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규는 그리고자 하는 세계가 뚜렷한 작가다. SBS , MBC , SBS 등을 통해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성공을 거머쥐는 남자의 일대기를 고집해온 그는 MBC 에서도 역시 강기태(안재욱)라는 남성 히어로를 내세운다. 보잘 것 없는 판돈으로도 승리를 거두는 승부사이자 쇼 비지니스계의 주몽인 강기태는 ‘최완규월드’의 상징인 동시에 심장이다. 김선영 TV평론가는 강기태의 성공기를 더욱 더 강력해진 최완규식 남성 판타지로, 윤이나 TV평론가는 더 다양해진 욕망의 보고서로 읽어냈다. 다음은 를 보는 두 개의 시선이다. /편집자주

22회에서는 극 중 “한국 최고의 액숀 스타”로 등장하는 최성원(이세창)이 주연하고 감독한 영화 가 개봉된다. “사나이들의 의리와 배신, 복수 속에서 피어나는 비련의 사랑”이라는 광고 문구를 달고 있는 이 영화는 의롭고 싸움 잘하는 남주인공의 복수극이며, 정혜(남상미)가 연기하는 가수 금옥은 그를 사랑하는 비련의 여인이자 ‘눈물의 여왕’이다. 요컨대 는 이 드라마, 더 나아가 최완규 월드의 핵심을 압축한 극 중 극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더욱 견고해진 최완규월드의 남성판타지
<빛과 그림자> vs <빛과 그림자>│최완규 월드에 새로운 히어로가 강림했다
vs <빛과 그림자>│최완규 월드에 새로운 히어로가 강림했다" />“사나이들의 의리와 배신, 복수”의 드라마, 그리고 남주인공을 믿고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여주인공과의 멜로는 최완규 월드의 남성판타지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그것은 결국 주인공이 복수를 통해 일과 사랑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는 남성판 신데렐라 판타지이기도 하다. 는 그 최완규식 남성판타지가 현대극에서 차츰 힘을 잃어갈 즈음 새롭게 발굴해낸 영토라고 할 수 있다. 극의 배경인 유신시대의 쇼 비즈니스계는 가부장적 권력과 상업자본이 결합된 공간으로, 남성적 야망과 성공의 드라마를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무대다. 그리고 강기태(안재욱)는 그 무대 위에서 마치 의 최성원처럼 정의로운 액션 영웅과 두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멜로 주인공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최고의 흥행사로 성장해나가는, 최완규 월드의 가장 에너지 넘치는 히어로가 된다.

사실 기태의 성공기는 “시련과 역경을 딛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지도자 이야기”라는 유신정권의 지배적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서사가 정부의 폭압적 성격을 은폐했던 것처럼, 기태의 성공기 역시 지극히 남성 중심적 서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쇼 비즈니스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권력자, 극장주, 단장, 클럽을 장악하고 있는 건달들까지 모두 남성인 이 드라마는, 마치 남성들만의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진 호모소셜의 세계처럼 보인다. 송미진(이휘향)처럼 카리스마 있는 인물도 뒤에는 김부장(김병기)이라는 남성 권력자의 후원이 있고, 채영(손담비)과 정혜를 비롯한 쇼걸들 역시 남성 고용주와의 계약관계에 매여 있다. 남성적 복수의 드라마도 한층 강화되었다. 기태는 최완규 월드의 역대 주인공 중 가장 싸워야할 적이 많고, 그 승부의 방식 역시 물리적 싸움에서부터 경영 전략, 정치 싸움을 모두 포함하는 전방위적 성격을 띤다. 그가 완료해야 할 미션 단계가 늘어남에 따라 남성판타지 역시 더욱 견고해졌다.

여성의 욕망에 ‘딴스홀을 허하라’
이러한 남성 판타지는 기태와 여성들과의 멜로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기태를 동시에 사랑하는 정혜와 채영은 각각 독립적인 존재로서보다 기태가 싸워야 할 적들의 세계와 연결되어 극적 갈등을 강화하고 있다. 가령 정혜는 기태의 복수 대상인 정치권 실세 장철환(전광렬)과 그의 보좌관이자 기태의 친구인 수혁(이필모)의 관심을 모두 받으며 그들과 기태의 갈등이 심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채영 역시 기태와 쇼 비즈니스계의 적이자 라이벌 관계인 노상택(안길강)이 키운 톱스타로 기태에게 마음을 뺏긴 뒤 둘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처럼 기태는 대결해야 할 적들과의 러브라인에서 이미 우위를 점하고, 특히 그녀들이 모두 “성은”을 입을만한 자격을 갖춘 여성임을 인정받으면서 자신의 위상도 함께 높아지는 효과를 누린다.

