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노홍철의 목소리는 인터뷰 중에도 고음과 저음을 자주 넘나들었다. 그리고 즐거운 기운으로 빳빳하게 세운 핏대가 소리로 전해질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어렸을 땐 늘 왜 이렇게 떠드니,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미친 거니… (웃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제 목소리는 확실히 단점이거든요? 근데 저는 제가 가진 단점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이 목소리도 제가 가진 큰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명백하게 단점이라고 꼽는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그에게 많은 경험과 활약의 기회를 마련해줬다. DJ, 피처링, 더빙, 내레이션 등 그 분야도 다양했다. 영화 <빨간 모자의 진실> 시리즈에 목소리 출연을 한 이후, 영화 <잠베지아: 신비한 나무섬의 비밀>을 통해 다시 더빙에 도전했다. 더빙에 꼭 알맞거나 능숙하다고 평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번에도 자신감 있게, 아프리카 대머리 황새 ‘찌롱이’가 되어 잠베지아의 하늘 위에서 또 한 번 목청을 높였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수 있는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니다. 자유자재로 변형 및 활용이 가능한 기능적인 목소리도 아니다. 그러나 노홍철의 목소리는 ‘노홍철’이라는 명확한 캐릭터와 함께 녹아들어, 다른 누군가가 대체하지 못하는 소리가 됐다. “<잠베지아: 신비한 나무섬의 비밀>에 목소리 참여를 하게 된 것도 제가 더빙을 잘해서가 아니에요. 그냥 ‘찌롱이’라는 새의 캐릭터가 저랑 너무나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죠. thㅐ! thㅐ! 이것 봐요. 나 ‘새’ 발음도 안 되잖아. (웃음)”



더빙을 처음 시작했던 계기를 묻자, 노홍철은 “타고난 ‘박치’에 ‘몸치’인 걸 잘 알면서도, 그냥 안 해본 걸 해 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전 안 해본 것을 하는 걸 제일 좋아하거든요. ‘할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늘 저의 선택 기준은 딱 세 가지예요. 안 해본 거, 재밌을 만한 거, 아니면 의미 있는 거.” 방송인이 된 지 9년. 그 중 7년을 함께한 MBC <무한도전>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자신의 의지나 끈기 때문이었다기보다 “재밌어도 너무 재밌어서”였단다. “저는 늘 그런 식이에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은 제가 오래 살고 싶어서였어요. 사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니까 오래 살고 싶어서 하나하나 좀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배워나가는 게 재밌었어요. KBS <이야기쇼 두드림>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고요. 마치 방송이 제2의 부모님이 되어 저를 가르쳐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밌더라고요.”



뭐든지 재밌어서, 즐거워서 한다는 노홍철의 에너지는 시작과 끝을 모른다. “에너지가 나와서 하는 건지,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나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재미가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가 다시 재밌는 일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DNA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느끼는 재미와 에너지를 행동으로 빠르게 치환시킨다. “요즘은 갑자기 공장에 관심이 생겼거든요. 개조해서 제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서요. 저로 아주 가득 채울 거예요. 전 저 자신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문래동에 엄청 꽂혔어요. 어제 보고 나서는 너-무! 흥분돼 가지고 거의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어우, 막 미치겠더라고. (웃음) 이럴 때마다 역시 제가 하고 싶은 거, 재미있어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느껴요.” 직접 느껴온 재미들을 좇으며 살아온 노홍철은 데뷔 전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노는 순간이 좋아서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방송인이 된 후, 함께 하는 친구들이 혹 불편해 할까 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보며 즐기던 영화를 습관처럼 혼자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친구 없이 홀로 가도 옆자리 사람들과 팝콘을 나눠 먹으며 너스레를 부릴 정도로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노홍철이 혼자 보아도 좋은,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는 영화들을 추천했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1. <슈렉> (Shrek)
2001년 | 앤드류 애덤슨, 빅키 젠슨
“‘혼자 노는 거 싫어하는 솔로’인 제가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가 <슈렉>이에요.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나왔는데 마침 <슈렉>이 개봉한 거예요. 엄청 기다렸던 영화거든요. 시간은 아깝고 같이 갈 사람을 찾자니 늦어질 것 같아서 마음 딱 먹고 혼자 영화를 봤는데, ‘으아… 이거 대박이다’ 싶더라고요. 혼자 보니까 작품만 보이는 게 아니라 노래까지 막 들리기 시작하는 걸 처음 느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좋은 사운드트랙이 많잖아요. <슈렉>도 주제가가 정말 좋으니까, 이미 보신 분들도 음악에 귀 기울여 다시 보셨으면 좋겠어요. 혼자서 보기에도 참 좋은 영화예요.”



