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노래한다. 하지만 이를 탓하거나 끌고 오려하진 않는다. 그냥 농담이나 한 마디 하자며 목청을 틔운다. 친절하고 고운 수식 없이 뱉는 말이 사람들에게 오해 없이 들릴 수 있다면, 겉모양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이랑의 첫 정규앨범 은 그런 물음을 직관적으로 파고든다. 본명이 이랑인 이랑이 전원선이 뽑히면 꺼지는 2006년 산 맥북의 내장마이크를 이용해 혼자 녹음한 음악을 엮고 마스터링만 거쳐 태어난 이 앨범에서, 이랑은 은유를 파악하거나 한 번 더 생각할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떠오르는 대로 주절주절 쏟아낸 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스스로 골라내며 노랫말을 짓는 그의 작업 방식은 확실히 이랑의 음악이 그만의 결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과정에서부터 보여준다. 앨범 녹음 후 공연을 시작하며 친구 해미와 드러머 인철이 합류해 3인조 밴드가 된 이랑을 만났다. 이랑은 농담을 잘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느슨하지만 선명한 진담이 숨어 있었다.

이랑이 그린 에서 을 들고 있는 이랑 뒤로 별을 엄청 그려놓았더라.
이랑: 실제로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해미: 나는 일단 내 앨범이 아니라서…
이랑: 해미도 인철도 앨범에는 참여를 안 했다. 앨범 작업 이후에 합류했다. 재킷 만들 때 의논하긴 했는데. 두 사람은 그냥 내 앨범이 똑바로 (웃음) 나올 수 있게 옆에서 도움을 줬다.

생애 첫 정규앨범인데 왜 그리 무던했을까.
이랑: 레이블 미팅하고 앨범 나오기까지 1년 8개월 정도 걸렸다. 나는 음원 다 줬으니까 한 달 정도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엄청 할 게 많더라. 사장님이 일을 되게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결과적으로는 좋다. 이랑이라는 뮤지션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했다. 웃긴 뮤지션 아니고, 요정 아니고, 이런 식으로. 내 손을 떠난 채 준비가 길어지니까 나중엔 앨범에 대한 감이 없어져 버리더라다. 거의 “나오든가 말든가”였다. (웃음)

“아이돌 노래를 커버해보고 싶다”
인디 10│이랑 “보여달란다고 다 보여주지는 않을 거다”
인디 10│이랑 “보여달란다고 다 보여주지는 않을 거다”
만들어 준 이미지와 실제 이랑의 이미지는 맞아 떨어지나.
이랑: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마 나 혼자 했으면 홍대 바닥 플리마켓 같은 데서 그냥 몇 장 팔고 말았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웃음)

앨범 녹음을 마친 후 멤버들을 모은 게 특이하다.
이랑: 점차 공연을 해나가야 했는데 혼자 공연하는 게 정말 싫더라. 공간을 다 책임져야 하니까, 부담이 있어서. 근데 옆에 누구 한 명만 있음 하나도 안 떨린다. 이제 우린 세 명이니까 더 안 떨린다. 처음에 해미한테 말을 살짝 꺼냈더니, 너무 흔쾌하게 “오! 응! 재밌겠네?”해서 그냥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해미 연습도 되게 열심히 한다. 혼자 듣고 생각해서 늘 연습해 온다. 예전에 혼자 녹음할 땐 코러스도 혼자 넣으면서 했는데, 함께 공연하니 옆에서 여러 사운드를 구현해주는 게 되게 좋다.

인철은 다른 밴드 활동을 하던 중에 합류 제안을 받지 않았나.
인철: 맞다. 처음 합주하러 갈 때 엄청 막막했다. 이랑 음악이 꽤 이질적이어서 어려웠다. 나름 많이 들어보고 카피나 구상도 해봤는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히더라. 드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치면 재미없으니까 바꿔야 하는데, 첨엔 어디서 바꿔야할지 몰랐다. 드러머 입장에서 정말 거의 새로운 걸 해보는 상태였다. 이제는 드러머로서의 내 영역을 넓혀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서로 음악적인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겠다.
이랑: 셋이서 같이 곡을 만들지는 않으니까, 음악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지는 않는 것 같다. 아직은.

