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는 복수극일까, 멜로드라마일까, 추리물일까. 아버지는 죽고, 자신 또한 죽다 살아 난 주인공은 15회 동안 복수를 꼼꼼히 준비하지만 아직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 절절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제각각의 추리를 하고 자신이 가진 패를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제대로 된 얼개를 잡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감추고자 하는 이와 밝히고자 하는 이가 팽팽하게 당겨놓은 활시위가 매회 긴장감을 유지하는 . 윤이나, 조지영 TV평론가가 엔딩을 5회 남겨둔 드라마를 정반대의 시각으로 분석했다. 에 대한 찬반론, 지금부터 시작한다. /편집자주

는 회가 거듭될수록 죄인의 숫자가 늘어간다. 처음에, 죄인은 노식(김영철) 하나인 듯 보였다. 그러나 노식과 거래한 용배(이원종)가 경필(이대연)의 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덮으려던 용배의 아들 장일(이준혁)은 더 큰 죄를 저지르고, 장일 부자의 각기 다른 범죄 현장을 목격한 수미(임정은)와 수미 아버지 광춘(이재용) 역시 어느 순간 죄인으로 전락한다. 그들은 왜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물론 저마다 나름대로 절절한 사연들이 있다. 심지어 그 이유들은 하나같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다. 용배와 광춘은 아버지로서의 책무를 다 하기 위해, 즉 장일과 수미의 앞날을 위해, 장일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수미는 사랑하는 장일을 위해 죄를 저질렀다.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똑같이 펼쳐지는 지옥도
<적도의 남자> vs <적도의 남자>│진짜는 지금부터다
vs <적도의 남자>│진짜는 지금부터다" />그러나 공범자들의 연대는 늘 위태위태하다. 이 기묘한 연대는 언제든 누군가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배신당하기 전에 배신해야 한다는 위태로움이 불면과 악몽을 유도한다. 악몽 속에서 뚜벅뚜벅, 선우(엄태웅)가 걸어 나와 말을 건다. ‘나한테 왜 그랬어?’ 질문에 떳떳이 대답할 수 없음으로, 그들은 괴로워한다.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선우도 힘들다. 장일에게만 복수하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누군지 모를 아버지의 살해범을 찾아서 단죄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친구의 아버지들이 모두 알고보니 내 아버지의 살해에 가담하거나, 그 살인을 은폐하거나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선우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에서는 그래서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똑같은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다.

죄로써 죄를 덮고자 하는 이 지옥도에서 흥미로운 인물들은 수미 부녀다. 범죄 현장을 직접적으로 목격했으나, 그 부녀는 처음에는 알면서 말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중죄를 자처한다. 이러한 수순은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노출되기 쉬운, 연약하고 위험한 부분이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 어쨌든 연루되기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 그 회피의 욕심이 종국에는 타인의 고통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하게도, 수미 부녀는 그 비겁한 회피로서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용배도, 장일도, 노식도 마찬가지이다.

는 이 아니다
선우가 물속에서 다시 살아와서, 눈을 떠서,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이 많아져서 죄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쌓은 죄과들이 죽지 않고 돌아와 그들을 압박해 올 뿐이다. 선우가 능력과 재력을 갖춘 데이빗 킴이 되어 귀환함으로써 는 예의 그 익숙한 의 스토리 구조로 재편되는 듯 보였지만 애초에 드라마의 관심사는 화려한 복수에 있지 않았다. 이 복잡한 도박판은 제한적인 정보, 때로 왜곡되기도 하는 정보들 속에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가를 묻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저들도 아는가?’ 혹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도 알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승부가 결정된다. 그럼으로써 적과 동지를 가릴 수 있고 마지막까지 잡고 있어야 할 패를 가늠할 수 있다. 연속된 범죄와 은폐의 레이스 끝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눈물과 자기 합리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모든 사실을 알게 될 선우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특히 ‘어둠의 핵심’ 진노식 회장의 노회한 웃음은, 운명이 맨 얼굴을 드러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죽이려 했던 선우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게 되는 그 순간의 진노식의 표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조지영