초록색 괴물 슈렉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잘생긴 왕자님과 예쁜 공주님이 수놓던 기존의 동화적 판타지를 뒤집었다. 동화책은 화장실 휴지 삼아 쓰고, 진흙으로 샤워하는 슈렉이 아름다운 공주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한 안식처에 몰려온 동화 속 인물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담판을 지으러 가다 일이 꼬여 공주를 구하게 된다는 익살스러운 이야기의 어드벤처다. <슈렉>은 첫 번째 작품 이후 3년마다 한 편씩 나와 총 4편이 시리즈를 이루었고, 2010년 <슈렉 포에버>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오스틴 파워 – 제로>의 마이크 마이어스가 슈렉을, 카메론 디아즈가 피오나 공주를, <닥터 두리틀>의 에디 머피가 당나귀를 연기했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2.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2년 | 우디 앨런
“사실 너무 영화를 많이 봐서, 도저히 볼 게 더는 없어서 본 게 <미드나잇 인 파리>거든요. 그런데 보고 나서 완전 훅 빠졌어요.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구조도 재밌고요. 헤밍웨이 같이 누구나 알 만한 예술가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그 사람들의 당시 모습과 이야기를 재현해놓은 것처럼 꾸며 가는데 그 분위기랑 스토리에 지루할 틈 없이 빠져들더라고요. 물론 저 같은 경우에는 그중에서 잘 모르겠는 예술가도 있었지만요. 아, 그리고 특히 영상과 소리가 굉장히 잘 어우러져서 멋진 영화예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이 파리를 배경으로 연출한 로맨스 영화다. 21세기 파리의 밤 12시. 주인공인 소설가 길(오웬 윌슨)이 우연히 한 골목에서 클래식 푸조에 올라타게 되고 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타임슬립을 해 19세기와 20세기의 파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길이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등의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리고 사랑을 나누는 꿈같은 순간들이 그려진다. 세기를 건너뛰며 오가는 이야기들이 19, 20, 21세기 각각의 독특한 색채들을 통해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3. <언터처블: 1%의 우정> (Intouchables)
2012년 |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더라고요. 그래서 보기 전에 사실 약간 움찔했거든요.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굉장히 늦게 봤는데 보고 나선 이것도 완전 훅 빠졌어요. 훅 빠졌어. (웃음) 얼마나 빠졌냐면요. 얼마 전에 (김)제동 형이랑 같이 절에 갔거든요. 가서 제가 형한테 이 영화의 O.S.T를 틀어줬어요. 그런데 형도 이미 봤다기에 말했죠. “여기 나오는 안쓰러운 아저씨랑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이 있지 않냐, 아저씨가 형이고 청년이 나다” 라고. (웃음) 누구든 ‘혼자가 아니다’ 라고 느낄 수 있는 영화잖아요.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서 저도 제동이 형과 그날 1%의 우정을 나눴어요.”



