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 싸운다. 소리 지른다. 욕한다. 하지만 강하다. 활기차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예쁜 여주인공이다. 정려원은 그렇게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려원
정려원
샤크라: 정려원이 활동했던 여성그룹. 당시 호주에서 살던 정려원은 2주 동안 한국에 여행을 왔다 “한국 연예계가 궁금해서” 본 오디션에 합격해 샤크라로 활동한다. 정려원은 부모님이 호주로 투자 이민을 가면서 어린 나이에 호주로 갔고, 부모님이 사기를 당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13살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콜라를 던지고 벽돌도 던지”며 자신에게 인종차별하는 사람들을 견디며 돈을 벌었다. 정려원은 이 때의 경험 때문에 “사람이 누구를 싫어하는 것”에 익숙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덤덤하다고. 이런 힘든 10대시절 한국은 “한국은 유학생들이 오는 나라”였고, 정려원은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한 번쯤 한국에 가고 싶어했다. 정려원은 정말 돈을 모아 한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2주 여행이 평생의 안착으로 변했다. SBS 의 무명 작가 이고은이 100억짜리 드라마의 작가가 되는 것만큼 드라마틱한 데뷔.

영민/광민: 정려원의 드라마 데뷔작 MBC 에 함께 나온 그룹 보이프렌드의 멤버. 정려원은 당시 어린 아이들이였던 이 쌍둥이 형제들에게 방송 마지막에 편지를 보냈다. 샤크라는 데뷔 곡 ‘한’으로 인기를 얻은 이후 그럭저럭 이름을 알렸지만 더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또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는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할 만큼 내성적인 성격에 “누가 툭 건들면 눈물을 쏟았다”고 할 만큼 가수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정려원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연기였다. 원래는 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우는 장면을 찍던 도중 자신이 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적극적으로 연기에 덤비다보니 출연 분량이 점점 늘어 결국 마지막회까지 출연했다. 또 한 번의 인생 오디션. 다시 합격. 하지만 오디션은 계속 남아 있었다.

김병욱: SBS 의 연출자. 이 작품 중간에 정려원을 캐스팅했다. 정려원은 예쁜 외모에 만만찮은 성격을 가진 간호사로, 연애에 대해서도 현실을 생각하고, 자신의 가족사 때문에 아픔을 갖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캐릭터가 확 튀기 보다는 현실적인 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기 경력을 쌓은 셈. 시트콤이었지만 종종 자신의 현실에 대해 처연한 표정을 짓는 정려원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샤크라의 해체와 함께 소속사를 옮기면서 연기자로 본격적인 준비도 했다. 그러나 어떤 연출자는 그에게 “가수여서 떨어뜨린다”고도 했고, 어떤 연출자는 10시간 기다려서 촬영한 신에 대해 “걷는 게 이상하다”며 소속사 대표까지 불러 화를 냈으며, “너 노래나 한 번 해봐”라고 하기도 했다. 편견은 생각보다 더 강했고, 드라마란 드라마는 모두 오디션을 봤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작품에서는 주연 여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출연해야 했다. “매일 길고 어둡고 추운 터널”을 걷는 것 같던 1년. TV를 안 보고 살았다.

노도철: MBC 의 연출자. 정려원은 이 작품에서 허영끼 많은 뱀파이어로 출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때로는 철이 없어 보일 만큼 생각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순간 슬픔을 드러내는 연기는 연기자로서 정려원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할만하다. 아직 멜로의 여주인공은 힘들었지만 시트콤은 출연할 수 있었고, 컬트적인 시트콤이었던 는 코미디와 비극 양쪽을 보여주는데 적합했다. 그렇게 조금씩 터널을 지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니엘 헤니: 정려원에게 드디어 연기자로서의 햇빛을 쬐게 한 그 작품, MBC 의 상대역. 당시 다니엘 헤니의 상대역인 희진은 영어를 잘 해야 해서 정려원이 캐스팅됐다고. 남녀 주인공의 연애가 진행될 즈음 남자 주인공에게 찾아온 옛 연인은 보통 사랑의 훼방꾼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출-각본-연기가 마법 같은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려원이 연기한 캐릭터에게 한 남자를 사랑했던 옛 여자친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설득력있게 부여했고, 다니엘 헤니와의 관계 역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상큼하게 그려내면서 메인 커플 못지 않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초반에는 우울한 비련의 여자같던 캐릭터가 한국 생활 동안 점점 밝아지는 모습은 비극적인 멜로보다는 유머가 섞일 때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정려원의 얼굴을 끌어냈다. “가수라서 안 돼”라고 하던 사람들이 “가수 중 연기자로 성공한 모범사례”로 정려원을 꼽기 시작했다. 정말 에 나올 법한 이야기.

