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의 신] #7. 첫 눈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독거의 신] #7. 첫 눈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모든 것이 하얗다. 밤새 마감을 하고 챔피언스리그를 보고 자고 일어난 오후의 풍경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순수한 흰색을 보며 마음이 깨끗해지고 동심이 살아나는 건, 훼이크고 가뜩이나 바깥에 나가기 귀찮은 독거인에게 잔뜩 쌓인 눈이란 독거를 넘어 고립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얼면 어는 대로, 녹으면 녹는 대로 귀찮기 그지없는 애물단지에 왜 사람들이 설레는지 참 모르다가 영원히 모를 일이다. 희고, 차갑고, 부드러운 것 중에서 설렐만한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지 않은가? 독거인이 사물을 판단하는데 있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맛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기준은 없다.

[독거의 신] #7. 첫 눈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독거의 신] #7. 첫 눈보단 바닐라 아이스크림
설레면 설레는 대로 설레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도 되지만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뿌려주신 것에 대응해 우리는 하얀 아이스크림 믹스 가루로 눈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자.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만 힘들 뿐이다. 믹스 한 봉에 우유 200㎖를 넣어 섞은 뒤, 거품기로 거품을 내어 얼리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거품을 내는 과정이다. 거품기로 성심성의껏 2분여를 저어도, 그대로다. 아무래도 온도 때문인 것 같아 추운 베란다에 나가 또 열심히 저어도, 그대로다. 왜 나는 독립할 때 바보처럼 전동거품기를 사지 않았나 후회가 될 때까지 베란다에서 덜덜 떨며 저으면 이제 뭐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 같다. 이걸 만들어 먹느니 눈을 퍼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죽어라 저으면 이제 조금 점도가 생긴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눈이고 아이스크림이고 ‘독거의 신’ 마감이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과 함께 반죽을 싱크대에 버리려고 베란다에서 나오면, 비로소 크림 비슷한 느낌의 반죽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전에 브라우니를 만들 때 사놓았던 초코칩과 깐 호두 으깬 것을 넣어 섞은 뒤 냉동실에 넣어 3시간 기다리면 그걸로 끝이다. 조금 고생했지만 뭐 어떤가. 첫 눈의 추억이란 녹으면 끝이지만, 두고두고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은 언제나 달콤한데.

오늘의 교훈: 눈 쌓이기 전에 겨우내 먹을 라면부터 쌓아놓자.

글, 사진.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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