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여러 가지다. 대물, 남인, 재주넘는 곰, 그리고 김윤식. 하지만 그 중 그녀의 진짜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KBS 의 윤희는 작문 실력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성균관에서 금녀의 구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래 이름을 버린 채 남이 정해놓은 이름과 자리에서 존재해야 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벗과 내밀한 우정을 나눌 때조차 다른 누군가를 연기해야 했던 그 청춘은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윤희를 연기하며 그녀의 고민과 성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했던 배우 박민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패셔니스타, 셀러브리티, ㅇㅇ녀, 혹은 누구누구의 애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20대의 여배우는 여인이니 성균관을 그만두라는 벗에게 “국법도 어명도 무서울 것 없는 나요”라고 말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더딘 성장을 참아주지 않는 세계에서
박민영│흔들리는 인간, 두려움 없는 배우
박민영│흔들리는 인간, 두려움 없는 배우
김윤희가 동생의 이름으로 성균관에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면 박민영을 단번에 대중에게 인식시켜준 이름은 MBC 의 ‘멍청유미’다. 미국의 수도가 LA와 로스앤젤레스 중 무엇인지 고민하면서도 당당했던 이 캐릭터는 다양한 캐릭터가 모인 하이킥 월드에서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더딘 성장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연예계에서 데뷔작 한 편으로 스타덤에 오른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하지만 행운은 계속될 수 없고, 다시 말하지만 이 바닥은 더딘 성장을, 특히나 여배우에게는 좀체 허락해주지 않는다. KBS 의 은별은 전학생으로서 괴롭힘과 오해를 당하면서도 유미처럼 즉각적으로 싸우기보다는 자기 안에 억울함을 갈무리하는 인물이었지만 사람들은 둘의 차이, 그리고 연기적 변화보다는 발랄한 교복 차림의 통통 튀는 여고생 이미지로 그녀를 기억했다. 제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얻더라도 단 1년, 단 두 작품 만에 이미지의 고착화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여배우가 견뎌내야 할 세계다. 또한 단 한 작품만 부진해도, 단 1년만 소식이 뜸해도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 이 세계다.

사실 SBS 는 저조했던 시청률과는 별개로 처절한 파국을 그렸다는 면에서 영웅 서사를 바탕에 깐 여태까지의 고대 사극과는 전혀 다른 흥미로운 사극이다. 특히 호동(정경호)에 대한 사랑과 조국 낙랑국의 안위 사이에서 처절하게 갈등하며 자명고를 찢고, 자신을 배신한 호동에게 “낙랑국을 이렇게 만든 죄 후회하고 또 후회하지만 그날로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자명고를 찢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어”라 말하는 낙랑 공주 라희는 가장 비극적인 서사를 그려냈다. 자칫 배우의 멘탈이 붕괴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이 파국의 서사를 박민영은 제법 잘 소화해냈지만 우울한 사극이 기록한 저조한 성적은 그녀에 대한 평가에도 너무 쉽게 적용됐다. 발음과 발성부터 시작한 기본적인 트레이닝으로 연기 자체는 성장했지만 대중의 관심은 멀어졌고, 1년 동안 맡는 작품마다 엎어지는 경험을 했다. “사춘기 때에도 안 겪은, 내가 이 길을 맞게 가고 있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고민”이 그녀를 괴롭혔다. 산 속에서 가장 두려울 때는 길이 험할 때가 아니라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의문이 생길 때다.

박민영, 비로소 이름을 찾다
박민영│흔들리는 인간, 두려움 없는 배우
박민영│흔들리는 인간, 두려움 없는 배우
때문에 그녀가 의 윤희를 통해 스스로 “치유를 받았다”고 말하는 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대사례를 준비하며 이선준(믹키유천)에게 ‘너와 나는 다르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할 때, 윤희가 그렇게 과격한 말을 내뱉는 게 이해가 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뭐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나 싶을 텐데 윤희는 어쨌거나 생사를 앞에 두고 대사례라는 마지막 시험을 보는 거잖나. 그렇기 때문에 절박했고, 과격한 말도 하고, 치열하게 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녀의 말대로, 잘금 사인방 중 누구 하나에 대해서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던 안에서도 윤희는 언제나 사건의 위태로운 끄트머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성장해온 인물이다. 빈부와 귀천의 벽을 허물려 하는 개혁군주조차 남녀의 유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윤희는 자신의 성별이 드러날 위험을 곁에 두고 성균관에 입학하고 신방례와 대사례, 추문 사건 등을 겪는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단순히 그녀가 그것을 견뎌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하나씩 관철해가며 자신의 본래 이름에 조금씩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배우가 성장한다는 건, 추측성 연애 루머 따위로 소비되는 와중에도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의 엔딩에 대해 여러 관점을 가질 수 있겠지만 박민영은 “마지막에 대사성이 김윤식 박사라고 불렀다. 마지막까지 동생의 이름으로 박사를 한 거다. 결국 여자로서 인정받은 건 없다”며 아쉬워하는 건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아쉬움은 동질감의 다른 이름이고, 그 동질감 안에서 그녀는 윤희를 연기하며, 아니 윤희의 삶을 살며 스스로 용기를 얻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용기를 줬다. 결과론일 수 있지만 박민영 아닌 김윤희를 떠올리는 건 이제 쉽지 않다.

하여, 이 끝나고 김윤희가 우리의 기억에 남은 만큼, 박민영도 남았다. 물론 드라마로 따지면 이제 막 신방례의 위기를 거친 수준일지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의 인기와 관심은 완전히 그녀의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박민영이라는 이름이 가까워진 만큼, 20대의 그녀 역시 이러저러한 수식을 넘어선 박민영 본인의 삶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분명 몇 년 안에 나만의 시련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쩔 수 없이. 여배우라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은 흔들리는 바늘이 옳은 방향을 가르쳐 준다 가르쳐줬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흔들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충분히 방황해도 되는 나이”를 산다고 여기는 그녀는 어떤 흔들림과 부침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흔들리되 두려워하지 않는 발자국을 또렷하게 길 위에 남기며.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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