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다음 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1. 매일 금주하고 꾸준히 운동해 몸짱이 된 사람. 2. 웹서핑 한 번 하지 않고 공부해 명문대에 붙은 사람. 답은 2번이다. 아, 명문대에 붙어서는 아니다. 웹서핑 한 번 하지 않았다면, 아직 와 , 등 웹툰을 한 편도 보지 않았을 테니까. 부럽다, 인생의 즐거움이 아직 이렇게나 잔뜩 남아있다니.

물론 세상에는 웹툰 외에도 보고 즐겨야 할 콘텐츠가 잔뜩 있다. MBC 도 봐야하고, 와 도 봐야 하며, 주성치 영화들도 모아 놓고 봐야 한다. 하지만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작품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포털 사이트의 웹툰은 독보적이다. 3호선을 타고 갈 때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던 ‘옥수역 귀신’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회사 컴퓨터로 네이버에 접속해 웹툰 카테고리에 있는 을 찾아보면 된다. 귀찮으면 그냥 검색만 해도 된다. 가격? 무료다. 500회를 넘긴 를 정주행하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우스 휠을 돌릴 손가락의 지구력뿐이다. 다른 무엇보다 콘텐츠만큼은 공짜로 즐기는 걸 좋아하는 한국에서 웹툰은 도서대여점 이후 가장 센세이션한 플랫폼이자 콘텐츠다.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자유로운 열린 공간
[위근우의 10 Voice] 웹툰이 삶을 윤택하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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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웹툰이 정말 볼만한 콘텐츠인 건, 독자에게 열린 것만큼 창작자들에게도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네이버 등 주요 포털 웹툰 카테고리에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할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 R에 관해서 >의 이림, 의 박용제, 의 SIU 등 이 공간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한 작가들도 상당히 많다. 영화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면을 이용한 출판 만화의 경우 공모전에 응모하거나, 작품을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웹툰의 경우 이런 아마추어 도전 공간을 통해 독자들과 바로 만날 수 있다. 또한 출판 만화에 비해 색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은 표현력이라는 부분에서 웹툰만의 장점으로 부각된다. 최근 전문 인력 모집으로 북적대는 종합편성채널 이상으로 이곳이 핫한 건 그래서다. 말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 작가들은 비교적 쉽게 시각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대중 앞에 공개할 수 있고, 덕분에 다양한 장르와 세계관이 포털 웹툰 공간 안에 모일 수 있게 된다. 중세형 판타지 , 좀비물 , 을 연상시키는 초능력 히어로물인 처럼 한국의 TV와 영화에선 보기 어려운 본격 장르물을 비롯해, 한국형 히어로물이라 해도 좋을 나 전통 신화를 모티브로 한 , 한국 입시제도와 사학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던 처럼 지금, 이곳의 이야기들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너진 출판 만화 시장과 포털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환경에서, 웹툰은 여기저기서 출발한 창작욕구의 물줄기들이 모이는 거대한 바다가 되었다.

요즘 TV를 트는 것보다 웹툰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면 바로 이러한 다양성 덕분일 것이다. 여주인공의 억지 신데렐라 혹은 캔디 스토리, 모든 사건은 남녀 주인공의 멜로로 귀결되는 드라마들이 편성표의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마다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을 들고 나온다면, 웹툰은 요일별로 전혀 다른 스타일과 장르의 작품들로 편성되어 있다. 스타 캐스팅으로부터 자유로운 작가들은 굳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토리를 선회할 이유가 없으며, 자신이 의도하는 포인트에 창작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가령 최근 네이버에 연재 중인 과 MBC 를 비교해보자. 둘 다 대학 생활을 그리고, 둘 다 학교 킹카인 유정과 이신(정용화)와 여주인공의 미묘한 로맨스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진행 방식은 전혀 다르다. 심리 스릴러를 표방한 웹툰과 청춘 성장 드라마의 장르적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등록금 때문에 하루하루가 빠듯하고,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하 관계가 뚜렷한 대학 생활 안에서 킹카 남자 선배와 평범한 여자 후배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권력적 구도를 파고든다면, 에서 100주년 기념 공연과 인물들의 욕망은 결국 이신과 규원(박신혜)의 로맨스를 위해 봉사한다. 너무 퍽퍽해서 은 부담스럽다고? 그렇다면 를 추천한다. 허진호 감독 초기작에서 느끼던 첫 만남의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웹이라서 가능한, 다양한 발전가능성의 웹툰
[위근우의 10 Voice] 웹툰이 삶을 윤택하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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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런 다양성이 이제는 웹툰이라는 영역 자체의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일별로 다양한 장르가 업데이트 되어야 하는 양대 포털 웹툰 카테고리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직 덜 발전된 그래서 발전가능성이 풍부한 장르 안에서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강풀, 강도하 같은 탁월한 스토리텔러들이 개척했던 초기에는 출판 만화나 시나리오에 쓰일만한 내용들을 담아낼 새로운 그릇으로서 웹툰이 등장했다면, 이제는 그 그릇이기에 가능한 연출과 스토리가 등장하고 있다. , , 의 하일권이 서서히 진행되는 배경색 변화나 인물 간 간격을 넓히는 식으로 종 스크롤만의 특성을 이용해 컷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리적 표현을 보여준다면, 최근 단편 ‘옥수역 귀신’으로 화제가 된 호랑 작가는 BGM과 플래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타입이다. 심지어 로 출판 만화의 획을 그었던 윤태호 작가 역시 에서 스크롤을 내릴수록 긴장감이 고조되는 연출로 스릴러의 맛을 살렸다. 마샬 맥루한의 ‘Media is message’라는 잠언은 웹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여 웹툰은 2011년 지금, 가장 핫한 콘텐츠다. 몇 몇 인기 웹툰이 엄청난 조휘수를 기록하고, 조석이나 이말년 같은 일부 웹투니스트들이 셀러브리티처럼 소비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에 한 편 이상은 정말 재미있게 볼만한 작품이 업데이트되기 때문만도 아니다. 자기 복제의 함정에서 아직까진 자유로운, 발전 가능성과 실제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 때문이다. 대중적이라는 말과 실험적이라는 말이 적어도 현재의 웹툰에선 공존할 수 있다. 웃기고, 감동적이고, 무섭고, 화끈한데, 심지어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걸, 안 볼 도리가 있나.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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