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고두심의 요리의 정석>은 강순의와 김막업, 심영순이라는 대가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마치 수업하듯 조리 과정을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주고, 완성도를 결정짓는 사소한 차이를 일러주는 이 프로그램은 왕초보라 할지라도 요리에 도전해보고 싶게끔 한다. 그렇지만,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과연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지난 10월 25일, 때마침 백설요리원에서 심영순 선생님의 쿠킹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메뉴는 삼치조림, 그리고 김을 첨가한 실파무침. 대가와 함께라면 못할 것도 없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덜컥 참가 신청을 했다. 다음은 주방용 칼도 제대로 잡을 줄 모르는 상태로 두 가지 메뉴를 완성하기까지의 체험기이자 고난기다.



괜히 한다고 했어. 칼과 앞치마, 각종 식재료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아일랜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심호흡을 해봤지만 이미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워진 뒤였다. 요리를 시작한 다른 이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뒤로 후회가 밀려왔다. 왜 이런 무모한 짓을 시작했을까. 사실 쿠킹클래스에 참여하기 전, 걱정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혹시 요리를 너무 잘해서 재미없는 사진이 나오면 어쩌나, 하고 쓸데없는 건방을 떨었을 뿐이었다. 내가 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덜 익은 김치를 마가린에 담그다시피 볶아 기름이 둥둥 뜨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육수 소스를 푼 물에 끓인 면만 헹궈다 넣으면 완성되는 냉면을 두 젓가락 이상 먹을 수 없는 수준으로 망쳐버렸던 나날들을 어째서 기억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렇게 요리하기가 쉬워요. 어때요, 쉽죠?” 심영순 선생님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선생님은 오늘의 실습 음식인 삼치조림과 실파무침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뚝딱 만드셨으니까. 약 20분 전에 전수받았던 레시피를 기억해내려고 애쓰며, 칼을 잡았다. 손이 달달 떨린다.



그래, 확실하진 않지만 파부터 손을 대면 될 것 같았다. 시들시들한 파 끝 부분을 버려야 하는지, 같이 버무려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으나 결국은 버렸다. 왜? 그것 말고도 먹을 수 있는 부분은 많으니까. 손으로는 파의 굵은 부분을 양념에 재우고, 머릿속으로는 삼치를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다듬어진 삼치가 준비된 덕에 직접 포를 떠야 하는 시련은 겪지 않았다. 물론, 비릿하고 미끄덩한 삼치를 맨손으로 잡고 삼등분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포토그래퍼 선배가 측은지심을 발휘해 “내가 할까?”라고 물어왔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칼을 잡은 이상, 이 요리는 내가 완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토막 난 삼치를 녹말가루에 굴리고, 프라이팬에 올렸다. 살 쪽을 먼저 구워야 나중에 부스러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실수로 몇 토막은 껍질 쪽을 먼저 굽고 말았다. 급하게 프라이팬에 손을 넣어 다시 뒤집었다. 뜨거운 건 문제가 아니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차가운 물에 괜히 또 한 번 씻었다.



“저기요, 이거 이렇게 두면 안 되는데. 선생님께서 50퍼센트만 익히고 꺼내라고 하셨잖아요.” 옆사람의 지적으로 정신이 돌아왔을 땐, 삼치는 필요 이상으로 바짝 구워지고 있었다. 수상쩍은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젓가락으로 허둥지둥 삼치 토막들을 꺼내다가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도 새까맣게 태우기 전엔 건졌으니 다행이야. 한숨을 내쉬며 조림에 들어갈 무를 썰었다. 삼치와 씨름한 걸 생각하면 이건 일도 아니었다. 큼지막하게 썬 무를 팬에 깔고, 그 위에 다시 삼치를 누인 다음 소스를 붓고 졸이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긴장감도 차츰 잦아드는 듯했다. 덕분에, 절여두었던 파무침에 부순 김을 넣고 버무리며 마음의 평안을 유도할 수 있었다. 꽤 괜찮은 냄새가 날 때쯤 접시를 꺼내어 완성된 삼치조림을 담았다. 캐러멜화한 것처럼 진한 갈색을 띤 음식은 예상보다 맛깔스러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한 젓가락 발라내 입에 넣었다. 이럴 수가. 선생님께서 만드셨던 것과 똑같은 맛이었다. 정말이다. 과정은 서툴었을지언정 손맛은 죽지 않았어. 치트키를 써서 10단계쯤 레벨업한 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그날의 쿠킹클래스를 마쳤다. 다만, 그 맛이 심영순 선생님의 특제소스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장소 협조. 백설요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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