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성형외과에 찾아왔다. 쌍둥이 언니를 둔 그녀는 얼굴을 바꿔 달라 말한다. 요구 사항은 단 한 가지. 언니와 닮지 않아야 한다. 외모는 거의 똑같지만 모든 것이 언니 다음이라 생각하는 그녀는 얼굴로 인생을 리셋 하려한다. 미스코리아 진을 닮았어도 누군가와 닮은 외모는 때때로 최악의 콤플렉스가 된다. 마른 체구의 한 남자는 근육을 원한다. 우락부락한 남성 모델의 사진을 가져온 그는 자신의 용모를 마초로 바꿔 달라 요구한다. 남편이 치매에 걸린 한 할머니는 그에게 과거를 돌려주기 위해 주름살 시술을 받고,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애인에게 근사한 가슴골을 선물하기 위해 유방을 확대하기도 한다. 자기만족부터 상처의 치유,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사랑의 완성까지 세상에는 성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올 여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이 꺼내 놓은 이야기다.

성형 수술로 질문을 던지다
성형외과에서 만난 일본인의 우울
성형외과에서 만난 일본인의 우울
성형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다. 2010년 나가이 마사루가 주연한 는 완벽한 얼굴 교환으로 인생을 재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고, 2002년 요네쿠라 료코 주연의 은 식의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였다. 성형은 대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거나 연애 고민의 해결책, 혹은 자아와 정체성을 주제로 한 SF 현대극의 소재였다. 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사연은 비슷하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며, 그 현재를 새롭게 다듬고 싶어 한다. 해결점도 얼핏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작은 사연들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그린다. 철저하게 미를 추구하는 성형외과 BSC에 고리타분한 외과 의사가 들어오며 벌어지는 충돌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은 개별의 에피소드를 통해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품고 사는 다양한 고민들을 들춰낸다. 성형은 일종의 키워드인 셈이다.

아름답지 못해 괴로운 것은 외모 뿐 만이 아니다. 정면으로 부딪히지 못해 고민만 반복하는 문제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찾지 못하는 답, 용기가 없어 묻어두고만 있는 속내. 사람들은 결국 아픈 현실을 회피하며 끊임없는 자학과 자위에 시달린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의사 키시(사토 류타), 전신 성형을 해 새 인생을 꾸렸지만 연애에 트러블을 맞는 간호사 키시타니(호리키타 미키), 키시를 홀로 연모하는 공무원 쿠로사키(아야노 고)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사연은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수많은 상담자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상처는 그저 빨리 치유되기를 바랄 뿐이며, 성형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픈 사람들이 꺼내는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그리고 은 성형이 추구하는 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재생의 노력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 필요한 하나의 방법이라 말한다. 성형은 최소한 아름다움, 행복에 대해 질문하며 닫혀있던 속내를 돌아보게 한다. 비록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 되었지만 은 어쩌면 일본의 미래 얼굴을 그리는 작은 시도가 아니었을까. 결과는 미흡했지만 오늘날 일본을 사는 클레오파트라들의 발걸음은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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