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 TOP 밴드 >, 21세기형 문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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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 TOP 밴드 >는 독보적이다. 이 쇼는 24팀을 가리는 첫 번째 본선부터 출연자들에게 완곡을 소화하도록 요구한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밴드든 결코 중간에 자르지 않는다. 지난 시즌의 Mnet 와 MBC 은 결선에서도 출연자들에게 1절정도 분량의 노래를 부르도록 했고, 일부 출연자들은 그 분량에서마저 불안한 실력을 드러냈다. 반면 < TOP 밴드 >는 16강 출연자들이 결선 전 모인 MT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연까지 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과 록부문 최우수 록 노래 부문을 수상한 게이트 플라워즈가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프로그램의 위력이다.

성장만큼 중요한 다양성과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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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 밴드 >가 나 보다 무조건 낫다는 의미는 아니다. 와 의 핵심은 성장 서사에 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출연자들은 심사위원들의 트레이닝을 통해 발전한다. 지난 시즌 에서 강승윤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다 ‘본능적으로’로 반전을 만들었다. 기존 대형 기획사에서 발굴하지 못한 ‘스타’의 원석을 찾아 가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두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다.

반면 < TOP 밴드 >의 심사위원들은 밴드에게 각성과 성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그룹 BBA에게 연주 테크닉을 세심하게 알려줄 뿐 이 밴드에게 혁신적인 변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밴드들에게 종종 “실력은 충분한데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타가 되는 것이라면 처럼 출연자들이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대중이 요구하는 것을 수용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톡식이 굳이 2인조를 유지하는 것은 스타가 되는 것 이전에 그들의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 TOP 밴드 >의 키워드는 성장이나 스타가 아니라 그 많은 밴드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기회 자체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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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팀을 가리는 본선에서 < TOP 밴드 >는 밴드가 받은 점수에 따라 실시간으로 순위가 바뀌는 방식으로 진출 팀을 골라낸다. 첫 번째 참가팀은 무조건 한 번은 1등을 할 수 있고, 마지막 참가 팀은 24위 안에만 들면 무조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나 은 합격 여부가 실시간으로 정해지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제작진이 ‘슈퍼위크’에서 장재인의 탈락과 재합격 과정을 시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시나리오가 있는 드라마처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다. 밴드의 순위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 TOP 밴드 >는 이런 편집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력과 실력이 부딪치며 살아남은 자와 탈락한 자들의 희비가 반복된다.

< TOP 밴드 >에 대한 시청자의 희비도 이 순간부터 갈린다. 16강전까지 < TOP 밴드 >는 밴드의 실력과 정체성이 대결을 통해 부딪치는 것만으로 쇼를 끌고 왔다. 톡식의 드러머 김슬옹은 귀가 들리지 않는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들의 예선무대 이후 김슬옹의 개인사를 더 파고들지 않는다. 16팀의 밴드들 중 대다수는 평소 어떻게 사는지조차 안 보여준다. 쇼의 관점에서 보면 < TOP 밴드 >는 뚜렷한 캐릭터도, 성장의 서사도 없는 재미없는 쇼일 수도 있다. 하지만 < TOP 밴드 >에서 밴드들은 1:1로 대결하고, 실력에 따라 합격과 탈락이 바로 갈린다. 24팀을 뽑는 본선의 심사는 뮤지션들 중심의 심사위원에 10명의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평가한 점수의 평균으로 결정됐다. 성장 가능성, 캐릭터, 재미 등 지금 이 순간의 실력으로 평가될 수 없는 요소는 배제된다. 16강전에서 톡식과 브로큰발렌타인이 대결을 확정되자 출연자들은 ‘죽음의 조’가 나왔다며 웅성거렸다. 브로큰발렌타인은 톡식처럼 캐릭터가 조금이나마 부각된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된 대결과 검증의 과정은 두 팀 모두 16강에서 멈출 팀이 아니라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뚜렷한 캐릭터나 드라마가 없어도, 밴드의 색깔과 실력은 밴드들의 대결이 계속될수록 쇼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를 만든다. < TOP 밴드 >의 승자는, 정말로 강하다.

필요한 것은 잘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우직함
[강명석의 100퍼센트] < TOP 밴드 >, 21세기형 문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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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재미있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 것이다. 하지만 < TOP 밴드 >는 가 다루지 않은 영역을, 그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팝 펑크 밴드와 라틴, 헤비메틀 팀이 모두 1:1로 붙고, 대결을 통해 그들의 실력차가 드러난다. 참가자들 중 톡식의 기타 톤은 유독 기억에 남고, 블루스적인 색채가 담긴 게이트 플라워즈의 보컬은 공연장 전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졌다. 모든 시청자가 이런 요소를 눈여겨보지는 않는다. 에서 심사위원들이 노래와 춤에 대해 언급하는 것과 달리 “유일하게 드럼을 제대로 쳤다”거나 “팀의 연주가 따로 따로 논다”는 < TOP 밴드 > 심사위원들의 말은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한 긴장감 넘쳤던 24팀의 선발전에 비해 의 ‘멘토 스쿨’처럼 심사위원들이 네 팀씩 트레이닝을 맡았던 24강전은 프로그램 특유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신대철은 어린이들 앞에서 나름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했던 게이트 플라워즈에게 때로는 지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유지해야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 TOP 밴드 >가 처럼 되지 않을 바에야, 제작진은 밴드의 우직함과 치열함을 밀고 나가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 TOP 밴드 >는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참가자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들의 실력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밴드 음악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 TOP 밴드 >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때론 쇼와 함께 교양을 전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새로운 문화 사업이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 아닐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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