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짙은의 음악은 그림 같았다. 유화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던 성용욱과 윤형로는 물감을 기름에 녹여 만들어내는 그림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을 녹여 짙은으로 풀어냈다. 한 겹 한 겹 덧칠한 붓 자국의 의미가 모여 ‘고단한 하루’와 ‘남은 슬픔’, 그리고 ‘메마른 먼지냄새’와 ‘날 사랑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윤형로가 탈퇴한 뒤 성용욱 혼자 작업한 이번 미니앨범 는 여전히 이야기보다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두터운 의미보다 선명하고 직설적인 속내를 전한다. “처음 시작은 재미”였던 음악이 대학 시절 프로젝트 성격의 짙은을 결성한 뒤 전업뮤지션이 되고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지금에 이르러선 “평생 같이 갈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하는 성용욱. 어떤 물음에도 주저함 없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그가 “일이니까 꾸준히 성실하게, 재미있게 해나가고 싶다”고 말한 짙은의 새로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옮긴다.

부산 공연은 윤형로 없이 혼자였는데 기분이 어땠나?
짙은: 좀 허전했다. 기분이 확 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빈자리가 느껴졌다. 예전엔 둘이서 툭툭 만담도 좀 했었는데 받아줄 대상이 없으니까 얘기가 끊기기도 하고. 사운드 면에서도 좀 아쉬웠다. 형로가 채워주던 사운드가 있었으니까. 항상 옷이나 스타일에 대해서 어떠냐고 물어보곤 했었는데 그것도 못 하고. (웃음) 그래도 공연 자체는 즐거웠다. 관객들이랑 함께 만들어 가는 거니까.

“짙은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고는 중요하지 않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윤형로의 탈퇴는 그의 솔로 활동 의지가 계기가 되었나, 아니면 각자 작업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나?
짙은: 예전부터 그런 얘기를 했었다. 특히 최근에는 형로가 원하는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서 아무래도 내가 했던 작업들이 짙은에 많이 반영되었다. 짙은의 음악 안에서 융합시키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내 스타일대로 굴러갔지. 그러면서 곡을 각자 쓰기도 했고, 따로 뭔가를 좀 해보자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짙은이라는 이름을 유지한다는 건, 윤형로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겠다는 의미도 있는 건가?
짙은: 사실 처음부터 공고한 밴드라기보다 프로젝트 성격이었기 때문에 형로가 돌아올 수도 있고 다른 누가 들어올 수도 있는 거라서 좀 열어놓고 싶다. 형로가 군대에 있을 때도 혼자서 활동했기 때문에 아직 짙은이라고 하면 나 혼자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누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짙은에 원하는 바도 있으니까 누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웃음)

센티멘털 시너리와는 어떻게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나?
짙은: ‘Moonlight’를 작업하면서 이 곡은 처음부터 일렉트로닉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 노래만 맡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친하기도 하고 잘 맞고 센티멘털 시너리도 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욕심이 있어서 다른 것도 좀 도와달라고 했다. 현 편곡도 맡기고 전체적으로 프로듀싱을 같이 한 거지.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내가 하기 힘든 부분, 특히 리드미컬한 부분들은 그 친구가 만들어 준 것을 들으면서 감탄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잘 만들어줬다.

멤버 변화라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는 지난 < Wonderland >를 비롯해 기존 짙은 음악과 다른 느낌이 강하다.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피아노가 중심이 된 것부터.
짙은: 사실 이게 재미있는 게 프로필 상으로 형로가 기타라고 되어 있지만 최근 한 1년 동안은 기타를 거의 치지 않고 피아노나 신디사이저를 쳤다. 심지어 기타도 팔았다. (웃음) 아무래도 외부적인 변화가 있으니까 그렇게들 보시는 것 같은데 이전부터 둘 다 피아노나 키보드 곡을 많이 쳤다.

그럼 피아노로 바뀐 이유는 뭔가?
짙은: 이번 앨범 작업하기 전부터 ‘March’ 같이 힘 있고 록킹(rocking) 한 노래를 많이 쓰고 싶었다. 밴드 느낌이 강한 앨범을 내고 싶었고, 지금도 밴드 분위기의 친구들과 공연도 하고 있고. 그런 계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를 많이 썼다. 물론 피아노가 무슨 밴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원래 아케이드 파이어나 더 프레이 같이 피아노를 많이 쓰는 밴드를 좋아했다.

피아노는 만드는 이의 감정이 훨씬 더 드러나는, 어떤 의미에서 독백에 가까운 악기인데 이번 앨범이 직설적인 느낌이 강한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까?
짙은: 그럴 수도 있다. 아무래도 타악기 특유의 느낌이 있으니까. 그런데 가사 영향도 큰 것 같다. 예전에는 형로랑 얘기도 많이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좀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형로가 국문과 출신이라서. (웃음) 드러내지 않고 시적으로 쓰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더 직설적으로 쓰고 싶었다. 숨겨진 의도 따위는 없다,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랄까.

