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은 장준혁(김명민)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았던 드라마였다. 굳이 김명민의 연기력을 칭찬하지 않더라도, 외과과장이라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섹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준혁이 매력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KBS 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의사 이강훈이 아닌 배우 신하균이다. 마치 뮤지컬 안무를 하듯 수술복을 입는 신하균부터 일부러 ‘발연기’하는 신하균, ‘우울한 편지’를 잘 부르는 신하균까지. 캐릭터 자체보다 배우의 연기에 더 눈길이 간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와 이야기의 매력이 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 회 극한으로 치닫는 스토리에 심신이 지쳐도 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건 결국 신하균 덕분이었다. 어쩌다 은 이강훈의 메디컬드라마가 아닌 신하균의 모노드라마가 된 것일까.

뒷목 잡게 만드는 그 이름, 의사
도통 모르겠다. 의 고재학(이성민) 과장, 김상철(정진영) 교수, 서준석(조동혁) 교수가 천하대 병원 의사들인지 아니면 신경정신과 환자들인지. 과거 의료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거대 접형골 수막종에 걸린 김상철 교수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흡사 지킬 앤 하이드 수준이다. 특히 연구실 구석에 처박힌 채 이강훈에게 싹싹 빌면서 “미안해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연민-공포-헛웃음의 3단계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잦은 스위치는 피로를 부른다.

고재학 교수는 수술방에 들어가면 손이 떨리거나 구역질이 난다고 고백했고, 서준석 교수도 수술 울렁증으로 인해 멀쩡한 손에 붕대를 감고 한동안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SBS ‘무엇이 천하대 엘리트 의사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편을 보는 것 같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의사다. 그러나 수술 공포증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광기만 늘어가는 의사들은 시청자들의 짜증 지수만 높일 뿐이다.

편 가르기와 어장관리에 재미붙인 이강훈 어린이
의사에서 환자로 변해갔던 세 의사와 달리, 이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실에서 절대 당황하지 않는 실력의 의사였다. 그러나 과거 까칠하고도 냉정했던 이강훈은 천하대 병원 조교수로 복귀한 이후 자신에게 등 돌렸던 후배의 수술실 출입을 금하더니, 어느새 잃어버린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반갑지도 않은 서준석에게 달려가며 “어이, 서 선생!!!!!”이라는 부담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이강훈의 정신연령은 아마 혜성대 병원에 두고 온 모양이다.

심지어 여자라는 생물에 관심 없을 것 같던 이강훈이 이제는 장유진(김수현)과 윤지혜(최정원)를 오가며 어장관리까지 하고 있다. 다시는 안 받겠다던 장유진의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두 번이나 먼저 전화를 하고, 윤지혜 앞에서는 하루 종일 미운 일곱살 짜리 아들처럼 투정을 부린다. 이러니 이강훈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강훈의 유치한 리액션 조차 귀엽게 소화하는 신하균의 연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제 이강훈이 윤지혜에게 노래 불러주고 키스하면서 어장관리 끝난 거 아니냐고? 동요하지 말라우. 어장관리 그렇게 쉽게 안 끝난다우.

이강훈 정신력 테스트하는 작가
이강훈이 고재학 교수에게 과잉 충성을 하면서까지 조교수 임용에 목을 매는 건 그가 아무런 연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배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강훈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고재학 교수의 실수를 대신 뒤집어쓰면서 병원 내 신뢰도가 추락했고, 하필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온 시간에 위급한 환자가 발생해 피도 눈물도 없는 오빠로 낙인찍혔다.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김상철 교수에게 무릎 꿇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애원까지 했으나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화송그룹 회장의 응급수술을 무사히 끝냈더니 허락 없이 수술했다며 법무팀의 조사를 받았다.

이강훈은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조교수가 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의 윤경아 작가는 끊임없이 이강훈에게 시련을 안겼고, 이로 인해 이강훈이 천하대 조교수로 복귀했을 때의 쾌감은 반감됐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 다다를수록 신하균의 연기력은 제대로 물이 올랐다. 이젠 중대한 결단을 내린 후 눈을 뜰 때 진하게 생기는 쌍꺼풀, 수술실 입구에서 자동문을 여는 손짓만 봐도 현재 이강훈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아, 어쩌면 이 모든 건 신하균의 모든 연기력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던 건가. 차라리 그렇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겠다.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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