의 세계는 삼각형이다. 모든 인물들이 엮여있는 김경필(이대연) 살인사건을 비롯해 멜로의 라인도, 인간적인 관계들도 모두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얽혀있다. 15년 전의 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에게 장일(이준혁)은 이 싸움은 선우(엄태웅)와 진 회장(김영철)의 싸움이 아니라 “선우와 나. 나와 진 회장”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 가장 큰 삼각형을 가운데 두고, 부모님 대에서부터 이어진 원한과 애증의 고리는 선우와 진노식, 그리고 문태주(정호빈)의 관계로 또 다른 삼각형을 만든다. 장일과 선우, 지원(이보영)과 수미(임정은)가 만드는 관계 역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각형이 아닌 각기 다른 의미의 삼각형이다. 수미의 작업실에서 장일과 선우가 만났을 때, 수미는 정확히 그들을 삼각형으로 만드는 자리에 서 있었다. 수미는 장일이 선우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선우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장일과 선우는 수미가 가진 비밀의 일부만 알고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긴장, 지루해진 포커페이스
<적도의 남자> vs <적도의 남자>│진짜는 지금부터다
vs <적도의 남자>│진짜는 지금부터다" />를 시종일관 지배하는 긴장감은 바로 이런 삼각형의 위태로운 균형에서 온 것이다. 자아와 타자, 선과 악, 우리 편과 다른 편,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분되지 않고 모두가 죄의 공범자이거나 혹은 피해자이다. 모든 인물들은 이 사태의 근원인 진 회장과 유일한 피해자인 선우를 밑변으로 한 거대한 삼각형 안에 있다. 양쪽에서 팽팽히 당기는 균형이 아닌 셋에게 고루 분배된 균형이기에 어느 한쪽이 쓰러지면 모두 무너진다.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모든 진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경필의 죽음과 선우의 사고라는 중심 사건의 전말을 완벽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대신 모두 조금씩은 비밀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우연을 준비해둔다. 그리고 그 우연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선우가 남긴 점자가 수미에 의해 발견되고, 우연히 살인-유기 현장을 목격했던 최광춘(이재용)의 편지가 지원에 의해 보관되는 식이다. 그 모든 흔적은 인물들에게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증거로 간직된다. 마치 카드게임처럼 모두 가장 중요한 패를 숨겨놓은 것이다. 의 싸움은 누가 끝까지 패를 내 놓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그래서 이 긴장은 를 끌어가는 동력이면서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15년 전에 제출되었어야 하는 진정서가 15년 뒤에야 제출되듯, 비밀의 폭로는 끝까지 유예된다. 처음에는 모두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죄를 숨겼기 때문이었고, 그 다음에는 선우가 증거가 있어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선우가 눈을 뜨고 사회적인 지위와 돈까지 갖게 되어 모든 정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상황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완전히 맞춰지지 않는다. 선우가 법의 울타리 안에서 최종적인 복수를 이루고자 하고, 장일은 그 법을 움직이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다들 끝까지 가장 중요한 패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유리한 상황이 오면 증거 혹은 위증이라는 패가 다시 돌아가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선우가 병원에서 깨어난 다음부터 재수사가 시작된 지금까지 새롭게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15년 전 주변을 빙빙 돌면서 숨기고, 숨겨진 것을 찾고, 찾은 다음에 다시 숨길 뿐이다. 긴장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긴장이 아니게 된다. 그 시기 이후부터 가 유지하고 있는 포커페이스는 지루한 무표정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드라마
그렇게 끊임없이 진짜 이야기가 유예되는 동안 정작 이 드라마가 던지고자 했던, 선우의 마음속에 있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의 의미는 바래 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죄를 덮기 위해 친구의 뒤통수를 쳐야만 했던 장일의 심정은 죄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대체되었고, 선우의 분노는 존재감조차 희미하다. 선우와 지원이 나누는 세계 명작 속 아름다운 문장들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상징이 되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지듯, 작품 곳곳에 숨겨진 상징이나 은유는 해석되기 이전에 긴장감을 강요하는 음악이나 구도에 묻힌다. 그래서 선우가 처음으로 진짜 패를 내놓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장일의 아버지인지를 장일에게 물어본 순간, 삼각형의 한 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선우가 침묵하는 동안 장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갈등이 다시 선우에게로 옮겨왔다는 것은 이제 진짜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앞으로 되찾게 될 그들의 진짜 표정은 어떤 것일까. 그 얼굴이 얼마나 매혹적인가에 따라 가 지금껏 유예시켜온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윤이나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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