인종, 성격, 경제력, 나이 등이 모두 다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담고 있는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닿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몸이 불편해 마음껏 움직이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프랑스 최상위 계층 필립(프랑수아 클루제)과 돌보아야 할 동생이 여섯인 빈민촌 출신 드리스(오마 사이)가 함께하는 시간들은 여느 로맨스보다 감동적이고, 애잔하고, 달달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TV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사랑을 받았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4.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년 | 리처드 커티스
“<러브 액츄얼리>는 지금도 집에 DVD가 여러 개 있어요. 선물을 많이 하거든요. 일단 저같이 솔로인 애들한테 많이 주고요. (웃음) 커플인 애들한테도 크리스마스에 보라고 선물을 해요. 제가 평소에 로맨틱 코미디 많이 보거든요. 안전하잖아요. 놀라지도 않으면서 아름답고 깔끔하고 깨끗하고! 기분 좋아지는 영화는 다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딱 그래요. 음악도 기가 막히고요. <무한도전> 멤버들과 이 영화 수록곡을 노래한 적도 있는데, 그 노래도 너무 좋아해요. 혼자 봐도 좋고, 누군가와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영화죠.”



<러브 액츄얼리>가 등장한 후, <나홀로 집에> 일색이던 크리스마스 특집 영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크리스마스니까” 용기를 내 사랑을 고백하고, 가족과 화해하고, 친구를 찾아가는 이 영화는 ‘실제로(Actually)’ 사랑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시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5. <어벤져스> (The Avengers)
2012년 | 조스 웨던
“저는 무서운 걸 싫어해서요. 액션도 ‘착한 액션’을 즐겨요. <어벤져스>가 착한 액션에 속하죠.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을 보면 다 제각각이잖아요. 그런데 모두들 돌연변이라서 어디에선가는 좀 소외되거나 뭔가 혼자만 다른 존재가 돼요. 우리 <무한도전> 멤버들도 이렇게 뭉쳐있으니까 그렇지, 하나하나 따로 떨어트려 놓고 보면 되게 문제아 소리도 많이 듣고 자란 사람들이고, 다른 데선 이해를 잘 못 받을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끼리 이렇게 섞여서 여기까지 왔고요. 그래서 이 영화에 엄청나게 몰입이 됐나 봐요. 제가 원래 말도 안 되게 갖다 붙여가지고 엄청 이입하고, 혼자 찡해하고 감동받고… 잘 그러거든요. 그런데 <어벤져스>는 정말 ‘짱’이었어요.”



히어로물이 보여주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빤하지만 매력적이다. 결국엔 정의가 이기고야 만다는 결말과 해피엔딩은 현실과는 다르기에 통쾌한 것이다. <어벤져스>에는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가 무리 지어 등장한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호크 아이, 블랙 위도우 등의 히어로들이 뭉쳐 또 한 번의 히어로 드라마를 펼치는 것이다. 히어로들 각각의 매력을 퍼즐처럼 맞추고 섞어서 보는 재미는 물론, 이들이 한 화면 안에서 하늘로 솟고 충돌하고 부서지고 땅으로 꺼지는 장면들이 쏟아져 영화적 긴장과 스펙터클이 빼곡하다.

노홍철│혼자 보아도 좋은 영화들


노홍철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콕콕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로 방송이 나를 만들었다”고. 학창 시절, 공부도 싸움도 아닌, 산만하고 떠드는 것으로 유명했던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방송 일을 시작해 ‘퀵 마우스’와 ‘돌+아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지금껏 본 적 없는 캐릭터를 선보였고, 이제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더디게 말하기도 하는 방송인이 됐다. “전 사실 완전 아무것도 없는 애였거든요. 지금 방송하는 사람들 중에 거품이 제일 심한 게 저일 걸요. 제가 저를 제일 잘 알잖아요. (웃음) 그런데 방송을 하면서 차츰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9년 동안 ‘방송’이라는 부모님에게 하나씩 가정교육을 받아온 것 같아요. 굉장히 감사해요. 계속 이렇게 가고 싶고.” 늘 그저 재밌어서 즐거워서 했던 것뿐이라고 말하던 그에게서 사뭇 다른 빛의 땅이 보인 것은 그때였다. 재미 자체가 진심이 된 사람에게서, 그 재미와 진심이 에너지가 되어 일궈낸 몇 평 남짓의 기름진 밭이 느껴진 것이다. “앞으로도 뭔가 재밌는 게 생기면 언제나 그걸 할 거예요. 저는 제가 지금 당장 느끼는 재미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지금까지는 매우, 심하게,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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