곡 작업을 함께 하지 않은 밴드로서 걱정되는 부분은 없나.
인철: 일본 공연 함께 다녀오고 앨범 나오기까지 준비하면서 그래도 밴드 이랑의 색깔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재밌는 건, 그 이유가 각자 하는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점이다. 해미는 해미대로 가구 만드는 일을 하고, 랑이는 랑이대로 그림 그리고 노래 쓰고 영화도 한다. 나도 다른 밴드를 함께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랑의 색깔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해미: 내 생각엔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것 같다. 이랑 음악은 누구의 것도 아닌 이랑의 것이라는 지점이 있다. 우리가 터치하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다. 이대로가 좋다. 공연 앞두고 “이렇게 해볼까?” 제안하는 건 있지만 큰 뼈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해서 채워주는 느낌을 만드는 것 정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이랑이 아이돌 노래를 커버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해미: …
인철: … 아이돌?
이랑: 하하하. 멤버들이 동의 안 하면 난 안 한다. 집에서 혼자 하면 된다. (웃음) 2NE1 노래 같은 거 코드표 열심히 찾아보면서 혼자서도 재밌게 잘 부른다. (웃음) 새로 나온 ‘I LOVE YOU’가 좋던데 코드가 엄청 어렵더라.

“이해를 못하는 것들을 노래로 만든다”
이랑에게 음악의 시작은 어떤 것이었나.
이랑: 2006년에 처음 기타를 잡았다. 기타 코드는 못 외운 채 손 모양을 한 개, 두 개 배워나갔다. 두 개의 손 모양을 알게 된 후에는 그 둘을 연결했을 때 나는 소리로 마구 이런 저런 걸 쳐봤다. 야금야금 알아가는 재미를 원동력으로 계속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제는 기본 코드 다 안다. A,B,C,D,E,F,G. 근데 그 다음부터는 어렵기 시작했다. 손이 옆으로 막 가야 하는 거다. (웃음) 그때부터는 별로 알고 싶지가 않다.
해미: 충격 발언인데. 이걸 헤드라인으로… (웃음) ‘이랑, A,B,C,D,E,F,G 말고는 상관 안 해.’
이랑: 어렵다. (웃음) 손을 안쪽으로 옮겨서 잡는 걸 내 머리가 원하지 않는다. 해보려고, 계속 코드표도 보고, 가르쳐달라고 해서 주워들어도 손이 안 간다. 아무래도 누워서 기타치고 노래 만들 때, 이쪽이 잡기 편해서 그런 듯하다. 어려운 건 잘 안하게 된다.

언젠간 안쪽의 음들을 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이랑: 아, 그럴 때 있지. 근데 그럼 중간에 포기한다. 한번 해보려고 운지 찾다가 점점 안쪽으로 가면 잘 모르겠어가지고… 포기. (웃음)
인철: 그래도 F코드 같은 것 잡을 때 좀 잘 잡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건 아는데, 자꾸 소리가 나다 말고 그러니까…

앨범 얘기를 해보자. 데모버전이긴 하지만 의도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외부 소리들이 함께 녹음되어 있더라.
이랑: 난 보통 잡음이 섞인 상태의 소리에 익숙하다. 노래 만들 때도 그게 편하다. 영화 사운드 작업할 때도 조용한 상태에서, 대사가 깨끗하게 들리는 상태에서 하면 정말 미칠 것 같다. 계속 일부러 잡음을 넣는다. 깨끗하게 동시 녹음을 한 것 위에다가 후시로 잡음을 계속 넣었다. 데모도 사실 일부러 창문 열고 한 것도 있고 차 지나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도록 했다.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노래를 들으면 거부감이 든다.

‘삐이삐이’에 넣은 돌고래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노래 자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보고 소리를 구현해내나.
이랑: ‘삐이삐이’는 돌고래 학살 영화를 보고 만든 곡이다. 돌고래가 불쌍해 노래를 만들면서 영화에 나오는 돌고래의 소리를 얹었다. 다른 노래의 소리들은 보통 그냥 들려서 한다. 기타, 보컬 녹음하고 나면 다른 소리들이 들리고, 이걸 구현하려고 하면서 얹는 거다. ‘이상한 일’에 나오는 “빰빠밤 바바밤” 이런 소리도 그냥 나한테 들리는 소리들이었다.

이랑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하듯 쓴 가사에 많이 공감하고 있다.
이랑: 사실 쓸 때는 공감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렇게 앨범으로 내면서는 정말 그걸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일기를 글로 쓸 때도 있고, 컴퓨터로 쓸 때가 있고, 부를 때가 있다. 부를 때 나왔던 것들이 이 노래들이다. ‘너의 리듬’ 같은 경우도 몇 시간 동안 기타 치면서 말을 막 주절주절 쏟아냈다. 그런 뒤에 이거 싫어, 이거 싫어, 하면서 고르다 보면 가사가 정리된다.

