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4개월 만에 32kg을 감량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매주 수많은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체중계에 올라 자신의 다이어트 과정을 생중계했던 것 역시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KBS ‘헬스걸’의 이희경은 배가 드러난 탑과 짧은 반바지를 입고 등장했던 첫 회를 “사형대에 올라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사람들이 제 배와 허벅지를 보고 차라리 손가락질하거나 웃으면 상관없는데 혹시라도 이게 비호감으로 비칠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첫 방송 때는 얼굴에 어색함과 부담감이 다 드러났어요. 절대 태연할 수가 없었죠. 다행히도 첫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99.9%가 응원의 글이었어요. 여자로서 정말 힘든 결정 하셨다고,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달라고. 응원 글을 보고 나니까 그다음 주부터는 괜히 더 자신 있게 제 살들을 보여주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이희경은 ‘슈퍼스타 KBS’의 푸근한 권사님과 ‘우리 성광 씨가 달라졌어요’의 엄한 육아전문가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이미지가 달라졌다.

사실 이희경은 뚱뚱한 자신을 감춘다거나 몸매 콤플렉스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쁘다는 말보다 웃기는 몸을 갖고 있다는 말이 더 듣기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희경에게 중요한 건 32kg 감량 자체가 아니라, 그 때문에 달라진 마음가짐이다. “예전에도 저를 사랑했고 지금도 저를 사랑하지만, 정말 습자지 한 장 정도의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남자랑 단둘이 있으면 굉장히 어색해하는 성격인데, 예전에는 그 어색한 분위기를 제가 깨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예쁜 모습으로 어필한다면 저는 성격으로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방이 절 이해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조금의 자유를 준 거죠. 살을 빼고 나서 변한 건 상대방이 아니라 제 마음이에요.” 그 자유를 얻기 위해 4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했고 아직도 라면과 야식을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이희경. 그가 대학교 시절부터 ‘헬스걸’이 끝난 최근까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을 추천했다.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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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지영의
이희경의 첫 번째 추천 곡은 지금의 개그맨 이희경을 있게 한 노래라 할 수 있는 ‘잊지 말아요’다. “ ‘슈퍼스타 KBS’의 권사님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처음 부른 노래가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였어요. 어떤 가요를 부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신)보라가 ‘잊지 말아요’를 추천해줬어요. 즉석에서 불러봤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가장 처음에 입에 밴 곡이었고, 다른 노래도 불러봤는데 그만한 노래가 없었어요. 첫 단추를 잘 끼우게 됐죠. 그래서 백지영 씨는 저를 모르는데 전 백지영 씨를 TV에서 볼 때마다 애착이 가요. (웃음) 정말 애절한 노래인데 들을 때마다 권사님 톤이 반사적으로 나와요.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같은 하늘 다른 곳에서, 아버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러면서. 하하.”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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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현철의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에요. 대학교 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밤에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춘천 가는 기차’를 들으면 피로가 확 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상념에 잠기기도 정말 좋은 곡이죠. 그때는 이 버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았어요. 녹초가 된 몸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같은 거 있잖아요. 최근에 ‘헬스걸’ 할 때도 힘들고 피곤한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 곡을 무조건 첫 곡으로 들었어요.”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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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현식의
“저를 감상에 젖게 하는 두 분이 계신 데, 김현식 씨와 김광석 씨에요. 그중에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 오는 날씨, 약간 우울한 날에 잘 어울리는 곡이죠. 대학교 때 비가 오면 막걸리에 파전을 먹던 단골집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렇게 운치가 있었어요. 그런 날엔 막걸리가 나를 마시는지, 내가 막걸리는 마시는지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비 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 드시면서 이 노래를 들으시면 ‘분위기에 취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심지어 전 파전을 베개 삼아 잠을 자기도 했어요. 하하하.”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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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Various Artists의
“이 노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노래예요. 살아계셨을 때 노래방 가시면 항상 부르셨거든요. 약간 박자를 놓치긴 하셨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애창곡이었어요. ‘헬스걸’ 끝나고 나서 예쁜 옷 입고 엄마, 언니와 함께 아버지 산소에 갔어요. 아버지한테 저 알아보겠느냐고, 만날 뚱뚱한 모습만 보여 드렸는데 알아보겠느냐면서 한바탕 울고 내려왔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부르시던 그 선율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얼마 전에 MBC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 씨가 ‘하얀 나비’를 불러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누군가가 그 노래를 불러주니까 좋더라고요.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어요.”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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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ariah Carey의 < All I Want For Christmas (EP) >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언제 들어도 크리스마스 같아요. 내 옆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종소리가 울리고, 현란한 네온사인 옆을 거닐고 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 것 같고, 그 미지의 남자가 제 손을 잡고 있을 것 같고. (웃음)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곡이에요. 12월의 주제가죠.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을 저희 집에 초대해서 가족과 함께 파티를 열고 싶었어요. 풍선도 불고 케이크랑 달콤한 와인도 사고 영덕 대게도 좀 삶아서. 아니면 대하라도. (웃음) 어느 순간부터 철이 들었는지 엄마가 혼자 계시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안 되겠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집에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게 참뜻 깊고 좋아요.”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이희경│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들
외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푸근하고 선한 아줌마 캐릭터”를 선보이던 개그우먼의 다이어트라는 건, 지금까지 쌓아 온 캐릭터를 잃을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희경은 요즘 ‘불편한 진실’에 출연하는 정경미의 예를 들며 그러한 우려에 대해 반박한다. “정경미 선배님은 날씬하신대도 정말 맛깔나게 아줌마 연기를 잘하시잖아요. 아줌마 캐릭터와 몸매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전 오히려 설레요. 예전에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역할을 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젊은 여자와 아줌마 모두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또 다른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문화살롱’ 같은 느낌의 코너를 준비하려고요.”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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