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KBS ‘1박 2일’의 섬마을 음악회 편에서 윤상이 제기차기 한 번 할 때 윤종신은 입수까지 했고요, 윤상이 조용히 베이스를 칠 동안 유희열은 ‘매의 눈’으로 여자보다 더 예쁜 주원이를 응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던 윤상이에요. 학창 시절에 남자 선생님 한 번 좋아해본 적 없던 제가 왜 하고많은 아이돌 그룹 놔두고 마흔 넘은 아저씨 가수에게 빠진 걸까요? 심지어 윤상 노래도 잘 모른단 말이에요. (신당동에서 이 모양)

Dr.앓의 처방전
감히 아저씨라뇨! 아저씨라는 건 말이죠, 다가오면 피하고 싶고 말 걸면 자는 척 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윤상이 어디 그런 남자인가요? 혹시나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가 제일 사랑하고 보고 싶었던 분”이라는 가사도 이장님의 칭찬 한 마디에 예정에도 없던 노래를 부르고, 자꾸 옛날 가수 같다고 데뷔곡 부르는 것을 쑥스러워할 땐 언제고 막상 ‘1박 2일’ 멤버들이 멍석을 깔아주면 개미 같은 목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불렀잖아요. 이게 아저씨인가요? 나이 때문에 굳이 아저씨라고 불러야 한다면, 멋스러운 아저씨라고 불러주세요. 활짝 웃을 때 휘어지는 눈매, 그것을 살짝 덮어주는 검은색 뿔테 안경, 베이스를 치는 가늘고 긴 엄지손가락에서 어린 가수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Dr.앓] 윤종신보다 유희열보다 윤상이 더 좋아요
[Dr.앓] 윤종신보다 유희열보다 윤상이 더 좋아요
윤상이 가장 좋아하는 호칭인 교수님을 예로 들면요, 날씨 좋은 날 연구실 창가에 기대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창가에 비친 제자들의 뒷모습에 씨익 웃어 보이는 교수님 같아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새벽녘에 조용히 통기타 하나 들고 잔잔한 노래를 불러주면서, 여중-여고를 다닌 탓에 남자라곤 와일드한 체육 선생님밖에 모르고 지낸 여자 신입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교수님 같아요. 물론 매일 저런 모습만 보인다면 지루하겠죠. 그런데요, 이 교수님이 실컷 라면을 흡입하고 밥까지 말아먹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입을 닦고 있어요. 후배 가수 윤하한테 “너랑 나는 상하관계”라고 겁을 주는 줄 알았더니 “(윤)상(윤)하 관계”라는 개그를 던진 거였어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예능에 별 욕심이나 의욕이 없어보였는데 제기 한 번 더 차겠다고 다리를 뻗질 않나, 한 때는 하루에 500통이 넘는 팬레터를 받는 “소녀들의 왕자님”이었다고 자화자찬하질 않나, 나이를 잊게 만드는 귀여움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혹시라도 이번 주 ‘1박 2일’에서 야외취침을 하시면 어쩌죠? 텐트 안에서 혼잣말로 투정부리다가 제작진이 주는 라면 한 그릇에 활짝 웃을 것 같단 말이에요. 윤상 더하기 윤상은 귀요미. 유희열 더하기 유희열은 청순미. 윤종신 더하기 윤종신은 미니미.

앓포인트: 윤상 사용설명서
싫어하는 게임이라도 세 번은 권해주세요. 싫어하는 게 아니라 수줍어서 그런 거니까요. 제기차기할 때 보셨잖아요. 한 개만 찰 거라면서 쭈뼛쭈뼛 나오더니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세 개를 찬 사람이에요.

조금이라도 젊어보이도록 카메라 각도 좀 신경써주세요. 특히 아래에서 위로 촬영하는 걸 질색하세요. 혹시라도 손수 일어나 카메라 세팅하는 날엔 정말 큰일 나요. 체력을 아껴야 하거든요. 감기가 3주째 안 떨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권영길 전 국회의원 닮았다는 소리는 입 밖에도 꺼내지 마세요. 김병지 선수도 안돼요. 물론 알 밴 시샤모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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