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달변가에 웃기기까지 하다. 엄마 친구 아들이었으면 질투가 났을 법한 두 남자의 대화에 이어폰을 낀 채 지하철에서 혼자 피식 거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이하 <빨간책방>)에서 메인 코너 ‘책, 임자를 만나다’를 책임지는 적임자 이동진과 흑임자 김중혁은 책에 대한 경외, 서로에 대한 애정을 허허실실 농담에 실어 들려준다. 직접 만나 들어 본 두 사람의 대화도 다르지 않았다. 저급한 개그 속에 고급스런 식견이 숨어 있는 두 사람의 내공이 이동진의 말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작은 수다”로 “굉장한 위안”을 전해주는 <빨간책방>의 영업 비밀이었다.

Q. <빨간책방>이라는 유혹적인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동진: 회의 때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우리도 처음엔 서정 ‘돋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런데 니나 PD가 내가 빨간 안경을 쓰고 빨간색에는 정열적인 느낌도 있으니 <빨간 책방>이 어떠냐고 얘기하는 순간 ‘아 이게 답이구나’ 싶더라.

Q. 김중혁 작가의 섭외가 ‘신의 한 수’였다.

이동진: 게스트를 모셔서 같이 얘기하는 포맷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이자 유일하게 떠 오른 분이었다.

김중혁: 유일하진 않았지 않나.

이동진: 유일했다. (웃음) 물론 혹시 거절하실까봐 나중에 한두 명을 더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김)중혁 작가님이 그 패를 안 받았으면 빨간 책방이 버얼건 책방이 되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든 핵심적인 순간이 있는데 우리한테는 그게 중혁 작가님의 섭외였던 것 같다.

Q. 두 분이 원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건가.

이동진: 예전에 술자리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제대로 얘기를 못 했었다. 그런데 중혁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DJ를 맡고 있는 MBC <꿈꾸는 다락방>에 모셨다. 그 때 얘기를 하면서 작품과 사람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고 재밌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재미나 프로그램과의 적합도를 떠나서 내가 이 사람하고 같이 하고 싶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책, 임자를 만나다’는 두 사람이 계속 얘기를 하는 거라서 아무리 말을 잘 하는 작가라도 함께 얘기하고 싶은 매력이 없으면 안 되니까. 옆에 있는데 이런 얘기하려니까 굉장히 민망하네.

“팟캐스트는 독서 행위의 핵심과 상당한 근친 관계”
&lt;빨간책방&gt;│“듣는 이와 옅은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Q. 자, 그럼 김중혁 작가가 화답할 차례다. (웃음)

김중혁: 나는 돈 때문에 했다. 돈이 없어 가지고.

이동진: 우리가 엄청 많이 드리거든. (웃음) 어우, 사실인 줄 알겠다.

Q. 김중혁 작가는 첫 방송 때 뭔지 잘 모르겠어서 시작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김중혁: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얘기할 줄도 몰랐다. 한 30분 정도 잠깐 들어가서 얘기하고 오면 될 줄 알았는데 점점 늘어나서.

이동진: 어차피 출연료는 똑같으니까 30분 쓸 거 두 시간 쓰면 비용이 1/4로 다운되는 거다.

김중혁: 그렇게 곰탕 우려내듯이 우리면 나중에는 옅어져서 좋지 않지.

이동진: 그 때 가서 게스트 바꾸면 되지. 어허허허.

김중혁: 이제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진이 다 빠진 것 같다.

이동진: 아니, 이제는 진행자가 바뀔 것 같다. 어허허허.

김중혁: 처음부터 팟캐스트라는 다른 형식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그리고 전에 어떤 일로 이동진 씨한테 뭘 제의한 게 있었는데 그걸 거절당했다. 그런데 난 당신과 다르다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면서 큰 짐을 지우고자 한 거다. 하하하하.

이동진: 예수님 같은 분이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 대시고.

Q. 이동진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처음 제안했을 때 부담감을 나타냈다던데.

이동진: 내가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주의긴 한데 한편으론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주의가 또 있다. 영화 평론가인데 영화가 아닌 책 전문 방송에 내가 주도가 되어서 한다는 게 뭐랄까 축구 선수가 골프 선수를 잠깐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까봐 걱정했다. 다른 리그에 있는 사람이 와서 괜히 휘젓고 다니면 보기 싫지 않나. 혹시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같은 게 있었지.

