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어쩔 수 없이, 외모는 첫인상이 된다. SBS 에서 처음 대중과 만난 이진욱이 오랫동안 ‘잘생긴 남자’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이국적인 선으로 그려진 얼굴 안에 사연 많아 보이는 눈동자를 가진 그는 한동안 가능성으로 설명되던 배우였다. 나지막한 음성과 성실한 캐릭터 해석 능력은 배우로서 충만한 재산이었지만, 언제나 비밀을 간직한 채 여자 주인공 주변을 맴도는 그의 인물들은 배우로서 그에게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어딘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물론 드라마 밖에서도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좌충우돌했던 KBS 에서조차, 이진욱은 마치 나무처럼 묵묵하고 꿋꿋하게 무뚝뚝한 최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맨스의 핵심은 의외성에서 오는 거죠”라는 이진욱의 설명은 정확히 그의 현재를 설명해낸다. tvN 에서 이진욱이 연기한 윤석현은 그가 처음으로 짜증을 부리고, 시비를 걸고, 온갖 못난 감정들을 표현한 인물이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붙잡고 싶은 마음을 숨기느라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 심지어 그리운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는 윤석현은 사실 이진욱에게도 낯설고 어색한 성격인 것이다. 하지만 이진욱은 “이해하기보다는 그대로 믿고 납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옷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도 좀 생각을 덜 하고, 말로, 행동으로 바로 옮겨 버리려고 해요. 현장에서 장난도 많이 치죠”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억양으로 새삼스럽게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익숙한 얼굴에 의외의 분위기가 스칠 때, 로맨스는 시작되는 법. 그가 아끼는 영화 속의 선율들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날수록 사람들은 조금 더 이 남자에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1. James Horner의 < Legends Of The Fall O.S.T >
“음악을 정말 즐겨 듣습니다. 쉬는 날에는 무조건 음악을 찾아 들어요. 좋은 음반을 소개받거나해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볼 때도 귀에 남는 음악이 있으면 나중에 꼭 다시 찾아서 들어요. 도 화면만큼이나 음악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죠.” 좋아하는 음악이 너무 많아서 골라내기가 어렵다며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진욱이 가장 첫손에 꼽은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는 이다. 브래드 피트와 안소니 홉킨스가 함께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며, 영화의 음악은 , 등 할리우드 대작의 사운드 트랙을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제임스 호너가 총괄했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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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or the Love of a Princess’가 수록된 < Classic Love At The Movies >
제임스 호너의 그림을 그리는 듯한 솜씨는 아무래도 이진욱에게만큼은 100% 성공적으로 통하는 가보다. 이진욱이 두 번째로 고른 영화 는 묵직한 남자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과 닮아 있으며, 역시 제임스 호너가 사운드 트랙을 작업한 영화다. “멜 깁슨이 마지막에 프리덤을 외치는 그 장면이 워낙에 유명하죠.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평원을 담아내는 영화 음악이 저는 먼저 기억납니다. 공주의 사랑, 제목도 참 의미심장하죠.” 노래보다는 대곡, 목소리보다는 악기의 선율을 선호하는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선곡으로 “현이 들어간 곡들이 요즘 좋다”는 그의 설명과도 부합하는 곡이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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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nnio Morricone의 < Love Affair O.S.T (러브 어페어) >
장대한 풍경 못지않게, 절절한 사람 역시 음악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이진욱이 세 번째로 선택한 음악은 의 사운드 트랙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내용만큼이나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음악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유명한 바람둥이였던 워렌 비티와 착실한 이미지의 아네트 베닝이 결혼 후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아네트 베닝이 어린이들과 함께 부르는 비틀즈의 ‘I Will’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넘버다. 그러나 이진욱이 추천하는 트랙은 엔리오 모리꼬네 특유의 드라마틱한 감수성이 빛나는 ‘Piano Solo’로, “최근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선호하게 된다”는 그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이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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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zart / Adagio Form Clarinet Concerto’가 수록된
“오프닝에 나오는 그 곡 있잖아요. 따라라라라 라라라” 유명한 의 첫장면을 설명하면서 이진욱은 클라리넷의 선율을 직접 입으로 불러주었다.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OST를 맡은 존 베리는 007 시리즈, 와 같은 액션 영화에서부터 과 같이 장대한 서사극까지 다양한 작품의 음악을 담당한 분야의 명인이다. 한편, 이진욱은 영화를 떠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원래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이 곡은 영화와 함께 더 떠오르네요. 최근에는 러시아 작곡가들을 주로 찾아 듣고 있어요.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를 계속 듣죠”라며 또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잠시 공개하기도 했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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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lberto Iglesias의 < Hable con Ella >
이진욱이 고른 곡들 중에 유일하게 목소리로 노래한 곡은 브라질의 밥 딜런으로 불리우는 까에따노 벨로소의 노래 ‘Cucurrucuc Paloma’다. “원래 까에따노 벨로소의 노래들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 노래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에,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등장하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문제작 에 라이브 장면으로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진 이 노래는 이미 왕가위 감독의 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에 등장한 바 있다. 또한 원곡은 보사노바가 아닌 멕시코의 유명한 스탠다드 넘버로, 수많은 라틴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된 명곡이다.
이진욱│그림처럼 기억되는 영화의 선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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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쉬는 날에는 거의 음악을 찾아 듣습니다. 좋은 앨범을 추천받아 구입하기도 하고, 잘 구하기 힘든 노래는 블로그를 뒤져서라도 들을 정도입니다. 킨이나 콜드 플레이 같은 밴드들도 좋아하고, 엑스 재팬도 좋아하고, 어떨 때는 판소리를 찾아 듣기도 해요.” 음악 이야기로는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은 얼굴로 이진욱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휘저었다. 이제 막 새로운 얼굴, 그래서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다시 대중을 만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도 윤석현처럼 평균적인 대한민국 남자의 모습이 많이 있어요. 그런 지점에서 인물에 접근했어요”라고 자신의 특별함을 슬쩍 헹궈내 버리는 능청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다음번에도 우리는 조금 더 달라진 모습으로 의외의 매력을 발산하는 이진욱을 어김없이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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