결국 은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이랑: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에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이해 안 되는 걸 노래로 이야기하고, 영화나 그림, 글로 이야기하는 거고, 도 그렇다.

이해 안 되는 것들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나.
이랑: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나랑 같은 사람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았다. 난 사람 안 변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대신에 안 변하는 걸 좀 꼬아서, “야 이거 웃기지 않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로 말하면 100명만 좋아하는 영화여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는 거고, 음악도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면 좋겠다, 반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너의 리듬’을 어떤 친구를 위해 만들었다. 그 친구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변해가서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고, 슬픈 마음이 들더라. 이런 마음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 할 지는 모르겠다”
인디 10│이랑 “보여달란다고 다 보여주지는 않을 거다”
인디 10│이랑 “보여달란다고 다 보여주지는 않을 거다”
재킷과 싱글앨범 재킷에 모두 오리가 등장한다.
이랑: 맞다. 하하하. 연결시키는 걸 되게 좋아한다. 막 이 앨범에도 있고, 저 영화에도 있고 그렇다. 오리는 정말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 왜 좋아하게 됐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좋아져버렸다. 내가 계속해서 뭔가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에 찍은, 꼬맹이 때 셀프로 찍은 영상부터 언젠가 마지막에 내가 찍을 영화가 완성되는 모든 과정에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걸 좋아하면서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오리 아이템을 열심히 사서 모으겠다.
이랑: 그냥 그린다. 나는 소비를 잘 안 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자가 생산을 한다. 노래 만들고, 쓰고, 그림 그리고. 오리가 좋으면, 오리를 그리면 된다. (웃음) 싱글앨범 재킷에 있는 오리 책은 오리 좋아하니까 누가 선물해 준 것이다. 어렸을 때 H.O.T.를 좋아했지만 집에는 안 찾아갔다. 집에서 그냥 H.O.T. 장우혁과 만나서 사귀게 되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계속 생각한다. (웃음) 노트에다 쓰기도 하고. 태양도 좋아한다. 그래서 태양하고 전화하는 걸 혼자 해보고 그런다. “어, 영배야! 어, 어. 오늘 술 마실까?” (웃음)

을 듣다보니, 이후의 이랑이 궁금해지더라.
이랑: 사실 앞으로를 모르겠다. 음악을 많이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건 잉여 시간이 많아서였다. 혼자 외롭고 슬프고 그럴 때, 혹은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너무 많을 때 만들었다. 지금은 그럴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영화감독 하고 싶고, 시나리오도 쓰고 싶다. 지금도 슬프고 외롭고 잠이 안 올 때면 노래를 부르지만, 그런 시간이 예전만큼은 없다. 예전에는 매일 밤마다 노래를 불렀고, 만들었다. 한 달 정도의 기간에도 노래들이 막 쏟아져서 나왔었다. 앞으로는 정말 모르겠다.

인터뷰하고, 쇼케이스 준비를 하는 것처럼 이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이랑: 이러면서 만약에 잘 된다 한들 왠지 마구 흥분해서 그 상태로 내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보여줘요, 보여줘요!” 한다고 해서 “알겠습니다!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렇게는 안 할 것 같다. 딱 일본 공연 가는 기분으로 준비해서 할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나 그때 진짜 행복했거든. 뭔가 손꼽아 기다렸다가 하는 맛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이랑은 신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였다. 이제부터는 그 안에 편입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랑: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안 할 것이다. 다시 원래 하던 대로, 혼자 만들고 친구들한테 보내주는 식으로 돌아갈 것 같다. 나는 포기도 잘 하고 도망도 잘 친다. 그래서 좀 괴롭다 싶으면 다시 들어가서 혼자 내 노래 들으면서 치유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보면 사람들이 무대 올라갈 때 긴장되니까 “할 수 있어!”라며 소리를 마구 지르더라. 물론 그런 비슷한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잘하자” 하고 올라가는 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끌어 올려야 하는 일이 된다면 자기 일이 아닌 거라고 생각한다. 안 하는 게 낫다고 믿는다.

글, 인터뷰. 이경진 인턴기자 romm@
인터뷰.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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