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면, 다음에도 여전히 의미 있을 것들부터 기억에 남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올 한해 더 크게 회자된 이야기, 더 화려하게 비상한 스타들도 있었지만 좀 더 새롭고 색다른 한걸음을 내딛은 다음의 이슈들을 정리한 것은 그래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2012년을 떠올리면 연상될 것 같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될 모종의 흐름의 물꼬를 튼 것일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방송계를 배회하던 보이지 않는 ‘누벨바그’를 포착해 10개의 이름으로 갈무리 했다. 한 해 동안 지켜봤고, 내년에도 주목해야 할 이름들이다.

2012 텐어워즈│김치부터 ‘여의도 텔레토비’까지 2012년의 누벨바그
2012 텐어워즈│김치부터 ‘여의도 텔레토비’까지 2012년의 누벨바그
브라우니
정 여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우니, 물어!”가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자, 사람들은 시베리안 허스키를 닮은 이 강아지 인형에 사랑을 주고, 영혼을 심고,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광고를 찍고 인맥을 넓히는 것은 기본. 낸시 랭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의 스캔들부터, 인형 최초 팬사인회까지 스타가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을 속성으로 겪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어진 신화가 아니라 대중의 힘으로 만들어낸 우화라는 점에서, 브라우니는 누구보다 새로운 한 마리다.

이하이
이하이가 놀라운 것은 단지 데뷔곡 하나로 대중에게 제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돌의 외모도, 디바의 태도도 가지지 않은 그녀의 이상하리만치 독보적인 스타일이 이미 SBS ‘K팝 스타’의 예선 무대에서 완성되어 있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야말로 이하이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흑인의 소울이나 70년대 여성보컬의 소환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냥 어디서 뚝, 하고 본 적 없는 소녀가 나타난 것뿐이다.

‘셜록’ 컴백 무대
오디오형 가수, 비디오형 가수, 그런 것들을 따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샤이니는 ‘셜록’을 통해 시각과 청각의 궁극적인 협동을 달성해 냈다. 종과 횡을 모두 활용하는 이들의 안무는 보는 사람이 더욱 음악에 집중하게 만들고, 비트의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각자 선명한 노래는 들을수록 무대를 간절히 원하게 만든다. 폭죽이나 카메라워크가 거추장스러운 날, 테크놀로지보다 단단한 연습이 더 눈부신 날이 불쑥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김치 (김C +조정치)
불러다 놓은 손님들을 마냥 못생겼다 놀려놓고도 MBC 은 당당하게 생색을 냈다. 캐릭터를 얻어가니까, 큰 선물 받은 거라고 말이다.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못친소 페스티벌’은 사은품 많은 잔치였다. 진지해서 섹시한 남자로 일컬어지던 김C는 민소매를 입고 기침을 연발하는 가녀린 들풀이었고, 여자친구 정인에 비해 인지도가 한참 부족하던 조정치는 ‘못생겨서’ 여심을 거절하는 맑은 이슬이었다. 못생긴 남자들 많고 많았지만, 이렇게 청순해서 보듬어주고 싶은 못생긴 남자들은 처음이다. 어글리의 뉴웨이브가 왔다.

프라이머리
얼굴 없는 가수라면, 무대에서도 코만 삐죽한 상자 가면을 고집하는 근성 정도는 있어야 한다. 덕분에 프라이머리는 오히려 더 뚜렷하게 트레이드마크를 각인시켰고, 얼굴이 없이 프로듀싱만 열심히 해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차트를 통해 확인 시켰다. 힙합은 거칠지 않게, 소울은 낯설지 않게, 그리고 어떤 노래도 뻔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노래하는 사람, 랩 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바야흐로 음악하는 사람의 시절인 것이다.

에픽하이
지금까지 시상식의 TPO는 잊어라. 비슷비슷한 차림새 사이에서 방심하다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조금만 과욕을 부려도 놀림감이 되기 십상인 시상식 의상에 에픽하이는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Mnet 의 축하무대에 오른 이들은 조커와 베인, 투페이스로 분장을 했고, 똑같아도 너무 똑같은 퀄리티 때문에 세 사람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래퍼의 입을 틀어막아도, 디제이의 손이 비어도, 쇼는 계속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계속 그들만 보게 된다.

‘여의도 텔레토비’
코미디의 정치풍자는 사실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의도 텔레토비’ 팀은 캐릭터를 차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슈를 반영하고 판세를 분석하며 만평의 영역까지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결국 ‘또’를 불편해 하던 새누리당은 그녀와 꼭 닮은 캐릭터 ‘꼭’을 출범시켰고, 우리는 텔레토비가 추구하는 것이 반복학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보고 또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여의도 동산의 친구들이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시
SNS가 이루어낸 가장 큰 변화는 개인과 조직의 소통 구조를 뒤흔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틈새를 긍정적으로 활용한 한국민속촌과 대검찰청의 트위터 운영자들은 조직에 캐릭터를 부여해 ‘한복이 너무해’라는 로맨스를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고양시의 SNS 운영자들은 온라인상의 이미지를 현실로 끌어들임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마케팅을 구현해 냈다. 고양이의 탈을 쓴 고양시는 어느 순간 고양고양 야옹야옹하는 말투를 구사하더니 페이스북 이벤트를 통해 최성 고양시장이 고양이 분장을 하도록 만들어 버렸고, 고양시는 전국에서 가장 귀여운 지역으로 급부상 중이다. 대구를 비롯한 다른 지역단체장들은 긴장할 일이다.

아이유
삼촌의 마음은 언제 가장 흔들리는가. 현아가 유혹적인 눈빛으로 춤을 추거나, 가인이 놀랍도록 솔직한 가사를 풀어내거나, 수지가 영화에서 키스신을 선보여도 그건 비즈니스의 영역이다. 하지만 아이유는 자신의 트위터로부터 스캔들을 촉발시켰고, 그녀의 말대로 삼촌들은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병문안이었다는 소속사의 해명은 중요하지 않다. 이후로 은혁은 자연스럽게 사건을 언급하고, 아이유는 여전히 유능한 가수다. 자신이 사랑받을 이유를 스스로 결정하는 소녀의 등장이라면, 그녀에게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선예
팬픽 속에나 존재할 것 같았던 아이돌의 연애와 결혼은 1세대 아이돌들이 서른을 넘기면서 현실로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이십대 중반의 선예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여전히 팬들에게 놀라운 소식이었다. 어린이 시절의 오디션부터, 교복을 입고 데뷔한 모습을 지켜 봐 온 사람들에게 그녀의 결혼은 오랜 해외 활동 후에 드디어 찾은 안식이겠지만 아직도 무대에 갈증을 느끼는 팬들에게는 잠시의 안녕을 고하는 아쉬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스타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저울에 올려졌다. 바늘은 더이상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디자인.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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