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벌꿀
1. 바쁘니까 벌꿀이다.
2. 그 바쁨까지 사랑한 거야.

‘남의 말이나 글을 자신의 말이나 글 속에 끌어 씀’이라는 의미의 인용은 보다 탄탄한 논거를 제시하거나 풍부한 표현을 통해 상대의 이해와 공감을 돕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평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침묵과 은인자중의 자세를 견지해 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또한 때에 따라서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나 의 고사 등을 인용하며 자신의 심경과 의중을 어필해온 바 있다. 그리고 박 후보는 지난 1월 2일 SBS 에 출연해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아버지의 대통령 재임 도중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뒤, 스물두 살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다 하느라 슬픔조차 잊은 채 경황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말했다. “어느 날 제가 일기를 쓰는데 그 말을 쓴 기억이 나요.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그게 제 입장이었어요.”

이는 18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저서 에 수록된 ‘지옥의 격언’ 중 하나인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의 오용 혹은 혼용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형용사 ‘바쁘다’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 움직임이나 상황 등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박 후보의 발언이 유기물인 ‘벌꿀’에마저 인격을 부여, 극단적으로 바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벌꿀은 벌집이나 병에 담긴 채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정지 상태의 물질이지만 그러한 벌꿀마저 자신의 운명을 두고 슬픔에 잠겨 있는 대신 바쁜 마음가짐, 나아가 부지런한 몸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이 명언의 참뜻이 있는 것이다.

용례 [用例]* 바쁜 벌꿀은 바지 입을 시간도 없다.


* 바쁜 벌꿀은 돈 벌 시간이 없다.
박근혜 “아르바이트 시급 5천원 안돼요?”

* 바쁜 벌꿀은 안전관리할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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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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