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해서웨이: 코제트, 공주, 캣 우먼. 그리고, 판틴. 한 여배우가 긴 시간을 거쳐 도착한 어떤 길.



앤 해서웨이
코제트: 소설 <레미제라블>의 캐릭터. 앤 해서웨이가 어린 시절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미국 공연에서 이 배역을 연기했고, 배우였던 그의 어머니는 코제트의 어머니 판틴을 연기했다. 당시 앤 헤서웨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감격한 나머지 자신의 어머니가 옆에 있는줄도 모르고 울었다고. 반면 변호사인 그의 아버지는 “창조적이지만 논리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을 갖도록 가르쳤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필요한 감성과 대본을 분석하는 능력 모두를 가질 수 있는 훈련을 받았던 셈.



줄리 앤드류스: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함께 출연한 배우. 앤 해서웨이는 공주, 줄리 앤드류스는 여왕으로 출연했다. 앤 해서웨이는 500:1의 경쟁률이었던 오디션에서 의자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하고도 캐스팅했는데, 그렇게 출연한 작품에서 <메리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 출연한 대배우와 호흡을 맞췄으니 운이 좋으면서도 긴장될 수 밖에 없는 경험이었을 듯. 다행히 영화는 크게 성공했고, 앤 해서웨이는 순식간에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앤 해서웨이는 그 때부터 “공주가 되는 걸 꿈꿨나요?”라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았고, 앤 해서웨이는 머릿 속으로 “캣 우먼이 되고 싶었어요!”나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훗날 앤 해서웨이는 <러브 & 드럭스>에서 노출 연기를 한 뒤 인터뷰마다 노출에 대해서만 묻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인기 여배우들은 피해갈 수 없는 길.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에 앤 해서웨이를 캐스팅한 감독. 앤 해서웨이는 이 영화에서 노출 연기를 선보여 화제가 되는 동시에, 강인한 성격으로 집안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여성의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이안은 앤 해서웨이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가 나면서도 미묘한 질투심을 표출시키는” 장면의 리딩을 정확하게 해낸 것에 강한 인상을 받고 그를 캐스팅했다. 실제로 앤 해서웨이는 영화에서 활발하고 도발적이던 젊은 여성이 20여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카롭고 현실적인 여성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분기점으로 앤 해서웨이는 보다 폭 넓은 배역을 맡을 기회를 얻었다. 참고로 앤 해서웨이는 <프린세스 다이어리 2>를 촬영하던 도중에 <브로크백 마운틴>의 오디션에 참석, 공주 복장을 한 채 오디션을 받았다. 문자 그대로 공주에서 배우로 변신하던 순간.



메릴 스트립: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브로크백 마운틴>를 보고 앤 해서웨이가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세계적인 패션잡지의 편집장과 신참 비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는 두 사람의 실제 관계와도 비슷했던 셈. 앤 해서웨이는 “(메릴 스트립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였다고. 결과적으로 앤 해서웨이는 아무 것도 모르던 사회 초년생에서 점점 프로페셔널로 변해가는 캐릭터의 표정과 자세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성공 이후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그의 연기력보다 영화를 위해 체중을 줄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가 화려해보이는 패션 잡지 이면의 일하는 여성의 치열함과 선택에 대해 다룬 것과 달리 결국 눈에 보이는 외모에 대해 거론된 것. 또한 앤 해서웨이가 <비커밍 제인>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으로 출연하게 되자 제인 오스틴의 후손이 앤 해서웨이가 “너무 예뻐서” 배역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살이 쪄도, 살이 빠져도, 예뻐도, 못 생겨도 어쨌든 외모에 대한 평가부터 받는 여배우들의 딜레마.



조나단 드미: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의 연출자. 앤 해서웨이는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해 금연을 주장할 정도로 담배를 피지 않고, < Eating animals >라는 책을 읽은 뒤에는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런데 앤 해서웨이가 <레이첼 결혼하다>에서 연기한 캐릭터는 약물중독자에 계속 담배를 피우는 여성, 킴. 앤 해서웨이는 스스로 “눈부신 외도”라고 하던 이 배역 때문에 많은 고민도 했지만 조나단 드미의 격려로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앤 해서웨이는 자신을 “설득할 수 있”거나 “겁먹게 하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세상은 어두운 곳”이라는 견해를 가졌다. 어둡거나 파격적인 연기에 끌리되, 실제로는 어떻게든 건전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는 앤 해서웨이가 공주님과 약물 중독자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이유일듯. 그리고, 앤 해서웨이는 약물 중독자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뒤에야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오른다.



