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열혈 검열제국’, 이 폭력 사회를 아십니까
[위근우의 10 Voice] ‘열혈 검열제국’, 이 폭력 사회를 아십니까
조석과 강풀, 하일권 작가도 못하던 일을 귀귀 작가가 해냈다. 국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인 1면에 그가 포털 야후에 연재 중인 가 소개된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유력 매체가 지난 한해 내내 다른 매체들이 앞 다투어 소개했던 웹툰의 인기몰이 현상에 대해 뒷북을 쳤을 리 없다. 1월 7일자 는 ‘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에 내재된 폭력성을 소개하고, 법정경찰학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이들은 폭력성이 짙은 웹툰을 보며 폭력의 구체적 방법을 학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곧바로 폭력적 성향을 띤 웹툰을 집중 심의하겠으며 해당 웹툰이나 특정 회차를 청소년유해매체로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는 총 182회 연재분 중 최근 연재분인 5회 분량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서비스가 안 되는 상태다. 네이버에 을 연재 중인 사다함 작가는 지난 11일 업데이트된 만화 하단에 캐릭터와 함께 ‘만화 표현의 자유 함께 지켜나갑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방통심의위의 심의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 의사를 드러냈다.

웹툰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인과관계는 정당한가
[위근우의 10 Voice] ‘열혈 검열제국’, 이 폭력 사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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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폭력적 내용을 담은 작품인 건 사실이다. 왕따 이규창은 매번 이유 없이 피가 터지도록 맞고, 선생은 학생에게 ‘생일빵’을 맞으며, 청학동에서 올라온 도령은 친구 부모님께 세뱃돈을 강탈해간다. 모든 인터넷 유저에게 오픈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아무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문제는 이 웹툰이 독자들에게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는 주장까지의 논리적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사는 ‘를 너무 좋아하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라는 인터넷 상의 글을 소개했지만 기자가 확보해야 했던 건 작품을 보고 폭력의 쾌감을 배웠다는 증언이다.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긴 했지만 인용이란 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필요하지, 논리의 빈약함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폭력적 웹툰이 늘면서 학원 폭력 건수 역시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웹툰이 문제라고 결론 내리는 건 원인과 결과를 억지로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MBC 가 저질렀던 폭력성 실험의 재탕이다. PC방이 정전되자 게임을 하던 학생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인 건 사실이다. 여기서 폭력성의 원인을 정전이 아닌 게임 탓으로 돌리게 되면 코미디가 된다. 그렇다면 학원 폭력을 담은 만화가 학원 폭력을 조장한다는 인과관계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심의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관계
[위근우의 10 Voice] ‘열혈 검열제국’, 이 폭력 사회를 아십니까
[위근우의 10 Voice] ‘열혈 검열제국’, 이 폭력 사회를 아십니까
하지만 정작 이 질문을 집요하게 던져야 할 주체인 방통심의위는 앵무새처럼 의 논지 그대로를 가져와 집중 심의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물론 는 마냥 웃으며 보기에는 불편한 작품이며, 아이들이 기왕이면 그보다는 나 를 보는 게 정서적으로 낫지 않을까 싶은 게 직관적인 판단이다. 이번 기사 이전부터도 의 댓글란에는 19금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 다만 세상에서 과학적 근거 없는 직관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두 부류는 기자와 공권력이다. 그 파급력이 자칫 대상에게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좀비물인 이나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낸 같은 웹툰이 19금으로 분류되어 성인 인증을 하고 볼 수 있었던 만큼 몇몇 작품에 같은 제한을 두는 게 심각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민번호와 이름을 이용한 성인 인증 시스템은 보고자 하는 미성년을 제재하는데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굳이 인증까지 하며 웹툰을 볼 생각은 없는 성인 독자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데 효과가 있다. 실제로 학원 액션물인 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공격을 시도하는 장면 때문에 19금으로 분류되며 조회수가 급속히 떨어졌고, 그 부분을 어색하게나마 수정한 뒤에야 다시 정상 서비스 될 수 있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창작자 스스로 자체 검열할 여지가 충분하다. 표현의 자유 침해란 그런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선이며, 심의는 절대악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심의가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다만 필요악은 모든 종류의 차선을 고민한 이후에 발동해야 할 최후의 당위적 폭력이어야 한다. 창작의 자유를 침해해야 할 정도로 웹툰에 의한 모방 폭력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웹툰에의 접근을 막기보다는 픽션을 보고 무작정 모방하지 않는 판단력을 가정과 학교에서 심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인 건 아닌지 섬세하게 조사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더 실효성이 있고 결과적으로 좋은지 따진다는 점에서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그토록 주장하던 실용주의적 태도가 아닐까. 현재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완성도 높고 심지어 경제효과 역시 기대되는 분야가 웹툰이며, 그것이 자유로운 창작 환경 덕분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이 합리적 논의 없이 창작의 세계를 억압한다면 과연, 지금 이곳이 의 가상보다 덜 폭력적이라 말할 자신이 없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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