니 당시 삼성화재가 실질적 국가대표 라인업이라고 했었지.

나도 배구를 되게 많이 봤던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삼성이 이겼던 거 같아.
9년, 자그마치 9년 연속 리그 우승을 했었다고. 슈퍼리그 시절이었던 1997년부터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까지 9년 동안 우승을 한 번도 놓쳐보질 않았지. 그리고 그 9년 중 5번은 김세진이, 5번은 신진식이 MVP를 타갔으니 정말 삼성화재의 싹쓸이였지. 사실 오늘 이렇게 한양대 대 성균관대로 라이벌 매치를 잡은 것도 그 탓이 클 거야. 90년대 중후반 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건 대학팀이 아닌 실업팀이었지만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을 팀이 없었으니까. 오늘 성균관대 OB로 출전한 임도헌의 현대자동차서비스가 나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만년 2위의 느낌이었지.

그러니까 삼성화재 대 아무개로 하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져서 한양대 대 성균관대로 한 거다?
비슷해. 두 학교가 실업팀을 위협할 만큼 잘하긴 했지만 지난번 라이벌매치였던 농구대잔치 시절의 연세대, 고려대처럼 아예 실업팀 대 아마추어의 판도를 흔들고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어. 이번 방송에서 두 팀의 과거 라이벌전이라고 보여준 1999년 경기 역시 이번처럼 졸업생 대결이었어. 그 때도 삼성화재의 동료인 김세진 대 신진식의 대결이 가장 큰 이슈였고. 같은 팀이라 싸울 수 없던 두 스타가 어떻게 부딪힐지 다들 굉장히 보고 싶어 했거든.

그럼 농구대잔치의 연고전 같은 진정한 의미의 최강 라이벌전이 있었던 건 아니네?
90년대 말까지의 배구 전성기 시절만 보면 그래.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 전성기가 몰락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 네가 말한 연고전의 경우 두 팀 모두 우승을 노릴 대등한 전력을 갖춘 라이벌전이었기 때문에 누가 이길지 예상하기 어려웠고 그러니 더 응원할 맛도 났지. 그런데 대중적 인기의 중심에 있던 삼성화재가 너무 두터운 선수층을 확보하고 매년 당연하게 우승만 하면서 그런 긴장감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야.
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김세진과 신진식을 다시 코트에서 보게 되다니
그런데 좋은 선수를 데려가서 좋은 팀 만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바로 삼성화재의 논리고, 신치용 감독의 논리인데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야. 다만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다른 팀의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슈퍼리그의 재미가 줄어들었다는 것 역시 부정하긴 어려울 거 같아. 아까 말한 장병철 같은 좋은 선수가 같은 팀의 김세진 때문에 코트보다 벤치에 오래 있는 것보다는 다른 팀의 주전 에이스로서 김세진과 대결하는 것이 리그 전체적인 효율성이나 경기의 재미를 위해 좋지 않겠어? 물론 좋은 선수를 잔뜩 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한 종목에서 9년 연속 우승을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서 오늘 경기처럼 라이벌이 중요한 거구나.
오, 간만에 맞는 말 하는구나. 과거 허동택 트리오의 기아자동차나 전성기 해태 타이거즈처럼 한 스포츠를 지배하는 왕조의 등장은 분명 그 자체로 흥행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게 또 너무 고착화되면 재미가 떨어지거든. 그게 그 팀들 책임은 아니겠지만. 그런 판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대학농구의 강세나 신바람 삼총사 시절의 LG 트윈스가 매력적이었던 거고. 다행히 최근의 프로배구는 전력도 많이 평준화됐고, 김요한이나 문성민 같은 미남 선수들이 골고루 흩어지면서 다시 인기를 조금씩 모으고 있어. 무적의 삼성화재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나는 더 바람직하다고 봐.

그러고 보면 이제 슬슬 우리 대화도 조금씩 평준화되는 거 같지 않아? 나 많이 발전했지?
그래. 관계도 발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제공. XTM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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