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본 갈 때 가이드북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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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방영된 아베 히로시 주연의 드라마 에서 쿠로키 메이사는 타운지 기자였다. 수수께끼처럼 등장하는 그녀는 드라마의 무대인 니혼바시 닌교초의 이곳저곳을 파헤치며 돌아다녔다. 새로 생긴 가게, 유행하는 음식, 동네의 소문까지. 살인사건을 빌미로 한 이 취재는 마을의 정보통이 됐다. 닌교초의 타운지 . 잡지가 무수히 많은 일본에서 그 어느 잡지보다 작고 세세한 이야기를 동네 주민의 시선으로 뽑아내는 매체가 타운지다. 작게는 지방 도시의 한 동네를, 크게는 시 하나를 단위로 TV나 일간지에 실리지 않는 마을의 소식을 알려준다.

지방의 중소 출판사의 타운지부터 거대 출판기업의 타운지까지 현재 일본에선 300여개가 넘는 타운지가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타운지만 해도 50여개다. 최근엔 와 같은 일반 잡지들도 마을 특별판을 지속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고로 시부야 근처에 가면 시부야의 타운지를, 키치조지 근처 서점에 가면 키치조지 타운지를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민들에겐 마을 알림판과 같은 기능을, 그리고 타지 사람들에겐 꼼꼼한 가이드 책의 기능을 하는 게 바로 타운지다. 관광 가이드 책이 담지 못하는 마을의 숨어있는 가게들과 이벤트 소식을 타운지를 열면 알 수 있다. 도쿄 여행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두껍고 무겁기만 한 관광 가이드 대신 동네 책방의 타운지를 권한다.

마을 맛집에서부터 산책코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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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발행되는 타운지 은 11월호에서 ‘설렁설렁 재미난 주택가’를 특집으로 다뤘다. 기사에는 ‘사실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카페’, ‘평범한 빵집의 대단한 빵’ 등이 실려있다. 키치조지 편에서는 쇼핑몰 아르테가 리뉴얼 오픈하면서 바뀌는 키치죠지 상점가의 흐름을 다뤘다. 동네 주민이 아니라면 쉽게 얻기 힘든 정보다. 역의 노선을 따라 형성된 문화를 다루는 타운지도 있다. < JG >는 마루노우치선을 따라 신주쿠에서 요츠야 사이 마을의 소식, 역사를 소개한다. 사람도, 가게도 많아 넘치는 신주쿠를 빠져나와 형성된 마을과 상점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타운지는 일본 마을의 특색을 엿볼 수 있는 매체기도 하다. ‘중년들의 하라주쿠’라 불리는 스가모의 타운지 은 최근 11월호에서 단풍철을 맞아 중년들의 산책 코스를 소개했다. 이 잡지에 소개된 가게들은 모두 중년들을 위한 아이템 천지다.

일본엔 전국 300 여 타운지가 가입한 단체 ‘타운 정보 전국 네트워크’가 있다. 상점가의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일본에선 마을의 알림판으로 타운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곧 타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빠르고 상세한 가이드 책이 됐다. 마을의 역사, 마을의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시작한 책이 유용한 콘텐츠가 된 셈이다. 숲과 그림, 카페를 가진 키치조지가 계속 키치조지일 수 있고, 지브리 미술관이 위치한 미타카시가 계속 꿈의 도시로 남을 수 있고, 음악과 영화, 패션과 젊음이 뒤섞인 시부야가 계속 시끌벅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 타운지를 만드는 도쿄 사람들의 노력 덕이 아닐까. 마을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 말로 마을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일본의 타운지에서 일본 마을의 오늘을 본다.

글. 도쿄=정재혁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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