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여진구가 귀엽다거나 연기를 잘하는 차원이면 좋겠어요. MBC 의 연우(김유정) 때문에 놀랐다가 웃었다가 발걸음이 휘청거렸다가 결국엔 오열하는 훤(여진구)처럼 저도 여진구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겠는데, 어머나 이 아이가 97년생이래요. 여진구는 “저 좋아하셔도 쇠고랑 안 찹니다잉, 경찰출동 안 해요잉”이라 말했지만 왠지 경찰들이 알아서 출동해서 제 손에 수갑을 채울 것만 같습니다. 97년생에게 설레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요. (녹번동에서 최 모양)
[Dr.앓] 오늘부터 진정 여진구의 훤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Dr.앓] 오늘부터 진정 여진구의 훤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누가 예고도 없이 훈남이 되어 나타나라고 했습니까? 2년 전 SBS 의 강모를 연기했을 때만 해도 그저 연기 잘하는 기특한 녀석이었습니다. 아니,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어요. 불과 세 달 전, 의 어린 똘복이에게서도 지금의 훤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환자분이 죄책감 느끼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여진구의 잘못입니다. IMF라는 국가적 대위기를 넘어 태어난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요? 여진구는 아역 배우의 세계에서 치명적인 위기라 할 수 있는 ‘마의 16세’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16살이 되자마자 시작한 , 훤은 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그냥 남자입니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연우를 생각하며 “총명한 줄 알았더니”라고 입을 뗀 후 씨-익 웃더니 “바보가 아니냐”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때부터 남자의 향기가 솔솔 났죠. 많은 환자분들이 하늘로 훤-훤- 나는 기분이셨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느끼할 수 있는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는 대사도 여진구가 하면 그 저음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고, 아픈 연우가 사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에 “나의 빈이다”라고 외마디 대사를 내뱉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오죠. 어린 아이들의 멜로에 이토록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이별을 예감한 것처럼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묻어나는 여진구 덕분이었습니다. 이런 감성을 가진 97년생은 처음 봅니다.
[Dr.앓] 오늘부터 진정 여진구의 훤을 볼 수 없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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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여진구와의 나이차를 계산하다가 털썩 주저앉는 누나들을 울릴 땐 언제고, 카메라 불이 꺼지면 볼을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열여섯으로 돌아와요. 훤이 연우를 떠나보내는 신이 나왔던 5회를 보면서 눈이 아플 정도로 울었는데, 드라마 다 끝나고서야 트위터에 “아까 전에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 사실 오늘 손수건 준비물이었어요~ㅎㅎㅎ”라고 올렸죠. 자기보다 고작 2살 많은 스승 허염(시완)에게 반항한답시고 턱 괴고 삐딱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시늉만 하던 훤처럼, 마치 ‘누나들 이건 몰랐죠? 속았죠?’라며 약 올리는 듯한 멘션 같았습니다. 여진구가 전교 10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라는 소문에는 “여러분, 전 전교 10등이 아닌 전교 50등 안에 듭니다. 10등 안에 들도록 더 열심히 할게요”라고 해명했었죠. 그냥 50등 안에 든다는 사실만 밝혀도 되는데, 10등 안에 들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애교 섞인 인사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이렇게 카메라 밖에서도 귀엽게 재롱을 떠니, 누나들은 김수현을 눈앞에서 보고도 차마 여진구를 떠나보낼 수가 없는 겁니다. 원천봉쇄 당한 셈이죠.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얼마나 더 키가 크고 잘 생겨지겠습니까. 둥글둥글 정감가게 잘 빚어놓은 얼굴이 이제 날카롭게 깎아놓은 조각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쩜 이 나라 조선의 왕세자 이훤은 처방전도, 예방주사도 하사해주시지 않고 이리도 무심하게 저희 곁을 떠나셨단 말입니까.

앓포인트: 여진구의 [진구야 울지 마라, 누나 가슴 미어진다]8살 여진구의 영화 : “아빠, 울지 마. 엄마 들어”
죽어가는 엄마 앞에서 애써 눈물을 참으며 오히려 아빠를 달래더니 몰래 밖에 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하던 휘찬. 엄마의 죽음, 비를 맞으며 울어야 하는 연기, “엄마, 내가 잘할게요. 엄마 제발 죽지 마”라는 대사에 담긴 감정. 8살 아이가 이해하고 소화하기엔 다소 버거웠음에도 여진구는 오히려 부모님을 설득해 휘찬을 연기했다.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이 꼬마가 보통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12살 여진구의 SBS : “잊지 않을 거야. 잊지 않아”
아버지가 칼에 찔린 모습을 목격한 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능지처참 당하는 순간까지 눈앞에서 지켜봤다. 여진구는 제대로 소리 내 울지도 못한 채 아버지를 벤 검의 문양을 나무에 새기는 어린 겸이의 슬프면서도 결의에 찬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집, 아버지가 칼에 찔린 그 곳에 주저앉아 끄윽-끄윽 우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 쪽이 아려온다.

14살 여진구의 SBS : “왜 데려갔어요? 살려내요”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막내 동생을 업고 어린 여동생 손을 잡고 있는 강모. 의젓한 오빠로서 감정을 억누르던 강모는 결국 여동생의 통곡에 “왜 데려갔어요? 살려내요, 불쌍한 우리 엄마 살려내란 말이에요”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여진구의 표정에는 먼저 하늘로 떠난 부모님에 대한 원망,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마냥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아들의 슬픔이 모두 담겨있었다.

16살 여진구의 MBC : “아직 할 말이 남았단 말이다”
데뷔 7년 차, 이젠 눈물 신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연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의 허망한 표정,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겹게 내딛는 발걸음, “놔라, 이거 놓으란 말이다”라는 첫 마디, 마지막으로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향해 연우 이름만 불러대는 모습까지 여진구는 그 짧은 순간을 오롯이 훤의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진구야, 이런 건 어디서 배웠니?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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