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은 몰랐다. 스타리그에서 3회 우승한 ‘투신’ 박성준 프로게이머가 “난 게임에 소질이 없나봐요”라며 고개를 떨구다니. 스타리그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그에게 굴욕적인 순간을 안겨준 건 다름 아닌 온게임넷 였다. ‘금방 왕 볼 것 같은 도전자’라는 자막이 민망할 정도로, 그는 콘솔 게임 ‘삐뽀사루 겟츄 3’을 시작한 지 단 2분 만에 “버튼 조작하는 법을 모른다”며 헤맸다. 이는 게임‘중계’채널에서 게임‘예능’채널로 거듭난 온게임넷의 현재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장변화의 민감함이 가져온 결과물
온게임넷│‘게임맹’이라도 괜찮아
온게임넷│‘게임맹’이라도 괜찮아
이러한 게임채널의 변화는 게임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게임 채널은 스타크래프트중계 채널과 거의 동의어였다. 하지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대부분이 그러하듯 스타리그는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등의 스타플레이어와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소위 ‘입스타’라고 하는 각 경기에 대한 분석이 일종의 역사처럼 쌓여갔다. 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던 여성들도 게임을 통해 형성된 문화에는 친근감 있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롯데 자이언츠 응원 문화를 즐기면서 야구를 알게 된 사람들처럼. 스타리그 해설자들이 공식 중계석상에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저녁을 먹으며 털어놓는 온게임넷 는 이러한 게임 문화를 가벼운 토크형 예능으로 풀어내며 2006년 첫방송 당시부터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 문화의 예능화인 셈이다. 이런 발 빠른 행보를 보인 온게임넷이 스타크래프트의 하락세에 민감하게 반응한 건 당연해 보인다. “10년 전만 해도 PC방 컴퓨터 50대 중 49대가 스타크래프트로 도배됐지만 점차 유저들이 향유하는 게임이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남윤승 온게임넷 사업2팀장의 설명처럼, 스타크래프트만을 다루다가는 채널 경쟁력이 하락할 위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온게임넷은 좀 더 대중적인 채널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그 안에서 유저들의 취향을 세분화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가 “양민(프로 급에 미치지 못하는 초보자나 일반인)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유상무와 장동민”을 내세워 배틀넷에서 양민 취급을 받는 유저들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면, 왕을 만나고 끝판을 깨는 것이 목표인 는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프로그램이다. 그 스스로 게임 유저가 대부분인 제작진은 각 유저에게 소구하는 포맷을 만들어냈고, ‘양민’이나 ‘용자’처럼 유저들이 자주 사용하는 게임용어를 활용해 프로그램명을 지으며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게임 문화를 이끄는 힘
온게임넷│‘게임맹’이라도 괜찮아
온게임넷│‘게임맹’이라도 괜찮아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채널의 정체성을 구축해 온 온게임넷이 어느새 그들 스스로 새로운 게임 문화의 주체가 된 건 그 때문이다. 현재 이들이 만든 예능은 게임의 룰이 아닌 게임을 즐기는 법을 가르쳐준다. 예쁜 신애를 보기 위해 를 시청하거나 낯익은 허준 때문에 를 보는 시청자들은 스타크래프트와 페르시아의 왕자를 할 줄 몰라도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점차 까칠해지는 허준이나 공포게임을 하다가 겁에 질려 말을 더듬는 의 오성균을 보면 그 계산되지 않은 리액션에 폭소하게 된다. 이렇게 ‘덕후’는 ‘덕후’대로 일반 대중들은 그들 나름대로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된 온게임넷은 어쩌면 게임을 소재로 한 리얼리티 예능채널로 발전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재미를 찾아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박성준 프로게이머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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