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한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에서 히딩크 감독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필드에서 뛰는 건 선수들이며, 그들의 건강과 체력을 책임지는 건 영양사와 트레이너이고, 응원은 붉은 악마가 하며, 경기 진행은 심판이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히딩크 매직’이라 말한다. 선수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감독의 능력을 통해 비로소 수많은 재능은 하나의 팀으로 완성된다. 한 가수가 결과물을 내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전체적 그림을 그리고 스태프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지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가 3주에 걸쳐 소개할 제작자들은 각기 다른 포지션의 가수들에게서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대중음악의 명감독들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MP3 플레이어와 TV를 통해 즐기는 대중음악의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거대한 메커니즘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대상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아이유의 ‘좋은 날’이라는 메가 히트 이후 여전히 아이유와 써니힐 등의 가수들을 통해 흥미로운 결과물을 내고 있는 로엔엔터테인먼트(이하 로엔) 조영철 제작이사다.

우선 로엔과 내가네트워크의 정확한 관계를 알고 싶다. 본인이 브라운아이드걸스를 프로듀싱하기도 했고, 내가네트워크의 스태프가 로엔 소속 가수들의 작업에 많이 참여한다.
조영철: 기획사와 유통사 간의 파트너십인데, 다만 내가 내가네트워크 부사장이었고 브라운아이드걸스를 제작하니까 스태프들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작년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같은 경우는 두 회사의 공동 제작으로 나온 경우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내가네트워크를 만들며 부사장 직책이 있었고 현재 로엔의 제작이사이긴 하지만 그냥 긴밀한 파트너십으로 봐주면 되겠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걸 물어본 건, 브라운아이드걸스 때나, 혹은 아이유와 써니힐을 제작할 때나 프로듀서로서 비슷한 협업 시스템을 가져가는 것 같아서다.
조영철: 사실 나는 크게 하는 일이 없다. 전체적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 좋다, 나쁘다, 예스와 노를 결정하는 거지. 그 전에는 한 명의 스태프 입장에서 작곡가와 작사가, 비주얼 크리에이터와 함께 의논을 하며 하나의 테마를 잡아간다. 심각하진 않고 잡담 50분에 10분 일 얘기? 그 안에서 굳이 프로듀서의 역할을 말하자면, 결국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잘하는 사람들의 협업을 잘 조율해 하나의 감성과 테마가 나오게끔 유도하는 것 같다. 또 애초에 의도했던 것이 원했던 결과물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우리의 작업들이 칭찬을 받는다면, 그건 만들어내는 친구들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니라고 본다.

이민수 작곡가도 스태프라는 표현을 쓰던데 예술가적 자의식을 경계하는 공동 작업인걸까.
조영철: 그건 아니다. 잘 나간다 싶으면 1년에 4, 50곡씩 쓰는 작곡가들 속에서 이민수 작곡가는 1년에 5, 6곡 발표한다. 당연히 자기 곡에 대한 자의식과 프라이드는 강하지. 다만 곡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감성이나 테마가 결국에는 가사를 통해 서사적으로, 또 비주얼적으로 드러나야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지. 가령 최근 써니힐의 ‘베짱이 찬가’ 같은 경우 이민수 작곡가가 ‘둥글게 둥글게’를 모티브로 한 데모를 가져오며 시작됐다. 그 때만 해도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테마는 없었지. 그 곡을 가지고 ‘링가링가링’이라는 부분이 재밌으니 전화 벨소리로 해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내고 동요의 모티브를 비틀어서 ‘세상은 척박한데 둥글게 사는 게 과연 좋은 거냐’를 질문하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손뼉 치고 즐겁게 놀자는 동요의 모티브를 이용해 베짱이가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개미와 베짱이라는 테마가 나온 거다. 일반적으로는 데모가 나오고, 가사가 붙고 뮤직비디오가 나오는데, 우리는 좀 다를 수 있지.

말하자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작자들의 창작 의욕을 자극하는 건데.
조영철: 아이유의 ‘너랑 나’는 곡보다 테마가 먼저 나온 경우이기도 하다. 이 친구가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있고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선 지점이 있어서 기묘한 아이라는 콘셉트로 노래를 풀어보고자 했다. 전주의 악기 배열이 팀 버튼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고, 뮤직비디오에서도 그걸 비주얼로 살리려 했다. 그 때 굳이 자기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에 나중에는 누가 뭘 얘기했는지 모를 정도다.

특히 ‘너랑 나’는 그런 경계적인 느낌 안에서 ‘좋은 날’의 이미지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조영철: ‘좋은 날’이랑 똑같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고 연장선에 있는 노래인 것도 맞다. 이건 전략의 차원일 수 있는데 너무 멀리 가는 변신은 현재로선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아이유에게 원하는 건 ‘잔소리’나 ‘좋은 날’ 같은 이지리스닝 스타일의 노래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 외의 곡들은 윤상, 이적 등 90년대 싱어송라이터들과의 피쳐링이 많다. 타이틀곡은 약간 예측할 수 있는 느낌이라도 앨범 전체적인 내용은 풍성하다.
조영철: 기본적으로 아이유가 그런 9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감성을 굉장히 좋아하고, 나 역시 그렇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 음반을 사서 포장을 뜯고 속지를 넘겨볼 때의 설렘 같은 걸 재현하고 싶기에 이번 아이유의 앨범도 정규 앨범으로 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대세가 디지털이 되면서 앨범 10곡 중 타이틀 빼고 9곡 버릴 거면 차라리 3곡씩 3번에 내자는 게 최근 경향이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긴 하지. 다만 아이유의 경우엔 역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음원 선공개도 안 하고 공들인 정규 앨범을 내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됐다고 본다.

