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나는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에 근간을 둔다” -1
스튜디오에서 윤종신이 수트를 입고 얼굴을 비스듬히 돌린다. 그 때 확신했다. 이 뮤지션이자 예능인, 또는 제작자, 아니면 어쨌건 윤종신이라는 사람이야말로 2012년의 마지막에 남길 사람이라는 것을. 이 남자는 올 해 가장 성공한 뮤지션도,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예능인도 아니었다. 대신 매달 <월간 윤종신>의 노래를 한 곡씩 만들었고, 신치림으로 활동하고,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를 했다. 그리고, 알 밴 시샤모 같다던 그 몸으로 수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MBC <무한도전>의 ‘못친소’ 특집에서는 신치림과 함께였고,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에는 오랜 동료인 유희열과 윤상 앞에서 입수했다. 보컬리스트로는 장재인부터 박정현까지, 프로듀서로는 이규호부터 유희열까지 함께한 2012년의 <월간 윤종신>은 언제나 성실하게,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아온 남자가 도착한 어떤 고지다. 데뷔 후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고, 사람을 모았던 한 사람이 40대 중반이 되어 윤종신이라는 이름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수트를 입은 윤종신의 표정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인생의 기록. 그래서, <2012 결산 윤종신>.



Q. 올해 초 SBS <힐링캠프>에서 자신의 활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1년 뒤에 봅시다”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그 말대로 뭔가 보여준 것 같나.
윤종신: <월간 윤종신>의 1년 통계를 봤는데 음원 쪽은 미약하다. 내가 내 자신한테 박수쳤다. 돈이 안 되는데 계속 끌고 온 걸. (웃음) 작년도 음원 성적은 처참했고. 이제 음악 콘텐츠를 팔 수 있는 건 공연 밖에 없는 것 같다. 음악으로 유명해지긴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음악이든 예능이든 더 타이트하게 해야겠다. 예능은 철저하게 흑자 보고 있으니까. (웃음)

“<월간 윤종신>은 즐거운 곤욕”
윤종신│“나는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에 근간을 둔다” -1


Q. 그런데도 음악 일은 더 크게 벌이는 것 같다. 내년에는 여러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월간 윤종신>을 함께 하는 것으로 안다.
윤종신: <힐링캠프>에서도 내가 올해 놀랄만한 사건을 보여준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올해 계속 일을 진행시킬 생각이었고, 하다 보니 이런 것도 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월간 윤종신>은 앱으로 진짜 매거진처럼 만들 수 있게 됐고, 음악 외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들도 참여하게 됐다. 그래서 아예 <월간 윤종신>이라는 법인을 생각해 보기도 했고, 올해를 거치면서 <월간 윤종신>이 음악 미디어가 아니라 문화 미디어로 가기 위한 단계는 마련한 것 같다. 앞으로는 앱이나 콘텐츠 안에서 아티스트가 돈을 벌면서 <월간 윤종신>이 자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Q. 그게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윤종신: 예를 들어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경우는 공모를 받을 생각이다. 주제는 윤종신이다. 내게 관심 있는 아티스트들이 나를 어떻게든 표현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그 작품들을 사서 매월 내가 하는 평창동 카페에서 그 작가들이 한 달 동안 전시회를 하는 식으로 해보고 싶다.



Q.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월간 윤종신>이 진짜 잡지가 돼 가는 것 같다. 앱과 음악에 당신이 트위터에서 쓰는 글이 더해진.
윤종신: SNS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월간 윤종신>이라는 포맷은 홍보를 많이 하긴 해야 하는데, 매달 나오는 싱글에 대해서는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매달 곡마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내가 정말 밀어야 되는 콘텐츠가 나왔을 때는 어떻게 하나. <월간 윤종신>은 구독자 수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던지고, SNS를 이용해서 홍보를 하고, 그래서 구독자들이 입소문을 내주는 게 맞는 것 같다.