물론 이러한 견고한 남성 판타지가 끝까지 이어질 것인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극 중반부 이후 채영과 정혜 캐릭터에 모두 큰 변화가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이고 지고지순하기만 하던 정혜는 의 인상적 데뷔로 “라이징스타”에 등극하면서 쇼걸 성장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채영 또한 계약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권력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쇼걸들이 시대와 무대의 한계를 뚫고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어 이 작품의 견고한 남성 판타지에 어느 정도의 균열을 낼 수 있을지가 중반부 이후를 지켜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글 김선영

라는 제목을 보면 이 드라마가 그리는 시대를 빛과 어둠으로 선명하게 나누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비겁한 건 잠깐이고 권력은 달콤한 것”이라고 말하는 조명국(이종원)같은 사람도, 실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화려한 조명에 둘러싸인 무대도 조명이 꺼지고 나면 그저 텅 빈 공간인 것처럼, 현실에서 빛과 어둠은 공존하고 반짝임 뒤에는 그림자가 있다. 가 그리고 있는 시대인 60~70년대는 더욱 그렇다. 영화와 쇼를 통해 대중문화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그 뒤에는 “유신 반대 재야” 세력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연예계와 영화계를 “그분”의 뜻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는 장철환(전광렬)같은 사람이 있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계
<빛과 그림자> vs <빛과 그림자>│최완규 월드에 새로운 히어로가 강림했다
vs <빛과 그림자>│최완규 월드에 새로운 히어로가 강림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고 있는 한 남자, 강기태(안재욱)가 있다. 그는 순양 제일 가는 부자 집안의 장남이며 한량이었지만, 집안이 몰락해 시대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장철환의 썩은 정치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다가 그의 심기를 거슬려 결국 아버지는 죽고 집안이 몰락하게 되는 이 작품의 초반은 확실히 불행을 전형적으로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때까지 별다른 대책도 없이 사내의 호기로움 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고 실제로 많은 운이 따랐던 기태는 영웅서사로 빠지기에 좋은 캐릭터였다. 그래서 ‘1년 후’라는 시간이 지난 뒤 “능력보다 재수가 좋은 놈”인 기태가 자신의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뛰어 넘으며 시대의 어둠이나 개인의 고통 모두를 가뿐히 넘어서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갈림길에서 기태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각자의 욕망을 부여하고 주인공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움직이게 함으로써 더 쉬운 길이지만 함정일지 모를 길을 비껴간다.

의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권력을 있는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철환을 제외한다면,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빛이거나 그림자이기를 선택하고, 때로 그 선택은 바뀌기도 한다. 차수혁(이필모)는 스스로 권력의 그림자가 되기를 선택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한다. 실제로 “그분”을 등에 업은 장철환의 세계와 강기태가 있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노상택(안길강)만이 정치권력과 결탁한 것이 아니라 강기태 역시 장철환과 대립하는 김부장(김병기)과 송미진(이휘향)의 편에 서 있다. 빛과 어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계가 있고, 인물들에게도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그리면서 이 정도로 단순하지 않게 묘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완규는 를 통해 더 많은 인물의 더 다양한 욕망을 공존하게 하는 세계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강기태의 원맨쇼로 끝나지 않기 위해
그래서 는 빛과 어둠을 구태여 나누지 않고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볼 거리 중심의 시대극을 넘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살아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는 실제 그 시절의 이름들을 불러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또 다른 현실성을 획득했다. 그 시절은 “하춘화와 김추자”가 쇼단에서 노래하던 시절이며, ‘마도로스 박’이 건재하던 시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현실에서 단순하지 않은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면, 그들의 내일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기태가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게 될 테지만, 거기까지 다다르는 방법이 쉽게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 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시대극인 50부작 드라마가 중반을 다다랐으면서도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동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남은 숙제는 중심 서사를 이루는 네 사람 중 강기태의 그림자에 가려져있어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세 사람에게 더 밝은 빛을 비추는 일이다. 그들의 그림자가 강기태의 그림자와 만날 때, 이야기는 한층 더 흥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 윤이나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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