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최근 조선 시대의 두 여성 인물이 나란히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 명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호출해낸 춘향이고, 또 한명은 투신 체험 재현극으로 되살아난 논개다. 김 지사는 지난 6월 22일 한 강연에서 에 대해 ‘변 사또가 춘향이 따 먹으려는 이야기’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고, 논개 순국 체험은 여자 어린이들이 왜군 장수 인형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재연한 것이 문제시 되었다. 두 논란은 여전히 조선 시대 유교적 가부장제의 시선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지금 우리 사회 젠더감수성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띤다.

2011년으로 소환된 춘향과 논개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먼저 김지사 발언의 가장 큰 문제는 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선정적인 이슈만을 부분적으로 가져와 원전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점이다. 억압받는 민중의 한과 저항이 잠재된 텍스트로서 의 전복성은 ‘따 먹는다’는 저급한 표현 아래 변학도와 춘향의 정조 게임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논개 순국 재현극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원래 이 행사는 경남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논개제’의 하이라이트로 6년 전부터 실시되어 온 이벤트였다. 하지만 의기 논개의 애국충정을 기린다는 본래의 취지는 어린이들이 왜구 인형을 껴안고 인공 의암 바위에서 에어매트 위로 떨어져 내리는 조악한 재현 아래 단순한 스펙터클로 제한되고 만다.

두 논란이 동일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근본적 이유는 그 바탕에 여성을 파편적으로만 재현하는 가부장적 시선의 뿌리 깊은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언어’라고 요약했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말처럼, 남성 중심의 역사는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를 몸의 이슈로 환원시킨다. 춘향과 논개의 이야기 역시 그녀들의 영웅적 면모를 기리면서도 결국 각각 기생의 딸과 기생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지켜낸 절개라는 여성적 덕목으로 귀결된다. 여성의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존재성은 가부장제가 규정한 그 미덕 안에서 왜소화되고 파편화된다. 가부장적 시선의 문제점은 이처럼 인간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의 상실이다. 앞서의 춘향과 논개 논란은 당사자들이, 총체적 관점을 가로막는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시선에 길들여진 탓에 이야기의 전체적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것이다.

와 , 내면화된 가부장적 시선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젠더감수성이 중요해지는 건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것은 타자로서의 여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그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열린 시선을 제공한다. 오늘날의 사회적 차별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재생산되기 때문에, 젠더감수성을 민감하게 유지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춘향과 논개 논란이 직설적인 말과 이미지로 젠더 이슈를 건드렸다면, 최근 방영되는 두 드라마는 이야기의 형태로 성별 고정 관념을 강화하는 젠더감수성 제로의 사례들이다.

MBC 와 SBS 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젠더감수성의 둔감함은 춘향과 논개 논란의 짝패에 버금간다. 두 드라마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큰 틀 안에 여성을 왜곡된 성적 이미지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는 신분상승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며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난한 고아 출신의 장미리(이다해)라는 가면의 신데렐라 이야기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장미리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일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과거에 성적으로 착취당했고 모국에 와서도 성희롱을 당한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는 여성이 남성들을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설정은 공감을 얻기 힘들뿐더러, 첫 회부터 여러 차례 반복된 미리의 성폭행 위기 상황을 선정적으로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매우 불편하다. 는 여성이 주인공이되, 그 존재를 성적 이미지로 축소하고 왜곡해서 재현하는 반여성적 텍스트다.

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 드라마는 애초 기생문화를 재조명하겠다는 거창한 의도와 달리 접대부의 임무에만 매달려 있는 기생들의 묘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주인공 단사란(임수향)은 장미리와는 반대편의 지점에서 왜곡된 성적 이미지의 존재로 재현된다. 사란에게 중요한 미덕은 정절이다. 드라마는 사란의 기생 시절 머리 올리기 에피소드에서 여자의 모든 일생이 처음 순결을 잃는 그 순간에 달려있다는 듯 극 중 최고의 스펙타클 요소들을 쏟아 붓는다. 사란이 곱게 목욕하는 장면부터 혼례식이 열리는 정원을 꾸미는 모든 과정이 공들여 재현 됐고, 그녀가 마지막까지 왕자님 아다모(성훈)를 위해 순결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극 최고의 서스펜스로 묘사되었다. 결국 사란은 정절을 지켰고 이는 왕자님과의 결혼으로 보상받는다. 임성한 월드의 신데렐라 공식이다.

젠더 감수성이 절실한 시대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누가 춘향이와 논개를 욕하는가
와 의 사례는 남성 중심적 시선이 작가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내면화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춘향과 논개 논란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성차별적 재현의 한계를 공통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두 작품은 미리가 목표를 위해 레즈비언이라 속이고, 라라(한혜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게이라고 거짓말한 것처럼 동성애 소재를 맥락 없는 농담으로 소비한 전력까지 꼭 닮았다. 두 사례를 볼 때 젠더감수성이 둔감하다는 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유산에 더해 인간을 서로 경쟁하는 존재로 무력화시키고 공동체라는 관계에서 탈 맥락화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맞아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위의 네 가지 풍경들은 그러한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젠더감수성은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 사람의 윤리다.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