Q. 거기에 예능 활동까지 더해지니까 당신 자신이 <월간 윤종신>이라는 잡지 같기도 하다. 실시간으로 트윗을 올려서 행보를 기록하고, 거기에 나온 내용이 방송과 음악으로 연결되고.
윤종신: 맞다. 그래서 내년에는 <월간 윤종신>의 콘텐츠로 내 일상을 담아볼까도 싶다. 내가 이달에 만난 사람 이런 거. 초등학교 동창 김철수, 옛날엔 참 부러워했는데 이 녀석이 이혼했다더라! (웃음) 진짜 잡지를 만든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마감을 내 마음대로 해서 좋다. 곡이 늦어지면 트위터로 “마감은 닥쳤지만 내 맘대로 다음 달 14일에 낼래요.” (웃음) 이렇게 할 수도 있으니까.



Q. 왜 그렇게 일을 점점 벌이나. 바쁜데도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더 많은 기획을 한다.
윤종신: 나 혼자만 하면 권태로워질 거 같다. 의도한 건 아니고, 속된말로 내가 ‘독고다이’ 스타일이 아니다. 누가 뭘 하면 “쟤가 하니까 난 저런 거 안 해” 보다는 “재밌나, 나도 할까?” 이런 쪽이다. 그래서 어떤 집단에 몸을 잘 던지기도 하고 질리면 그냥 빠져 나오고. 그리고 관성이 생기니까 <월간 윤종신>은 힘이 안든지 오래됐다. 다른 일이 더해지니까 힘든 거지. 즐거운 곤욕 같다.



Q. ‘1박 2일’에서 노래자랑 도중 차태현이 물통에 빠졌을 때 밴드의 연주가 끝나니까 “쇼 안 끝났으니까 계속해”라고 하던 게 기억난다. 예능과 음악을 다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 아닌가 싶었다.
윤종신: 그 때는 연주하기로 했던 부분이 다 끝났는데, 하기로 했던 게 생각보다 길어진 거다. 여기서 사운드가 빠지면 되게 썰렁해지는데, 그럴 때 어디서부터 연주를 다시 한다는 식의 약속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뭐든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노래를 불러버리면서 그걸로 갔다. 아마 음악만 했다면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했을 거다.



Q. 그게 음악하고 예능을 이모작 (웃음) 하면서 당신만이 갖게 된 영역 같다. 음악과 예능을 거의 비슷하게 하는 게 생활에도 변화를 주나.
윤종신: 둘 중 하나가 대박이 나야 하는데. (웃음) 사실 양쪽 다 정말 잘하는 친구들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 롤 안에서는 이제 뭔가 보이는 것 같긴 하다. 음악이든 예능이든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양쪽 다 나는 무슨 철학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생활이 기반이 되는 사람이니까. 가사를 써도, 애드리브를 해도 다 생활밀착형이다. 열심히 생활하면서 생겨나는 거다. 하루 종일 음악만 생각하면 작사 못할 것 같다. 누구하고 만나고 다니니까 가사 쓸 일이 생기고 예능에서 할 얘기가 생긴다.



Q. 정말 잡지를 만들 수밖에 없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윤종신: 내가 하는 일들이 그러니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에 근간을 둔다. 열심히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Q. 쉼 없이 일하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당신의 인생이자 창작일 수 있겠다.
윤종신: 맞다. 생활 안에서 어느 정도 짜여진 삶을 사는 게 더 좋고. 너무 타이트한 건 못 견디지만 적당히 널널한 상태에서 창작하는 게 좋다. 어떤 분이 블로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80년대에 아침 10시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글을 썼는데, 그게 나하고 비슷하다고 하더라. 그 때 아, 이 사람 멋있구나 싶었다. 마라톤하고 출근하면서 글을 썼다는데, 나는 창작자에게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뭘 창작하는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살면 덜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

“기타가 진짜 나 같은 느낌이 든다”
윤종신│“나는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에 근간을 둔다” -1


Q. 그래서 <월간 윤종신> 중 ‘Lonley Guy’의 뮤직비디오가 지금 당신을 잘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일 마치고 한 잔 하는 남자. 뮤직비디오에서 연기도 하고, 예능에서 함께 하는 유세윤도 나오고, 곡은 김현철과 함께 하고.