빠른 주기로 수익을 내는데 급급하기보다는 소속 가수들의 스타일에 맞는 100퍼센트의 결과물을 고민하는 걸까.
조영철: 음반 시장이 어려운 만큼 2, 3개월마다 음원을 내고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게 수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건 맞다. 그런 압박을 안 받는 건 아닌데, 사실 고귀한 뜻이 있다기보다는 게을러서 그렇게 못하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웃음) 하나의 음반 작업을 하며 이미 다른 것들도 멀티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또 브라운아이드걸스나 아이유의 경우 분명 팬은 있지만 뭘 해도 지지해주는 강력한 팬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기존의 이미지나 아우라를 해치는 활동을 하는 건 위험한 거 같다.

“뭘 듣고 ‘아, 좋다’라는 느낌이 아예 들지 않을 때가 가장 불안하다”
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2년의 제작자│조영철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다수에게 통할 취향과 제작자로서 만들고 싶은 것 사이를 좁히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조영철: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나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하고 싶은 걸 해야 재밌다. 그런데 대중이 예를 들어 ‘뽕끼’ 있는 발라드를 너무 좋아한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걸 너무 싫어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거기 맞춰 그 음악만 만들기는 싫은데 또 상업적으로 흥행하지 못하면 모두가 힘들다. 가수는 자기의 인생을 걸고, 회사 전체적으로도 생존과 생계가 걸린 문제니까. 사업적 성공과는 상관없이 자기 길 가겠다는 건 대중음악 하는 입장에선 매우 무모한 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대중적인 흥행을 할 수는 없을까. 제일 큰 고민이다.

상업적 성공이라는 부분에서 로엔처럼 상당한 자본이 있는 회사에서 새로운 팀을 계속 내는 식의 물량 공세를 안 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조영철: 사실 로엔이 SK 텔레콤의 자회사고, 멜론 서비스 같은 걸 하는 대형 사업자인데, 이런 대자본의 회사가 과연 제작까지 해야 하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 비판이 일견 타당한데, 그 자본이 있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것에 급급해서 다수의 코드에 맞추거나 제작비를 아껴 음반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 게 가능한 것도 있다. 돈 걱정을 조금 덜 하는 상태에서 과감하게 기존에 다들 하던 게 아닌 좀 다른 콘텐츠를 과감하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또 그 과감함이 없었다면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성공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조영철: 처음 지누가 준 ‘아브라카다브라’의 데모를 들었을 때 그 사운드나 찔러 들어오는 느낌이 정말 좋았는데 이건 정말 대중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대중적으로 푸느냐를 고민하면서 이민수 작곡가가 공동 작업을 하게 됐다. 원래는 ‘아브라카다브라’의 B 파트가 후렴구였는데, 이민수 작곡가가 ABAB 구성의 곡에 C 파트를 새로 만들어서 최종 곡이 나온 거다. 처음부터 ‘이 노래는 대중적으로 안 돼’라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정말 좋다고 느끼는 걸 대중적으로 먹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갈수록 과거에 성공 공식이라 했던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거 같다. 후크송이라던지, 섹시 콘셉트라던지.
조영철: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식의 그런 후크는 줄어든 것 같은데 그래도 큰 범주에서 과거의 틀을 크게는 안 벗어나는 거 같다. 다만 걸그룹이 너무 많아졌다. 아무래도 걸그룹은 어느 정도 인지도만 생겨도 행사나 그런 걸 할 수 있어 남자 아이돌보다는 수익을 내는 게 빠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거의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 됐지.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낼 땐 소녀시대, 원더걸스 말고는 그 층을 채우는 팀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워낙 중위권 걸그룹들이 탄탄하다.

그럴수록 새로운 느낌의 팀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데, 앞서 말한 써니힐의 경우 전작 ‘미드나잇 서커스’도 그렇고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느낌이라 오히려 팀 정체성이 확실해졌다.
조영철: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기획이나 전략에 가수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가수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느낌 안에서 기획을 만드는 편이다. 가령 가인의 경우 아주 예쁘진 않지만 어떤 퇴폐미 같은 게 보였다. 솔로로 나온 가인과 탱고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고 탱고라는 장르를 앨범 전체에 담는 건 어떨까 했다. 사실 무모할 수도 있는데 미니앨범이니까 그래도 해보지 뭐, 이러면서. 방금 말한 써니힐도 굉장히 재기 넘치는 친구들이다. 스스로 작사하는 거 좋아하고, 빤한 사랑 노래는 지겹다는 이야기도 하고. 그런 성격을 전체 기획 안에서 살려보려는 거지.

‘무모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앞서 성공은 창작자들의 몫이라고 했지만, 그 무모한 선택이 잘 안됐을 땐…
조영철: 내 잘못이지. (웃음)

그 압박이 굉장할 거 같다.
조영철: 사실 불면증이 온다. 그런데 이건 내 입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까.

결국 멘탈 관리가 중요한 직업 혹은 위치다.
조영철: 중요한데, 특별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없다. 내가 제일 불안할 때는, 무모하든 아니든 뭘 듣고 ‘아, 좋다’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때다. 어느 순간 지치고 감동이 없을 땐, 뭔가를 들어도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안 선다. 그 때가 제일 위험한 순간이다. 그럴 땐 아예 음악을 안 듣는다. 사진이나 영화 같은 걸 많이 보지. 사실 좋냐 나쁘냐, 대중적이냐 아니냐는 건 정답이 없다. 다만 나름의 감을 가지고 가는 건데 그게 흐트러질까봐 걱정이다. 정말 그럴 땐, 좀 놔야지.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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