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하 )의 지우(정지훈)와 진이(이나영)는 끊임없이 도망친다. 자신들을 죽이려는 양두희(송재호)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나카무라 황(성동일)과 제임스 봉(조희봉)으로 부터,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ㅉㅗㅈ는 도수(이정진)로부터. 그러나 매회 각계각층, 다방면에서 들어오는 위협으로부터 도망가는 이들은 단순히 몸을 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망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막판 반전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고, 반격의 한방을 준비한다. 공격을 위한 방어. 그리고 마침내 지우와 진이가 준비해온 총 공격은 궤도에 올랐고, 이제 그 결과만이 남았다. 강명석, 이승한 기자가 종영을 앞두고 있는 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한다. /편집자주

(이하 )에서 ‘B’는 두 번째 계획이다. 또한 ‘B급’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Believe’일 수도 있다. 진이(이나영)는 카이(다니엘 헤니)를 믿지만 배신당하고, 도수(이정진)는 신념이나 다름없던 경찰에서 축출 당한다. 그들은 결국 믿을 수 없다던 탐정 지우(정지훈)를 믿는다. 진이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하는 지우는 누구도 믿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진이와 도수에게 믿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진이와 도수는 “모든 증거가 명백”하게 그를 죄인으로 가리키기에 불신한다. 하지만 지우는 그 모든 증거도 불신하라고 한다. 양두희 회장(송재호) 같은 거대 자본가는 의문사한 지우의 동료 케빈(오지호)의 유서를 조작하고, 해외 은행까지 움직여 증거를 조작한다.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시대에 믿을 수 있는 증거란 자신이 모든 실체를 아는 것뿐이다. 그리고 실체를 아는 방법은 경찰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인정도 못 받는 직업인 탐정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네트워크의 연대
<도망자> vs <도망자>│Plan B의 정체
vs <도망자>│Plan B의 정체" />믿을 수 없는 공식적인 증거 대신 믿을 수 있는 비공식적인 증거. 믿을 수 없는 자본과 국가 대신 “고객님”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사설탐정. 지우가 전자기기를 통해 어디서든 정보를 얻고, 지식 검색 서비스처럼 어떤 정보든 척척 말하는 건 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국가 시스템 바깥에 있는 탐정과 의뢰인이 정보를 모아 공권력이 제시한 증거와 그 뒤에 숨은 추악한 권력을 뒤집는다. 도수는 경찰을 관둔 뒤 개인적으로 양두희 회장을 추적하며 “경찰이 못했던 것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제작진의 KBS 가 부패한 국가권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자들의 이야기였다면, 는 권력 바깥에 있는 자들이 네트워크로 모여 권력을 공격한다. 나라의 금괴를 은닉한 부로 만들어진 권력이 대학 교수를 만들고, 경찰을 사조직처럼 부리며, 정치권력까지 얻으려 한다.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건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다. 의 중반까지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로케이션은 지역 자체보다 일본에 있는 지우가 도망칠 수 있는 골목길을 서울의 사무실에서 알려주는 순간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는 권력을 이길 수 있는 정보의 힘을 역설하되, 정보를 얻는 과정 자체는 치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보는 지우의 두뇌 플레이나 지우의 사무실과 제임스봉(조희봉) 등을 통해 금세 얻어진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키보드만 쳐도 알 수 있지만, 사라진 금괴나 멜기덱의 정체를 아는 데는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 노력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정보를 얻기까지 사람들이 보여주는 치열함이나 동업과 배반을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의 감정 선이 드러날 기회를 잃었다. 해외 로케에서 등장한 인물들은 대부분 정보 전달자이거나, 지우 일행을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역할에 그쳤다. 중반까지의 해외 로케 분량이 의 후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분량동안 정보는 제공했으되, 사람은 남기지 못한 탓일 것이다.

정보는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의 후반에서 격렬한 드라마의 상당부분이 도수와 그를 지휘하는 국장의 대립에서 나온 것은 의 문제를 보여준다. 도수는 국장에 의해 수사를 방해 당하고, 팀의 해체와 팀원의 부상을 겪으며 세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반면 도수가 금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안 지우와 진이는 첨단기기로 정보를 얻고, 전화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첨단 기기로 이뤄지는 쿨한 정보전이 평범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짓누르는 거대 권력에 대한 분노가 만나면서 오락과 메시지, 전반과 후반, 해외와 국내, 탐정과 경찰이 따로 논다. 결국 어지럽게 얽힌 문제들은 양두희 회장이 고용한 킬러가 여러 캐릭터 사이를 휘저으면서 결말로 가는 실마리를 찾는다. 다른 캐릭터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처음에는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을 만큼 대단하게 나왔다가 허무하게 잡혀버린다. 조선은행권 화폐에 적힌 암호는 차가운 정보다. 하지만 그걸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던졌다. 가 차가운 정보만큼이나 뜨거운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가 전달하려는 무엇에 대해서도 좀 더 믿음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글 강명석