윤종신: 세윤이한테 너무 고마웠다. 세윤이가 안 해줬으면 뮤직비디오를 다 나 혼자 커버했어야 했으니까. 사실 그 곡이 진짜 생활에서 나왔다. 쓸쓸한 가사를 써야 하는데 그 날 체한 거다. 그런데 노래도 해야 하고 가사도 써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썼는데 뮤직비디오와 다 잘 맞아 떨어져서 잘 나온 것 같다.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준 오프 비트는 정말 <월간 윤종신>의 1등 공신이다. (웃음)



Q. 그래서 제목처럼 쓸쓸한 노래가 나왔나 보다. 올해의 <월간 윤종신>은 전체적으로 쓸쓸한 정서가 강하기도 하고.
윤종신: 쓸쓸함을 표현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쓸쓸함이 패션 같은 거였다.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했고 멋있게 보이려고 했고. 그런데 지금은 쓸쓸함이 리얼이다. 그래서 작품들은 지금이 더 마음에 든다. 뭔가 쓰면 쓸쓸함이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Q. 왜 그렇게 쓸쓸할까.
윤종신: 뮤지션으로 정점일 때가 40대라고 생각한다. 생각들을 모아서 적절히 멜로디에 얹을 수 있는 속도나 스킬이 최적화된 때다. 나이 들면 그게 다시 느려지고. 그런데 뮤지션들은 그 때부터 대중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외국은 뮤지션들이 절정일 때 대중도 따라가 주고, 60대쯤 쉬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도 그렇다면 좋겠지만 대중과 뮤지션의 교차점이 어긋나 있다. 연기자들은 40대에 정점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션은 그렇지 못하고, 음악이니까 그런 걸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그걸 잘 잡아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서러운 것도 있고.



Q. 울컥할 때는 없나.
윤종신: 내 일에 대해서는 그리 울컥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목메지 않게 됐으니까. 사람들에게 “꼭 들어줘”라고 하는 게 많이 없어졌다. 어떤 사람이 내 노래를 듣게 되는 것에 대해 순리가 있고 운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곡 쓸 때 아등바등 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단점도 있지만 요즘에는 예전 곡들이 아등바등해서 어색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지금 겪는 일들을 겪을 거라는 걸 아는 게 슬프다. 내 아이나, 내가 사랑하는 동생들이 이런 감정들을 알게 될 거라는 게.



Q. <월간 윤종신>의 상반기 곡들이 기타를 많이 사용한 것은 그런 생각들과 연관이 있나. 혼자 쓸쓸하게 기타를 치며 만든 포크의 느낌이 강하다.
윤종신: 피아노로 작곡할 때는 편곡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코드웍이 화려한 곡을 많이 쓴다. 수려한 발라드인 거지. (웃음) 그런데 내가 혼자 만드는 곡들은 굉장히 화성이 단순한 곡을 쓰게 된다. 발라드라기보다는 미디엄 템포 정도가 좋아지게 됐고, 어느 순간 기타가 좋아졌다. 나하고 작업한 유희열, 정석원, 윤상, 김현철 이런 친구들은 화성의 대가들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에 곡을 썼을 때를 생각해보면 되게 촌스럽고 후진데 그들과 함께할 때 나오지 않았던게 있었던 것 같다. 완전히 나 혼자 만들 때의 느낌이 있다.



Q. 기타로 만든 곡들은 감정이 더 스트레이트하다. 약간 오춘기 같기도 하고. (웃음) 지금 청춘은 아닌데 정신적으로는 그런 것 같은.
윤종신: 일리 있는 이야기 같다. 안 하던 걸 뒤늦게 시도하고 있는 거니까. 기타로 쓰는 곡들이 나인 것 같다. 나 혼자 할 때의 나. 어쿠스틱 기타로 곡을 쓸 때는 아예 다른 곡들을 안 듣고 쓴다. 다 쓰고 나서야 비슷한 곡이 있나 확인해보고 편곡자와 상의한다. 곡 쓸 때는 그냥 내 기분대로 내키는 대로 한다. 그게 ‘본능적으로’와 ‘막걸리나’ 같은 곡이었다. 물론 피아노로 쓴 곡들도 멋있지만 이게 진짜 나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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