“는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이야기”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March’의 가사는 일종의 이별 통보인데 이렇게 신나게 표현하다니 싶기도 했다. (웃음)
짙은: 싫은 사람이랑 헤어지면 되게 행복하지 않나? (웃음) 사실 꼭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기보다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구습이나 앙시앙 레짐, 구시대의 유물 같은 지긋지긋한 것들과의 이별일 수도 있다. 가사에도 나오지만 생각해보니까 억울했던 거지. 한 번쯤 얘기해 보고 싶었던 건데 못 했던 걸 얘기하는 거니까 이별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거다.

당신의 가사는 안에서 밖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기보다 밖에서 안으로 이야기를 가져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뭔가를 주장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짙은: 맞다. 하고 싶은 얘기를 그냥 쓰기보다는 빗대서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보고 문득 느낀 것을 쓰는 것 같다. ‘아, 그렇구나’ 하고 느끼는 걸 쓰는데 ‘내가 그냥 이렇다’라고 쓰면 공감하기 힘들지 않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이나 사물에 빗대서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들도 그걸 접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매개체를 생각하는 거지. 그냥 나 외롭다, 힘들다고 하는 것보다는 저 외로운 달을 보라, 뭐 이런 식의 접근인 것 같다.

문득 느꼈던 그 순간들이 이번에는 언제였나?
짙은: 밤 산책을 많이 했다. 여름이라 사람들이 운동도 많이 하고 즐겁게 산책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운동도 하고 있었고. 인간들의 끝없는 활력이나 자기 생존을 위한 모습,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어떤 의미에서 희망 같은 것이지. 그런 활력이나 희망이라는 맥락이 통하는 음악들로 앨범을 만들었다.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편인가?
짙은: 있지. 그걸 뮤지션답게 음악으로 잘, 의미 있게 풀어내고 싶다. 물론 내가 세상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니까 먼저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고 하지만 결국엔 다 통하는 것 같다. 이번 앨범은 큰 얘기는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맺음 같은 의미에서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예전엔 이별이나 사랑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나 자신의 각오나 다짐부터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나의 모습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이야기랄까. (웃음)

그런 의미에서 ‘고래’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짙은: ‘고래’는 무엇이든 사람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자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환희일 수도 있고 잠수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침묵일 수 있다. 심해라는 게 무겁고 괴롭고 나를 짓누르는 힘든 것일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편안하고 따뜻하고 행복하고 모든 걸 잊게 하는, 시간과 공간이 멈춘 공간이기도 하니까.

예전 당신의 보컬은 어느 지점에서 억눌러주는, 그래서 만들어지는 단단함이 있었는데 ‘백야’에서는 좀 더 나아간 느낌이었다. 어딘가 물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짙은: 전에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선에서 눌러야 한다, 다 터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책임한 희망이나 환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조심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백야’는 백야라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지 않나. 환상일 수도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스펙터클, 대자연의 느낌이니까 마음 놓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멜로디에서 오는 힘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서 마이너 느낌이 없고 거의 다 메이저로 흐르고 계속 상승하는 멜로디니까. 뭔가 힘 있고 찬송가적인 느낌도 있지 않나? 끝없이 영광스럽고 환희로운 선율이다 보니 그렇게 가는 게 맞는 접근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Moonlight’은 어떤 의미로 앨범 안에서 좀 튀는 곡이다. 물론 춤추는 것 좋아하는 당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하!’ 라고 했겠지만. 짙은의 음악 안에서 이걸 드러내겠다고 마음을 먹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짙은: 이번엔 좀 질렀던 것 같다. 지난해가 가기 전에 앨범을 내는 게 큰 목표였고 앨범으로 나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높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즐겁게 작업해서 빨리 내자, 올해에 뭔가 했다는 걸 가지자 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안 했다. 이 곡은 내가 안 해 본 분야인 일렉트로닉 분위기로 해본 거라서 재미있었다. 센티멘털 시너리에게 어떤 느낌이 나오든지 괜찮으니까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맡겼다. 좀 과하게 록킹 한 느낌으로 갔지만, 나는 좋았다. 내 노래지만 들으면서 춤 많이 추고 있다. 되게 신난다. (웃음)

앞으로 좀 더 다른 것들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도 생기더라.
짙은: 다양한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이 짙은을 통해서 듣고 싶은 것도 분명히 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생각은 해야 한다. 어쨌든 뻔하지 않은 선에서 새로운 것들을 함께 해나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나도 다음 앨범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전부 댄스로 갈 수도 있고 전부 록으로 갈 수도 있고, 전부 ‘Feel Alright’처럼 갈 수도 있고. 다만 어느 정도의 일관성, 통일성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짙은 “대중은 러그 같은 촉감을 원하는 것 같다”
만드는 사람이 느끼는, 사람들이 짙은의 음악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짙은: 정서라고들 얘기하는데 내 생각에 정서랑은 좀 다른 것 같다. 음… 나한테 잘 맞는 것, 오리지널리티 같은 게 아닐까? 내가 노래를 불렀을 때 하나의 형상이 될 수 있는 것. 어떤 곡은 우울하고 어떤 곡은 밝은데, 특정한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목소리에 잘 맞는 노래를 원하는 것 같다. 어쩌면 촉감 같은 게 아닐까? 다르지만 비슷하게 흐르는 촉감, 러그 같은 촉감? (웃음)

