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시티헌터>, 한국형 슈퍼 히어로물에 대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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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의 이윤성(이민호)은 원작인 동명의 만화보다 영화 의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과 닮았다. 브루스 웨인이 합법적인 신분으로 자신을 위장한 채 배트맨으로 활동하듯 이윤성은 청와대 직원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시티헌터로 활동한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활동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막대한 돈 때문이듯, 이윤성도 양부 이진표(김상중)가 지원하는 돈을 받는다. 그리고 에서 브루스 웨인이 범죄자를 연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에게 넘겨주듯, 이윤성도 김영주(이준혁) 검사에게 복수대상인 ‘5인회’를 넘긴다.

제작진이 정말 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11년이 보다 가 어울리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원작의 주인공 사에바 료는 도시의 자유인이었다. 신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는 법망을 피해가며 경찰 대신 개인의 문제를 해결했다. 거대한 도시에서 개인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때, 도시의 빌딩 속에서 숨으며 법 바깥에 있는 시티헌터가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이윤성은 청와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온갖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신분을 없애는 것 보다 위조하는 것이 덜 위험하다. 김영주가 이윤성의 신분 세탁을 추적하는 과정은 숱한 신분 위조가 판치는 지금이기에 더 설득력 있다.

배트맨보다 더 바쁜 한국형 히어로, 이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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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브루스 웨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벌이다.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자이자,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그는 브루스 웨인/배트맨 양쪽의 신분으로 그가 사는 고담시의 시스템을 바꾸려 한다. 배트맨은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인들을 직접 응징하고, 브루스 웨인은 하비 덴트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부패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한다. 그의 부모 역시 시 전체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윤성은 브루스 웨인 같은 재벌은 아니다. 이진표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만, 그는 어린 시절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았다. 그가 한국에서 가난한 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도 10대 시절 배식중(김상호) 등과 함께 고생한 점이 작용한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이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세계의 영웅이라면 이윤성/시티헌터는 평범한 사람들 안에서 자수성가형 영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조금이나마 남은 세계의 영웅이다.

는 이 지점에서 와 다른 길을 걷는다. 이윤성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배식중이나 김나나(박민영)와 같은 서민에 더 가깝다. 그는 브루스웨인이 그러하듯 부패의 핵심이 되는 거대한 악인과 싸우는 동시에, 밥을 굶는 아이를 보면 그 자리에서 밥을 먹여야 직성이 풀린다. 이윤성의 동료 고기준(이광수)은 시티헌터에 대해 “홍길동처럼 탐관오리들 비리 까발리고, 훔쳐간 돈 뺏어다가 반값등록금도 실현”한다고 말한다. 2011년이지만, 속 대중은 조선시대의 홍길동 같은 영웅을 원하고, 이윤성도 대중에게 직접 돈을 주며 호응한다. 이윤성은 브루스 웨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하지만 시티헌터나 소설 의 장총찬처럼 시민들과 직접 만나고, 홍길동처럼 대중의 요구를 총족시킨다.

조선시대와 1980년대, 그리고 21세기의 영웅상이 한 몸에 뒤섞인 이윤성의 등장은 지금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에 등장하는 대학재단 비리와 반값 등록금 논쟁, 군수 업체 선정 비리, 산재로 백혈병을 앓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신문 사회면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슈들은 정치가, 대기업, 대학 재단 등 거대 자본가나 권력가들이 서민 개개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비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도시는 거대해지고, 네트워크는 개개인의 ‘신상’을 털 수 있을 만큼 도시 끝까지 퍼졌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가나 자본가는 마음만 먹으면 과거의 탐관오리처럼 시민들의 돈을 직접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 고도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브루스 웨인은 시스템을 부패시키는 자들과 싸우면 된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모두 급속하게 현대화, 도시화된 한국의 이윤성은 거대한 힘과 싸우는 동시에 그들에게 고통 받는 시민들도 직접 구해야 한다.

, 원작에 대한 훌륭한 재해석
[강명석의 100퍼센트] <시티헌터>, 한국형 슈퍼 히어로물에 대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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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의 ‘처단’이 5인회의 비리를 폭로해 여론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몰래카메라로 5인회의 비리를 찍어서 인터넷을 통해 뿌린다. 여론이 모여 5인회와 같은 부패한 권력자들의 비리를 고발하고 감시할 수 있을 때 그들에 대한 단죄가 이뤄진다. 네트워크는 한 개인의 신상을 낱낱이 통제하지만, 동시에 시민의 연대와 정보의 공유를 가능케 한다. 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1980년대 드라마에서 장총찬이 싸웠던 건 사회 곳곳에서 활개를 치는 작은 악인들이었다. 그 때 시민들은 그들 뒤에 있는 거대한 악인들에 대해 알기도 어려웠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2011년의 는 인터넷을 통해 거대한 적에 대해 알 수 있고, 그들과 싸울 수도 있다.

이진표와 이윤성이 복수의 처단 방식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은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진표는 사회적인 처단이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직접적인 복수를 통해 개인의 원한을 푼다. 반면 이윤성은 모든 대중이 악인의 실체를 알고, 더 나은 세상이 되길 원한다. 이진표가 1980년대 장총찬, 또는 시티헌터와 같은 개인의 처단을 추구한다면, 2011년의 이윤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대중의 처단을 원한다. 이윤성은 모든 복수를 끝내고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길 원한다. 사회에서 홀로 떨어져 있던 슈퍼 히어로의 시대는 끝나고, 영웅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 가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식의 슈퍼 히어로물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악인들의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는 지금 시민들이 가진 한국사회에 대한 정서의 평균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는 원작의 스토리와 동떨어져 있지만 원작에 대한 훌륭한 재해석이다. 거대한 도시가 사람들을 점점 개인화 시키던 1980년대 일본에서 사설 해결사 시터헌터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도시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 거대한 악인과 시민이 직접 부딪치는 순간 또 다른 시티헌터가 등장했다. 홍길동과 장총찬과 브루스웨인의 시대가 뒤죽박죽 섞인 한국에서, 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2011년 한국’에 어울리는 슈퍼히어로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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