(이하 )의 곽정환 감독은 시대에 저항하는 소년, 소녀들을 두 차례 그렸고 그들은 두 차례 다 패배했다. KBS 의 주인공들은 정조의 죽음이라는 정사(正史)의 한계에 갇혀 죽거나 나라를 떠났고, KBS 의 사내들이 아무리 애쓴다 한들 조선의 17대 왕이 효종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답이 정해져 있는 사극의 세계에서 시대의 부조리와 싸우는 것은 패배를 전제로 한 싸움이다. 그러나 곽정환은 굳이 정조와 소현세자의 시간을 택했고, 세계의 변혁을 꿈꾸던 이들이 패배한 순간을 복기하며 그 패인에 대해 연구했다.

제각각의 욕망만큼 파편화된 싸움
<도망자> vs <도망자>│Plan B의 정체
vs <도망자>│Plan B의 정체" />조선에 머물러 있던 곽정환의 시간은 에서 21세기로 이동한다. 서얼, 중인, 도망노비였던 주인공의 자리엔 ‘천재 탐정’ 지우(정지훈)가 들어왔다. 영화 과 에서 이미 첩보 활극을 다뤘던 천성일 작가는 초반부터 쉴 틈 없이 시청자들을 태국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끌고 다녔다. 그러다 극이 절반을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모든 퍼즐들이 차례로 맞춰진다. 멜기덱은 양두희 회장(송재호)과 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의 총칭이었고, 양 회장이 진이(이나영)의 가족을 죽인 이유는 손에 피를 묻혀 부를 축적한 추악한 과거를 묻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조선은행권 지폐에는 양 회장의 과거를 입증해 줄 조선은행 금괴가 묻힌 위치가 일련번호로 적혀 있다. 빠른 속도로 퍼즐들을 맞춘 뒤, 지우와 진이는 목숨을 걸고 양 회장을 파멸시키기 위한 복수에 매진한다. 천성일의 첩보 활극인 줄 알았던 는 갑자기 곽정환의 세계로 점프한다. 부조리한 시대 권력에 저항하는 소년 소녀들의 세계, 그러나 이번엔 그들의 패배를 결정할 정사가 없는 세계로.

거대 자본을 손에 쥐고 세계 어디든 자신의 수하를 보낼 수 있는 양 회장과 대등한 수준의 싸움을 벌이려면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하다. 막대한 정보력과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자신이 뜻한 바를 초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강인한 존재. 그래서 는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을 일삼는, “존재 자체가 이미 불법”인 탐정 지우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러나 지우와 진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양 회장 혼자가 아니다. 도수(이정진)는 선을 향해 달리고 싶어 하지만, 거짓 정보에 눈이 가려져 자신이 어디로 달리는지 모른다. 오 국장(남문철)과 백 팀장(대니 안)은 자기 보신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나카무라 황(성동일)은 금괴의 위력 앞에 양 회장과 손을 잡는다. 각자의 욕망과 신념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작동하고, 전선은 파편화되어 사방에서 지우와 진이를 노린다. 그래서 지우와 진이는 끝없이 도망치고, 복잡한 전선에서 강력한 적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 ‘Plan B’를, 필요하다면 ‘Plan C’도 준비한다. 다소 뜬금없었던 부제 ‘Plan B’의 의미는, 이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어떻게든 이겨 보려는 몸부림이다.

다른 세대의 작은 승리를 위해
극의 종반, 진이는 자신의 할아버지 또한 양 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도덕적 우월을 잃고 패배감에 휩싸여 “내가 우리 할아버지한테 복수하려고 이러고 있었던 거야?”라고 오열한다. 그러나 는 양 회장의 아들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양영준(김응수)의 입을 빌어 “이런 건 아버지 세대가 했던 정치고, 이건 저희 세대가 해나갈 정치”라고 선언한 바 있다. “저희 세대의 정치”는 “아버지 세대가 했던 정치”와의 결연한 절연과 단죄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바톤은 다음 세대로 넘어왔다. 선대가 저지른 악업의 수혜자임에도,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었다고 선언하고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진이와 영준의 세대. 어쩌면 곽정환은 이번만큼은 마침내 선이 승리하는 결말을 그리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도수와 카이(다니엘 헤니)와 지우와 진이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히 이뤘을 때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작은 승리. 그것이 설령 드라마 속 승리일 뿐일지라도 말이다.
글 이승한

글. 강명석 two@
글. 이승한 fou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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