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머금고 차악이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8일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 합의한 미디어렙 잠정 법안을 받아들이며 올해 안에 이를 처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여야가 합의한 미디어렙 잠정 법안은 1공영(KBS, EBS, MBC 포함) 다(多)민영 체제를 기본으로 한다. 이에 따르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2년 동안 직접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미디어렙 의무 위탁을 미루고, 이후 독자 미디어렙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미디어렙은 방송광고를 방송사 대신 광고주에게 판매해주고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 대행체제다. 법안이 제정되면 종편은 합법적으로 기업으로부터 직접 광고를 따낼 수 있게 된다. 이는 보도, 제작과 광고를 분리해 방송이 기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막으며 언론의 공정성을 지킬 수 있게 하겠다는 미디어렙의 운영 취지와 어긋난다. 또한 민영 방송들은 미디어렙 소유 지분을 40%까지 허용, 미디어렙을 방송사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운영할 수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번 법안을 ‘차악’이라고 말한 이유다.

차악을 선택해서라도 연내처리 vs 원칙 없는 미디어렙법 반대
미디어렙법, 종편과 SBS를 위한 꼼수?
미디어렙법, 종편과 SBS를 위한 꼼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이 연내 입법을 강조한 것은 최근 방송시장의 변화 때문이다. 연내입법을 요구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연내 입법이 되지 않고 내년 4월 총선 후 입법을 한다면 빨라도 내년 9월이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임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내후년 4월 이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렙 관련 법 자체가 없는 현재,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광고 조달 능력이 부족한 종교방송이나 지역방송은 계속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군소매체는 과거 5년간 평균 매출액 이상의 연계판매를 지원받는다’는 조항이 담긴 미디어렙 잠정 법안을 통과시켜 광고취약매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다.

그러나 미디어렙 MBC 노동조합(이하 MBC 노조)은 독소조항을 껴안은 연내처리를 반대하고 나섰다. MBC 노조 측은 여야 잠정 합의안에 대해 “소유지분 한도 40%라는 한나라당 안을 민주통합당이 그대로 받아 SBS에 이어 종편까지 사실상 독자적인 미디어렙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MBC 노조는 ‘1공영 1민영’체제에서 종편을 하나의 민영 미디어렙으로 묶고, 민영 미디어렙 소유지분을 40%가 아닌 20%로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MBC가 KBS, EBS와는 다른 재원조달 구조를 갖고 있지만 공영미디어렙으로 분류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종편이 미디어렙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고, 언론의 공정성을 확보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차후에 독소조항을 수정할 수 있다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에 대해 MBC 노조 이용마 홍보국장은 “여야가 이미 합의한 사안을 다시 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대각을 세웠다.

반면 MBC 사측은 독자 미디어렙 출범을 알렸다. 지난 26일 MBC 사측은 “MBC를 공영 미디어렙에 편입시킬 경우,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과 자유로운 광고영업을 하는 민영-종편 방송의 틈바구니에서 사실상 MBC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독자 미디어렙 설립 계획을 공표했다. MBC 이진숙 홍보국장은 공영방송의 소유구조를 가진 MBC가 공영미디어렙에 포함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방송내용은 공영을 추구하지만 미디어렙은 영업활동이다. MBC의 재원은 순전히 광고에서 오기 때문에 이를 분리해서 봐야한다”고 답했다. MBC 사측의 독자적 행보로 MBC 노조 측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장지호 정책국장은 “MBC가 종편채널, 민영방송 SBS처럼 독자적 미디어렙을 설립한다면, MBC 노조는 종편의 1사 1(미디어)렙 체제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MBC 노조가 원칙으로 세웠던 ‘1공영 1민영’체제가 정작 자사 때문에 ‘1공영 다(多)민영(SBS, MBC 등 포함)’체제가 되는 동시에 종편의 불합리한 행보에 대해서도 문제 삼기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 이용마 홍보국장은 “연내에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는 자사의 독자 미디어렙 설립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히며 사측의 발표를 무효화 할 것임을 예고했다.

구경만 해도 이익인 종편과 SBS
미디어렙법, 종편과 SBS를 위한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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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언론시민단체, MBC 노조-사측이 불협화음을 내는 동안 정작 특혜를 누리는 곳은 종편과 SBS다. 지난 12월 개국한 종편은 현재 사실상 직접 광고 영업을 하고 있고, SBS는 내년 1월부터 SBS미디어홀딩스가 자사 미디어렙 업무를 맡아 광고 영업을 할 예정이다. 여야가 합의한 미디어렙 법안이 연내에 통과하거나, 혹은 통과 하지 않더라도 종편과 SBS가 받게 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연내에 법이 통과될 경우 종편은 2년간 미디어렙에 묶이지 않고, 연내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라도 법이 없기 때문에 직접 광고영업활동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종편이 미디어렙에 의무 위탁하는 것을 2년간 유예하는 항목에 대해 ‘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렙 법안은 차악이 아닌 대안이 필요하다. 민주통합당은 ‘1렙에 2개 이상의 방송사가 투자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미디어법 잠정 법안에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최소한의 의무규정을 넣어 방송사가 직접 광고를 판매를 하는 1사 1렙 체제를 막기 위해서다. 연내 입법을 주장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장지호 정책국장은 “입법이 된 후에는 2차 투쟁을 통해 독소조항을 개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내세운 대안이 가능한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법안조차 없이 민영 방송사들이 광고를 직접 영업하는 현재의 상황이 최악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대안을 찾을 때 미디어렙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미디어렙 법은 누군가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법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법안이 돼야 한다. 과연 이 당연한 상식이 지켜질 수 있을까.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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