Q. 당신이 굉장한 다독가라는 걸 아는 사람도 있지만 영화평론가로 익숙한 사람들은 왜 이동진이 책 팟캐스트를 하는 걸까 궁금했을 거다.

이동진: 나도 기획한 사람이 아니라 제안을 받은 사람이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도 왜 책을 나랑 같이 연관시켜서 떠올렸을까 궁금했다. 일단 위즈덤하우스는 내가 프리랜서도 독립하고 나서 낸 책을 모두 같이 낸 출판사다. 그 과정에서 북 콘서트 같은 행사를 통해서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가 어느 정도 쌓였고, 거기서 가능성을 보신 게 아닐까 추측한다. 어쨌든 결국에는 듣는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는 굉장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Q. 김중혁 작가는 현역 작가라서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

김중혁: 현역 작가? 허허허. 태업 작가다. 나는 솔직히 일반인보다 책을 더 안 읽는다. 그래서 책에 대해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다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글에 대한 이야기,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 거다. 물론 국내 작가들 책을 다룰 때는 좀 부담스럽다. 마음껏 까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이동진: 굉장히 신경 쓰시더라구.

김중혁: 나도 민폐 끼치기 굉장히 싫어하거든. 일단 누군가의 흠 잡는 얘기를 하는 건 기분 좋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지 않으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Q. 책은 개인적인 매체고 독서 역시 사적인 행위라 팟캐스트라는 형식과 어떻게 어울릴까 궁금했다.

이동진: 나는 굉장히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독서라는 건 약속된 각각의 기호 조합을 통해서 뇌를 자극해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을 이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기호를 이용하는 거다. 그리고 묵독으로 혼자서 책을 읽어 내려가는 건 독서의 역사에서 보면 최근의 일이다. 서양의 경우 18세기 이후고 대부분 20세기 이후다. 개인의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게다가 모든 사람이 글을 읽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책을 낭독으로 읽었다. 그렇게 보면 팟캐스트에서 말로 책을 설명한다는 건 독서 행위의 핵심과 상당히 근친 관계가 있다.

Q. 그럼 팟캐스트라서 다른 점은 뭔가.

이동진: 처음 <빨간책방>을 시작했을 때 내 블로그에 어떤 분이 남기신 글이 있다. 팟캐스트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으셨는데 그곳이 아마 당신과 굉장히 잘 맞을 것이고 그것만이 갖고 있는 굉장히 깊은 소통의 장점이 있다고. 가끔 그 분 말이 생각이 나면서 라디오와는 또 다른 게 있구나 싶다. 더 친근하고 더 깊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김중혁: 요즘 팟캐스트는 굉장히 친근하지 않나. 욕도 하고 19금 얘기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하는데 이동진 씨나 나는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욕도 안 하고 공중파에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 이동진 씨가 네이버에서 했던 부메랑 인터뷰 같은 거랄까. 그걸 보면서 국내 유일의 뽕 뽑는 인터뷰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끝까지 한 번 파헤쳐 보는 식이니까. 마찬가지로 공중파에서는 시간제한이나 형식의 틀 때문에 못 하는 걸 팟캐스트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여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작가들을 초대할 때도 그렇지만 책 한 권 가지고 한, 두 시간씩 얘기하는 곳은 없지 않나. 물론 다른 소리도 많이 하긴 하지만. 허허허허.

Q. 그 다른 이야기들이 쏠쏠한 재미다.

이동진: 어제 검색하다 우연히 본 건데 <빨간책방>은 싸구려 개그만 빼고 다 좋다고 하더라.

김중혁: 오늘도 덤핑으로 다 팔아버려야지.

“루시드 폴 음주방송은 사전에 기획된 게 아니었다”
&lt;빨간책방&gt;│“듣는 이와 옅은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Q. 그런 재미가 있지만 너무 길어서 끝까지 안 듣게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동진: 그 분들도 ‘책, 임자를 말하다’는 끝까지 들으실 거다. 대여섯 개 코너가 있는데 뒤에 걸 안 듣는 분들은 꽤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빨간책방>이라고 하면 나랑 중혁 작가가 대담하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 나도 제일 재밌는 코너이자 가장 신경 쓰는 코너고.