스티브 카렐: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 영화 <겟 스마트>에 함께 출연한 배우. 앤 해서웨이는 이 작품의 오디션에서 스티브 카렐의 대사에 남들보다 5초 더 받아쳤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앤 해서웨이는 이 작품 외에도 결혼에 관한 코미디 영화 <신부들의 전쟁> 등에 출연하며 자신이 코미디에도 얼마나 능숙한지 보여준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했고, <러브 & 드럭스>의 노출 연기 등 장르와 배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데뷔 후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기회는 모두 잡았고, 자신에 대한 증명도 충분히 한 셈. 그리고, 그 사이 여러 배우와 감독들과 함께 일하며 성공도 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강렬한 배역이었다. 예를 들어, 캣 우먼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연출자. 앤 해서웨이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오디션을 봤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수많은 여배우들중 캣 우먼을 연기할 한 명을 골라내느라 세 달 반이 걸렸고, 앤 해서웨이는 영화의 보안 문제로 캐스팅된 직후에는 보안장치가 된 방에서만 대본을 읽을 수 있었다. 잘 나가는 배우라 할지라도 최고의 흥행이 보장된 블록버스터에서는 인내심 테스트에 가까운 상황을 견뎌야 하는 셈. 앤 해서웨이는 어떻게든 대본을 외우고, 계속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영화 속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대본의 복사본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액션 연기를 위해 엄청난 훈련을 받는 와중에도“난 정말 건강해!”를 외치면서 견뎠다. 앤 해서웨이는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캣 우먼을 좋아했는데, 그 자신 역시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면서 캣 우먼이 될 수 있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는 조연이었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고, 액션연기 속에서도 여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배역을 위해서라면 “하이힐을 신고도” 하이킥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젊은 여배우는 그렇게 살아간다.



짐 스터게스: 영화 <원 데이>에 함께 출연한 배우. 앤 해서웨이는 이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감독인 론 쉐르픽에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엠마 몰리와 어울리는 음악들을 골라서 보냈다. 정식 오디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앤 해서웨이는 20대 내내 원하는 배역을 위해 연출자나 제작사에게 자신이 어떤 배역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강력하게 어필해야 했던 셈이다. <원데이>는 그런 과정 속에서 앤 해서웨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영국인인 엠마 몰리를 연기하기 위해 영국인 억양을 트레이닝 받으면서 철저하게 배역을 준비했고, 사랑하지만 친구로 지내기로 하는 남자에 대한 감정은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더욱 섬세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특히 20년동안의 시간을 담은 이 영화에서 시기에 따라 의상과 몸매까지 달라지는 디테일은 깊어진 배역에 대한 이해력을 보여준다. 10여년의 시간 사이, 앤 해서웨이는 남녀의 소박한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드러나지 않게 작품을 리드한다. 할리우드에서 젊은 여배우는 그렇게 성장했다.



판틴: <레 미제라블>의 캐릭터 중 하나. 어린 시절 코제트를 연기했던 앤 해서웨이는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을 연기하며 자신의 어머니가 서던 자리에서 섰다. 그 사이 앤 해서웨이는 스스로 더 이상 배역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흥행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고 말하는 배우가 됐다. 전작들에서도 배역을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앤 해서웨이는 판틴을 위해 7kg을 빼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삭발을 했으며, 자신의 딸을 위해 성매매까지 해야 했던 판틴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의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사와 동영상 뉴스를 계속 봤다. 그 결과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앤 해서웨이의 연기는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방대한 원작을 축약하느라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앤 해서웨이가 복잡한 표정으로 ‘I dreamed a dream’을 노래하는 순간, 비로서 관객들을 완전히 몰입시킨다. 19살에 공주님을 연기하고 30살에 판틴을 연기하기까지 10여년, 앤 해서웨이는 수 없이 많은 일을 했고, 쉴 새 없이 오디션을 봤으며,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에 출연한 휴 잭맨은 촬영 첫날 앤 해서웨이의 노래를 듣고 “리허설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앤 해서웨이는 원하는 작품이 있다면 또 오디션을 보게 될 것이다. <레 미제라블> 이후에도 미디어는 앤 해서웨이가 실수로 몸을 노출한 것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좋은 여배우는 그 모든 것을 딛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는 그렇게 살아가고, 성장하고 결국 대중에게 증명한다. 자신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Who is next
<레 미제라블>의 한국 뮤지컬에 출연한 정성화와 영화 <히트>에서 함께한 이하늬와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에 공동 캐스팅되었던 제시카가 속한 그룹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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