‘A little bit’ 은 당신의 감성을 만든 토대를 되새기는 느낌이었다.
짙은: 다른 곡들이 희망적인 느낌이라면 그 곡은 좀 회한에 가득 찬 느낌이지. 뭔가를 떠나보내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라는 역설적 느낌인 것 같다. 힘들지만 조금 힘드네, 조금 상처 받았어 같은. 야외에서 부는 바람에 나를 맡긴다는 느낌이라 약간 울적하고 쓸쓸한 노래다. 데미안 라이스 같지 않나? (웃음) 처음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는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올드 팝을 들었고 그 다음에 록, 메탈을 좋아하다가 대학 들어와서는 김광석을 비롯한 한국 포크 쪽을 많이 들었다.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라디오헤드나 데미안 라이스 같은 축축한 곡들을 많이 좋아했다. 아무래도 밴드 느낌은 아니라 짙은의 음악 안에서 잘 표현하지 않았던 감성이긴 하다.

굳이 나누자면 당신은 한국 작가의 소설보다는 영미 문학에서 더 가까운 감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짙은: 지금의 음악적 지형도에서 봤을 때 한국적이라는 평가는 확실히 못 받는 것 같다. 그게 비난은 아니라는 건 아는데, 아무래도 된장찌개 같은 정서가 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많이 듣는다. 가요적 감성이나 대중적, 한국적 감성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난 처음부터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문학도 한국보다는 아무래도 유럽 쪽을 많이 읽었고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도 한국적이거나 동양적인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가요 중에 유명하신 분들이 많지만 솔직히 잘 모른다.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윤형로와 음악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이번에 홀로서기를 하게 되었을 때, 매 순간 음악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을 것 같다.
짙은: 처음 시작할 때는 재미였지. 어렸을 때부터 그냥 해보고 싶었다. 어,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단 말이야? 재미있네, 사람들이 좋아하네! 같은 마음. 처음 잡은 악기는 일렉 기타였다. 기타리스트랍시고 뒤에서 쳤는데 뭔가 성에 안 차고 잘 못 하겠더라. 어려웠다. (웃음) 프론트맨이 되고 싶다, 내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싶다,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헷갈렸던 것 같다. 내가 정말 뮤지션인지 그냥 음악을 한 번 해보는 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음악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 것 같다. 다른 걸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평생 한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시간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 같다. 평생 같이 갈 좋은 친구니까 너무 막 들이대고 싶지도 않고, 음악이랑 싸우고 씨름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일이니까 꾸준히 성실하게, 재미있게 해나가고 싶다.

말했듯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음악 말고 다른 걸 할 수 없어진 건데, 그 때 두려움은 없었나.
짙은: 있었지. 이제 진짜 음악을 잘 해야 한다, 음악을 못 하면 정말 그 때부터는 할 말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 흔히 먹고 살기 위해서 음악을 하면 큰 일 난다고들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음악이 잘 안 나오면 괴로울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세상에 그 정도 두려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나.

뮤지션에게는 음악도 일인 건데 주위에 대기업에 다니거나 하는 친구들이 오히려 당신을 부러워하거나 쉽게 얘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짙은: 무시한다. (웃음) 부럽다고 하면 ‘너도 (회사) 나와~’ 라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모두가 지금 이 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좋아하니까 선택한 거지. 가족 때문에, 대출금 갚기 위해서, 집을 사야 하니까,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니까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지금 자신에게 있어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 않나? 나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갖고 싶고 부모님을 봉양하고 집도 사고 싶지만 내 안에서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거지, 다른 것들이 좋지 않아서는 아니니까. 물론 부러운 마음은 이해한다. 요즘엔 고용도 불안정하고 다들 힘드니까.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을 선택하길 잘 한 것 같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그런 얘기하면 ‘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이랬는데 요즘은 ‘그래, 좋지, 자랑스러워’ 라고 한다.

이번 앨범에 대한 주위 사람들이나 팬들의 평가가 예전과 달라진 부분도 있나?
짙은: 반응을 많이 듣지는 못 하니까 잘 모르겠다. 팬들의 반응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예전에는 좀 더 팬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나름 뜨거운 반응을 접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팬들과 좀 서먹서먹한 상황이라서 반응이 없다. (웃음) 좀 보여주시면 좋겠다.

남은 대구 공연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짙은: 서울에서 장기 소극장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 매회 조금씩 변하는 공연을 해보고 싶다. 팬들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고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다 음악으로 풀어냈으니까 갈수록 이야깃거리가 줄어든다. (웃음) 중언부언하기 싫으니까 이리저리 짜내 봐야지. 앞으로도 음악을 하되 새로운 시도를 더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시장이 좁으니까. 음악만 아니라 공연을 할 때도 평범하지 않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콘텐츠들을 좀 지켜보고 있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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