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로맨스를 내세웠지만 KBS 는 주인공들의 사랑에 집중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인물들의 상처와 열등감 따위가 은폐되어있는 동굴로 정성스레 불을 비췄다. 누군가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끝내 나오지 못했고, 또 누군가는 동굴에서 나와 자신만의 빛을 따라갔다. 그 결과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한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기거나 외면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늘져 있는 한 구석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려는 캐릭터들을 지켜봤던 이들에게 는 만루 홈런 같은 드라마였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앞두고 조지영, 윤이나 TV평론가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편집자주

1년 전 KBS 마지막 장면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박연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괴물은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물었다. 는 미스터리와 그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상태에 있어서 의 연장선상에 있다. 에서 잠재적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윤이를 연기한 홍종현이 에서 요한(김상경)을 “한 입씩 깨물어” 죽여버렸던 아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에서 깊은 산골에 완벽하게 고립된 수신고에 있던 괴물은 결국 모든 사람 안에 괴물이 있다고 말했었고, 에서는 웃고 울고 사랑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괴물이 깨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괴물의 부름 앞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난폭한 로맨스> vs <난폭한 로맨스>│내 마음 따뜻한 난로처럼
vs <난폭한 로맨스>│내 마음 따뜻한 난로처럼" />스스로 괴물임을 숨기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던 요한과는 다르게, 무열(이동욱)의 가사도우미이면서 그의 스토커인 이모(이보희)는 완벽한 그늘 속에 있다. 스토커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지고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무열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무열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다양하고도 복잡한 이유와 감정들이 존재했다. 동수(오만석)와 고 기자(이희준)는 무열에게 열등감과 질투를 느낄 만 했고, 수영(황선희)은 종희(제시카)와의 관계까지 얽혀있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등장한 윤이에게는 좀 더 대중이 갖는 악의와 질시에 가까운 감정이 있었다. 그들이 자신 안의 비틀린 감정들, 요한의 표현에 따르면 괴물을 끌어내게 되었다면 누구나 이모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는 그들 중 몇몇의 감정과 생각을 뒤에서 조종하면서 무열을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존재로 만들겠다는 비틀린 욕망의 실현에 조금씩 다가간다. 이 작품에서 야구와 박무열은 분리되지 않고, 이는 절실하게 욕망하는, 혹은 꿈꾸는 무엇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가 그 욕망 속에 매몰되어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각기 다른 배경과 캐릭터를 가지고 극 속에 살아있는 의 인물들은 괴물의 부름 앞에서, 직면한 고통 속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결국 는 이를 통해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는 드라마인 셈이다.

로맨스는 따로 있다
하지만 는 주제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기에는 너무 많은 장르가 뒤섞여있다. 야구스타 무열과 안티팬 은재(이시영)가 충돌했던 4회까지는 로맨틱한 요소가 일절 없는 코미디였고, 이후로는 무열의 수난사와 은재의 짝사랑을 지나 미스터리가 비중을 키워갔다. 스토커와 연루된 사건이 진전되면서 로맨스는 계속해서 유예되었기 때문에 무열은 뒤늦게 펀치 한 방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개연성이 없는 로맨스와 구멍이 보이는 미스터리가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동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순간들은 지나치게 자주 찾아온다. 난폭함은 무열과 은재가 맡고, 로맨스는 주변 인물인 김 실장과 동아(임주은)가 맡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과정도 그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다양하게 녹여내는 것은 훈련과 봉사활동과 두 여자 사이의 로맨스까지 한 번에 해야 하는 무열이 그렇듯이 버거운 일이다. 로맨스를 기대하든, 코미디를 기대하든, 미스터리를 기대하든, 이 모든 것이 불균질 하게 뒤섞인 의 세계에서는 어느 한 쪽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 안의 괴물을 깨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재능을 보는 눈은 질투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 누군가는 “한 순간에 인생을 건”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 야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절실한 무엇은 때로 사람을 구하지만, 때론 지옥에 빠뜨린다. 은재가 말했듯이, 그 각자의 지옥에서 우리는 모두 다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혼자서 참거나 그 고통에 침잠하는 것으로는 지옥을 사라지게 할 수도, 벌어진 상처를 비집고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게 할 수도 없다. 김 실장과 동아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서로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고도 눈 돌리지 않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야구를 아무리 사랑해도 모두 무열이 될 수 없고, 누구보다 오래 그림을 그렸어도 종희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너는 너대로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제 안에 숨쉬는 괴물을 잠재우는 것, 이 작은 연대가 어쩌면 가 말하는 진짜 ‘로맨스’가 아닐까.
글 윤이나

