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을 조인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길도 묻지 않았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just walking man’. 자신의 노랫말처럼, 윤종신은 계속 걸었다. 딱히 답도, 화려한 영광도 없는 길. 015B에서는 객원 가수였고, 솔로로 나서 인기도 얻었지만 ‘슈퍼스타’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예능으로 들어가니 SBS 에서 강호동이 그에게 “제 점수는요”라며 예능 점수를 매긴다. 늘 개근상은 탔지만 한 번도 최우수상은 못 탔던 남자. MBC 의 ‘라디오 스타’에서도 공격수 김구라의 뒤에서 깐족거리며 지원 사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건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한 그의 포지션을 말해준다. 초등학생도 아는 예능인이지만, 015B 시절부터 좋아하던 팬들을 아쉽게 만들기도 했던 예능 하는 음악인.

거물이 아니어도 늘 윤종신으로
윤종신│꾸준히, 길 위의 윤종신
윤종신│꾸준히, 길 위의 윤종신
그러나, 20년. 2시간 남짓한 마라톤 완주보다 73000배쯤 더 긴 시간. 그와 같은 세대의 뮤지션들 중 누군가는 신화가 됐고, 거물이 됐고, 우아한 예술가가 됐다. 반대로 윤종신은 이것 저것 요것 깨알같이 하면서 늘 윤종신으로 살았다. 성시경에게 곡을 사달라고 농담하고, KBS 에서 아이돌 스타 온유에게 아부하는 상황극을 벌이기도 하며, 트위터에서 팬들과 대화한다. 20년 근속 직장인처럼, 그는 늘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바로 지금을 업데이트 한다. 그가 ‘환생’을 냈을 때 ‘너의 결혼식’을 기억했던 사람 중 누군가는 “이게 뭐냐”고 했고, ‘환생’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팥빙수’를 들으며 또 “이게 뭐냐”고 했다. ‘팥빙수’의 ‘열라 좋아’가 입에 떨어지지 않을 때쯤 11집 에서 아이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는 그 시절의 발라드 오빠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러나, 그 순간, ‘본능적으로’.

데뷔 20년째에 윤종신은 다시 ‘핫’해졌다. Mnet 에 대한 발언들은 트위터의 사소한 멘션까지 기사화됐고, 가수 윤종신이 아닌 작곡가 윤종신이 준 강승윤의 ‘본능적으로’는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이것 저것 요것, 깨알같이 하다 보니 다시 윤종신을 위한 시간이 돌아왔다. 심사평 몇 마디 때문만은 아니다. 결선 초반 장재인과 존 박을 떠오르는 강자로 꼽으며 쇼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킨 것도, 강승윤을 처음으로 발굴한 것도 그였다. 윤종신은 강승윤에게 프로듀서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그의 단점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자신이 프로듀서가 되는 순간 강승윤의 가능성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그는 출연자의 음악적 맥락을 라는 쇼의 방향과 접합시킬 줄 알았다. 최고의 뮤지션은 아닐지도 모른다. 최고의 예능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종신은 예능의 맥을 짚는 감각으로 지금의 대중에게 음악을 전달했다. 그렇게 윤종신에 대한 오랜 신뢰와 현재의 재미가 만났다.

지금 현재의 감정이 만드는 음악
윤종신│꾸준히, 길 위의 윤종신
윤종신│꾸준히, 길 위의 윤종신
이 윤종신이 발표한 그간의 음원을 모은 앨범인 것은 나침반 없이 늘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은 그의 행보를 보여준다. 누군가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고, 누군가 거창한 미래만을 이야기할 때 윤종신은 바로 지금의 현실에 발을 붙인다. 앨범이 잘 팔리지 않으니 디지털 음원부터 내고, 한꺼번에 발표하면 대중의 호응이 분산될 테니 한 달에 한 곡씩 낸다. 필요할 때면 막걸리 CM송을 부르고, 감이 좋을 때는 ‘본능적으로’를 통기타로 한 시간 만에 작곡한다. ‘본능적으로’를 작곡하면 ‘이성적으로’도 만들어 본다.

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의 작품이다. 음악에 거대한 의미 부여를 하는 대신, 꾸준히 만들고 부르고 파는 직업인이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만든 앨범. 그만큼 일관성도 찾아볼 수 없고, 곡의 완성도도 들쑥날쑥 이다. ‘막걸리나’처럼 막걸리 CM송까지 있다. 그러나, 늘 바로 그 순간의 감정에 내키는 대로 곡을 쓰지 않았다면 ‘본능적으로’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치과에서’는 치과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시술 과정이 갑자기 사랑노래로 변하는 반전과 만나고, 편곡은 블루스적인 기타 연주 한 대가 이끌어 간다. 긴 제작 기간 동안 자유롭게 곡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뮤지션 마음대로 곡을 만들어볼 여유를 줬다. 마음대로 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같은 곡이 한 번쯤은 나오고, 에서 그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만날 기회가 한 번쯤은 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력에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를 추가할 것이다. 그는 내년부터 강승윤 같은 이들을 위해 제작과 프로듀싱에 뛰어들 예정이다. 물론, 그 역시 엄청나게 잘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대중은 또 “이게 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종신은 그렇게 걸어왔고, 조금씩 대중을 이해시켰다.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 뒤로는 꽤 많은 것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크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섭섭할 만큼 깨알 같은 재미가 있는.

글. 강명석 two@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