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이경규는 대화를 나눌수록 ‘버럭’보다 ‘울컥’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과거 자신을 정글의 호랑이에 비유했던 것을 떠올리며 “다 옛날 일이다. 하하. 요즘은 그냥 집 지키는 개처럼 된 것 같다”며 멋쩍게 웃는 데뷔 30년 차 개그맨.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나이 먹으면 더 아프다. 삭신이 다 쑤신다니까. 난 청춘 때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배고파도 아픈 줄 몰랐다. 그때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다. 진짜 아픈 건 어른들이다. 내가 생로병사 중에서 ‘생로병’까지 겪어봤다”며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없어지는 게 안타깝다는 50대 중년.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꿈이 있다. 영화 <복수혈전>과 <복면달호>에 이어 현재 촬영 중인 <전국노래자랑>은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영화 제작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10년 뒤에는 반드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할 땐 소년의 열정이 느껴질 정도다.



과거 “영화는 남지만, 코미디는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를 향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지만,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과 SBS <힐링캠프>는 그런 이경규의 생각과 인생을 바꿔놓았다. “난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람이 됐다. ‘남격’을 하면서 담배도 끊고 식스팩도 만들고 배낭여행도 가보고, 아직도 공황장애 약을 먹지만 <힐링캠프>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됐고 런던 올림픽도 가봤다. 예전엔 축구만 보러 다녔는데 런던에 가서 올림픽 메달 따는 걸 보니까 월드컵과는 다른 느낌이더라. <힐링캠프>가 아니었으면 언제 올림픽 개막식을 가보겠나. 인생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 때는 20년간 몸담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하차하며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다시 일어섰고 SBS <2012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모두 경험한 그가 때로는 자신감을 실어주고 때로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가사가 좋은 노래들’을 추천했다.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1. 바비 킴의 < Love Chapter 1 >
이경규의 첫 번째 추천 곡은 바비 킴의 ‘사랑..그 놈’이다. “가수는 무조건 음정이라고 생각해요. 목소리가 좋으면 노래의 느낌 자체가 달라지잖아요. ‘사랑..그 놈’을 들어보면 노래와 바비 킴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바비 킴 목소리가 좋아요.”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읊조리는 듯한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 / 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라는 가사는 말하듯이 노래하는 바비 킴의 창법과 만나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임재범이 <풀이 (Free)>에서 ‘사랑..그 놈’을 리메이크했으며, 가수 박상민과 정인이 각각 MBC <일밤> ‘나는 가수다 II’와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부른 곡이기도 하다.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2. 차태현의 <복면 달호(Highway Star) OST>
이경규는 두 번째 추천 곡으로 자신이 제작한 영화 <복면달호>의 OST인 ‘이차선 다리’를 선택하며 스스로도 멋쩍었는지 쑥스럽게 웃었다. “제가 직접 ‘이차선 다리’ 곡목을 지었어요. 이차선 다리를 보면 자동차들이 서로 지나치잖아요. 그곳에서는 유턴도 안 되고 지나가면 끝인데, 되돌릴 수 없는 사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를 들어보면 ‘이차선 다리 위 끝에 서로를 불러보지만,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안 들리네’라는 가사도 나오거든요.” 극 중에서 한 때 락스타를 꿈꿨지만 얼떨결에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봉달호(차태현)를 성공시킨 히트곡이자 스스로가 만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만든 터닝 포인트가 바로 ‘이차선 다리’였다.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3. 부활의 <11집 사랑>
세 번째 추천 곡은 현재 ‘남격’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김태원이 소속된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많이 보는” 이경규는 직접 노래를 들려주며 일일이 인상적인 가사 구절을 짚어줄 만큼 ‘친구야 너는 아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태원이의 휴대폰 컬러링이 이 노래여서 전화할 때마다 계속 들었어요. 전화 안 받으면 끊지 않고 노래를 들을 정도로 좋았어요. 가사가 너무 좋아서 ‘역시 태원이는 시인이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시더라고요. 하하.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시를 가사로 옮기고 태원이가 작곡을 한 곡이에요. 특히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라는 가사가 좋았어요. 뭘 피우기 위해 아픈 것이라는 말, 참 좋지 않아요?”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4. Secret Garden의 < Once In A Red Moon >
누구나 알고 있고, 수백 번을 들어도 지겹기는커녕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곡이 바로 명곡이 아닐까. 이경규가 “축 처질 때 많이 듣게 되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며 네 번째 추천 곡으로 꼽은 ‘You Raise Me Up’ 역시 대표적인 명곡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와 닿았다는 이경규. 어쩌면 ‘You Raise Me Up’은 20년 동안 몸담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세상이 이렇게 냉정하고 참혹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5. 싸이(Psy)의 <싸이6甲 Part 1>
아무리 최신 가요도 많이 챙겨 듣는 이경규라지만, 의외였다. 싸이의 노래를 추천한 것도, 가장 유명한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어땠을까 (Feat. 박정현)’를 추천한 것도.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도 정말 좋아요. 싸이가 가사를 참 잘 써요. 그때 내가 이랬다면 어땠을까… 후렴구에 박정현 씨가 ‘어땠을까’를 반복해서 부르잖아요. 그 부분을 여자 가수가 피처링 하길 잘한 것 같아요. 남자들은 후렴구를 들으면서 옛사랑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웃음) 그 느낌을 여성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여자와 남자가 듣는 부분이 다르니까.”

이경규│가사가 좋은 노래들


이경규에게 <전국노래자랑>이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은 선배 송해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송해 선생님이 환갑에 KBS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브랜드를 만드신 걸 보면 아직도 감각이 살아계신 거다. 그걸 배워야 한다. 나도 송 선생님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친 이경규의 마지막 히든카드는 ‘이경규 쇼’다. “게스트 없이 혼자 토크쇼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드라마도 찍고 모든 코너에 다 내가 들어가는 프로그램인데 지금 마지막 카드로 남겨놓고 있다. 버라이어티의 끝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답이었다. 이게 기획이 되고 방송국에서도 오케이를 해준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모두 손을 떼고 일주일 내내 이거 하나만 해야겠지. 여기에 모든 걸 쏟을 거다. 머릿속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걸 실현하려면 10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코미디와 영화라는 영역에 집요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는 이경규의 마지막 발자국이 다름 아닌 자신의 이름 그 자체라니. 우리는 지금 뜨겁게 나이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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