김래원: MBC 에서 정려원의 상대역. 이후 주연으로 출연한 MBC 는 평균 4%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작품 내내 우울한 표정만 짓고 있어야 하는 정려원의 캐릭터도 에서 보여준 매력을 잇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는 정려원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됐다. 산골 소녀였다가 재벌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데렐라가 되는 캐릭터는 정려원의 데뷔 과정과도 비슷했고, 한 신 안에서도 천진난만한 모습과 달라진 상황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모습은 여주인공 한 명의 심리 변화로 극의 완급조절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화 에서는 아예 술을 마시면 성격이 돌변하는, 하지만 결국은 슬픔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아련한 얼굴에 산골 소녀의 억세고 활기찬 코미디 연기를 함께 가졌고, 코미디를 많이 해도 작품 마지막 쯤에는 멜로의 이미지가 남는 배우.

정재영: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정려원은 영화에서 정재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두려워하는 자폐적인 성격의 여성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촬영이 정려원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방에서 이뤄졌고, 정려원은 영화 마지막까지 화장 대신 땀으로 범벅된 얼굴과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채 연기한다. 여배우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배역이었지만, 정려원의 첫 등장과 함께 흐르는 내레이션은 캐릭터의 마음을 이해하게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이 영화에서 정려원은 무조건 밤 9시에 잠드는 설정이 있는데, 정려원은 오디션에 계속 떨어져 TV를 안 보던 시절 실제로 9시에 잤다. 영화 의 김주혁은 정려원에 대해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하기 벅차해 하는 것 같다”고 했고, 정려원은 연기를 한 뒤 “이 작품을 죽지 않고 끝낸다면 내가 이긴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거나 “(캐릭터를) 태생적으로 분석을 못한다. 직감적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테크닉보다 경험과 직감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스타일.

이범수: SBS 의 상대역. 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SBS 의 아쉬움을 털어낸 것은 물론, 에서 보다 극단적인 캐릭터까지 소화하게 된 정려원의 연기폭을 보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완전히 헝클어진 모습으로 길거리에서 자장면을 먹기도 했다. 이런 배역 때문인지 초반에는 “내가 연기했던 친구들과 너무 다르다”며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어려워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이범수는 정려원에게 “너가 작품에서 신나게 노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고, 정려원은 캐릭터의 외면보다는 어떤 상황이든 강한 생명력으로 헤쳐나가는 성격에 초점을 맞추면서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욕을 하고 망가진다는 점에서는 에서 김선아가 보여준 삼순이의 캐릭터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자신에게 맞췄다. 독특하고, 극단적이지만 작품 안에서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여주인공의 등장.

김명민: 정려원이 출연하는 SBS 의 상대역. 에서 정려원이 연기하는 이고은은 에서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처럼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은 순박한 일면을 가졌다. 그리고 희망이라곤 찾기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서 스스로 희망의 크기를 키워가는 것은 정려원 자신의 인생이기도 했다. 재벌을 연기해도 억센 생명력을 가졌고, 평범한 여성을 연기할 때도 신데렐라가 되기 보다는 남자와 싸우며 자신의 일을 찾는다. 은 한창 여주인공으로 활동 중인 배우가 한국 드라마 특유의 코드에서 조금 비껴난 방식으로도 생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아직 완전히 새로운 배우의 유형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남들과 다른 색깔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정려원이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높다.

Who is next
정려원과 에 출연했던 김선아와 영화 의 주연을 맡았던 차태현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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