괴물은 가까이 있다. 아니 평범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마다의 마음 한 구석엔 크고 작은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 마음의 짙은 그늘 속에서 자라나는 그 괴물의 이름은 열등감일수도 있고 질투일수도 있고 혹은 짝사랑일수도 있다. 는 그 괴물이 어떻게 나고 자라는지를 관찰한다. 드라마는 무열(이동욱)을 괴롭히는 스토커가 누구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마치 ‘후더닛’(whodunit, 내용과 줄거리가 범죄와 그 해결에 주력하는 유형의 미스터리 영화나 프로그램, 소설 등에 대한 속칭) 탐정 소설처럼, 무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용의자로 설정한다. 무려 11회에 이르러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한번씩 용의자 물망에 올랐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한 때나마 괴물이 불쑥 나타나곤 했다.

두터운 캐릭터, 얇은 로맨스
<난폭한 로맨스> vs <난폭한 로맨스>│내 마음 따뜻한 난로처럼
vs <난폭한 로맨스>│내 마음 따뜻한 난로처럼" />야구를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고 기자(이희준), 무열의 폭력 사건 피해자이자 원인 제공자였던 가난한 대학생 윤이(홍종현)는 잠깐이지만 공통의 감정을 공유한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당연한 듯 누리는 사람에 대한 증오심, 그리하여 모든 것을 뺐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종희(제시카)에 대한 수영(황선희)의 감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무치게 열망했으나 절대로 주어지지 않았던 재능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선물 받은 사람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도 괴물이 유난히 사랑하는 그늘이다. 괴물은 주로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그런 위험한 찰나를 겪게 마련이다.

결국 동수(오만석)를 비롯한 용의자들의 유력했던 혐의가 지워질 때, 기묘하게도 각자의 삶에 드리워졌던 고달픈 굴레가, 집요했던 편견과 눈물의 사연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어느 하나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고, 혼자 눈물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저마다의 고군분투가 안쓰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거나 로맨스를 완성하기 위해 기능하거나 희생되는 무대 장치 같은 캐릭터는 없었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캐릭터들은 두터워졌지만, 로맨스에 할당된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은 어쨌든 약점이었다. 출루는 많았으나, 득점 상황에서 결정타가 터지지 않은 셈이다.

내 안의 괴물이 사라지는 시간
어쨌든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로맨스야 말로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가장 확실한 작전이고 처방전이다. 괴물에게 마음의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동아(임주은)와 김 실장(강동호)처럼 솔직하고 “문란하게” 사랑을 하고 피 맛이 나는 첫 키스를 하거나, 무열과 은재(이시영)처럼 함께 권투나 유도를 하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된다. 은재는 “나쁜 시키 그 시키”를 대관절 어쩌다가 사랑하게 되었는지, 은재 아빠(이원종)는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며 가족도 버리고 떠난 은재 엄마(이일화)를 어째서 지금도 사랑하는지, 연고도 아닌 블루 시걸즈의 우승에 은재 가족은 왜 그렇게 목을 메는 건지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유를 붙여서 안 좋아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수긍할 뿐이다. 무열이 담담하게 “야구는 가끔 사람을 구해”라고 말할 때, 이 대사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꼭 시즌 개막을 학수고대하는 전국의 야구팬들만은 아니다. 거기서 야구는 다른 무엇이든 누구든 될 수 있다. 다만,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 오를 때, 잔뜩 웅크린 외로움이라는, 열등감이라는, 질투심이라는 제 각각의 이름을 가졌던 괴물은 그 순간이나마 소멸되거나 약해진다.

는 의젓하다. 툭하면 부모를 핑계삼고 원망하던 숱한 응석쟁이들에게 바쳐졌던 다른 로맨스와는 달리,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거나, 친구에게 동료에게 손을 내밀거나 내민 손을 선뜻 잡아준다. “굳이 고르자면 호피 원피스보다는 한복 쪽”이라는 솔직함이, “너무 좋아서 도망갔어요”라는 진심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죄를 뒤집어쓰려는 그 마음 하나하나가 반짝인다. 는 내리 어웨이로만 경기를 치른 것 같은 불리한 대진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은재처럼, 그렇게 씩씩하고 사랑스러웠다.
글 조지영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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