김중혁: 나는 ‘내가 산 책’을 되게 좋아한다.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일할 때 보니까 사람들이 남들이 카트에 뭘 담는지 궁금해하더라. 취향 같은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산 책’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Q. ‘퇴근길에 가볍게 들르는 책방’을 표방하고 있지만 평론가이자 작가인 두 분의 말에 어쩔 수 없는 영향력이 생기지 않나.

김중혁: 내가 여기서 책을 비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나서는 이동진 씨와 삶이나 사랑,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책이 매개체가 되어서 다른 얘기를 했던 것 같다.우리 방송을 듣고 그 책을 보고 싶어지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동진 씨가 좋은 영화 평론가인지는 내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동진: 그렇다고 해줘. (웃음)

김중혁: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있고. (웃음) 이동진 씨도 <빨간책방>에서는 평론가의 역할을 하는 건 아니고 훌륭한 리뷰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좀 더 훌륭한 리뷰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진 씨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프로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Q. 하지만 어느 선에서 어디까지 이야기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동진: 기본적으로 나나 중혁 작가님이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고 그 발언의 위력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역풍이 있더라도 그 바람을 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타입이 아니니까 아무리 팟캐스트가 자유롭다고 해도 자기 안에 필터가 있는 것 같다.

김중혁: 나는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 있는 거다.

이동진: 에이, 무슨. 한국 소설 얘기할 때 그렇지도 않던데.

김중혁: 그건 어쩔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최대한 다 한다.

이동진: 나는 필터링 많이 한다. 심지어 유머도. (웃음)

Q. 그런 의미에서 지난 루시드 폴이 출연한 송년 특집 1탄에서 음주 방송을 한 건 어떤 선을 하나 넘은 게 아닌가?

이동진: 물론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그건 사건에 기획한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다루는 책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준비를 하지만 모든 것이 짜여 있다기보다 꽤 즉흥적이다. 그 날도 음주 방송 얘기는 시작 5분 전까지도 전혀 없었다. 술도 중간에 사러 간 거다. 라디오에서는 못 하는 거니까 해보면 어떨까 했던 거고 또 내가 맥주 캔 따는 소리를 좋아하거든.

Q. 김중혁 작가는 사실 루시드 폴의 음악을 아주 좋아했던 건 아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더 좋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예상치 못 했던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김중혁: 나는 기획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고 몸만 와서 내 생각을 얘기하고 놀다가 가는 거다. 그래서 늘 예상하지 못 한다.

이동진: 중혁 작가는 천재다.

김중혁: 무슨 말이야. (웃음) 늘 새로운 발견일 수밖에 없다. 루시드 폴도 그랬지만 강풀 작가나 윤태호 작가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책을 읽고 좋았는데 직접 만나보니 아, 재밌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이야기할 책도 평소라면 절대 안 읽어봤을 책인데 읽어보고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그렇게 느낀 걸 그대로 얘기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늘 새롭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없고 스트레스도 없다.

이동진: 나도 주인이 아니다.

김중혁: 이동진 씨는 자가가 따로 있으신데 여기 전세 사는 거고 나는 전전세. (웃음)

Q. 이동진의 즐거움은 뭔가.

이동진: <빨간책방> 듣는 분 중에 우리 둘이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재밌어서 듣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나 역시 재미의 절반 이상은 중혁 작가님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보조 수단으로 유머를 섞는 건 아니다. 중혁 작가님과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걸 하는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다. 사실 세상에는 진화심리학이나 막시즘 같이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고 그걸로 세계를 읽어낼 수 있는 거대 담론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이론일수록 일상생활의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반면에 아주 쓸데없어 보이는 작은 수다, 사적인 이야기에서 굉장한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물론이고 듣는 분들도 그런 게 아닐까. 우리 둘이서 즐겁게 얘기하고 그걸 어떤 사람이 듣고 궁금해서 그 책을 산다. 그런 식으로 일종의 옅은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게 기분 좋은 거지.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