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은 잘금 4인방의 성장담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작은 승리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짓궂은 신방례에서, 신체적 핸디캡을 안고 싸운 대사례에서, 그리고 김윤희의 누명을 벗기는 순두정강에서 그들은 하나씩 승리를 쟁취하며 자신들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선을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큰 꿈을 잃지 않지만 자신들이 맞닿은 현실을 개선하는 작은 실천 역시 잃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들은 정조의 과업을 이루기에 앞서 성균관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다음은 그들 잘금 4인방이 새로이 만든 성균관 신방례의 풍경을 상상해본 것이다. 과연 성균관은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까.

<성균관 스캔들>│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
“야! 뛰어!” 평양에서 내려왔다던 동기생 하나가 다급하게 외치다가 결국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떨어지는 매타작.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각(一刻) 전만 해도 그토록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이지 않았던가. 부모님들은 우리를 배웅하러 와주셨고, 온화한 미소로 우릴 바라보던 한 선진은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저는 성균관 장의 이선준이라 합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자식들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잘 보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과거 신방례의 악습 때문에 선진에게 바칠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오신 분들은 그대로 가지고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혀에 닿는 감미로움과 부른 배는 선비를 게으르게 만듭니다. 그저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 선비다운 꼿꼿함과 기품에 나와 동기들, 그리고 부모님들까지 ‘역시 잘금 4인방의 가랑 이선준’이라며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올해 성균관에 들어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동재 귀퉁이로 돌자마자 갑자기 저 앞에서 뭉게뭉게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유심히 보니 앞서던 동기생들이 갑자기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연 먼지 사이로 들리는 소리. 퍼억, 퍼억. 방금 전까지 웃는 낯으로 우리의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리던 선진들이 갑자기 살기 어린 표정으로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런 거 다 없어진 거 아니었어? 하지만 지금은 의혹이든 뭐든 다 내려놓은 채 뛰는데 열중해야 한다. 허억, 하지만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눈이 몽롱하고 걸음이 꼬인다고 느껴지는 순간 땅바닥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뒤통수와 등허리에 느껴지는 불같은 아픔. 퍼억, 퍼억, 퍼억. 바닥의 흙먼지가 흐르는 침과 함께 입안에 스며들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바라본 달에는 방금 헤어진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존경각 앞, 다들 상투가 풀어지고 얼굴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있다. 그리고 누구도 시키지 않았건만 오와 열을 반듯이 맞춰 서서 선진들을 기다렸다. “궐이 시작이요!” 한 선진이 외치자 북소리와 함께 장의 이선준을 비롯한 선진들이 존경각 앞에 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혼자 구시렁거리던 동기 하나가 손을 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신례가 선진에게 여쭐 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보게.” “내 듣기로 선진께서는 작년 신방례에서 무의미한 악습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그 이름을 알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오늘 이 몽둥이질은 악습의 반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 씨, 저걸 내가 말하면 좀 더 멋있었겠지만 방금 달음질을 하며 이십년 만에 깨어난 본능은 입을 다물라한다. 어쨌든 완벽한 논리다.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어서야 어찌 선비라 하겠는가? 이선준이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악습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에 반발했다. 하면, 악습과 전통의 차이란 무엇인가? 전통이 지금 이곳에서도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악습이란 그 의미는 잃은 채 관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여, 나 이선준은 다시금 우리 성균관에 맞는 의미를 부여해 신방례 전통을 전통으로서 지키고자 한다. 그대는 태형을 아는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이 다섯 가지 형벌 중 가장 급이 낮은 벌 아닙니까.” “그렇다. 가장 낮은 형벌이다. 허나 아랫도리를 벗기고 회초리로 볼기를 치는 중에 그 고통 때문에 혼절하는 백성이 한둘이 아니다. 때문에 형을 집행하는 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적어도 오늘 맞은 매를 통해 태형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출사 이후 형을 집행할 때 좀 더 신중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성균관 스캔들>│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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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이선준의 옆에 서있던 곱상한 선진 하나가 웃는 낯으로 입을 연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오.” 내 짐작이 맞으면 저 쥐방울만한 녀석이 분명 대물 김윤식일 것이다. 이 자식들, 다 한패거리였어. 하지만 지지 않고 또 한 명의 동기생이 물었다. “하지만 이 신성한 배움의 전당인 성균관에서 이렇게 난장판을 만든 것은 어찌 설명하실 텝니까. 상투는 풀어지고 의복은 찢어졌으니 이게 어찌 선비의 몸가짐이란 말입니까.” 여전히 이선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우리가 이곳 성균관에서 학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책상물림으로 살기 위해서인가 훗날 출사하여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인가. 우리는 앞으로 정치를 해야 하고 정치란 저 혼자 고결한 소나무 한 그루가 되는 것이 아닌, 지저분한 흙탕물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이다. 하니, 어떤 난장 안에서도 선비로서의 뜻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지 않겠는가.” 다시 김윤식이 말했다. “나 역시 이선준 상유의 말에 동감하오. 허나 신례의 지적처럼 선비의 몸가짐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 일각 줄 터이니 의복과 머리를 단정히 하고 다시 오와 열을 맞춰 모이시오.”
<성균관 스캔들>│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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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과 분한 마음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확 움켜쥐며 틀어 올리는데, 저만치 떨어져 나를 보던 한 유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자기 옆의 험상궂은 유생에게 말했다. “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성균관 많이 좋아졌어, 그치이? 선진이 시켰는데 손이 보이네? 아까 뛸 때 보니 발도 보이더라고. 우리 때는 선진이 일각의 여유를 주면 그 반의 반 안에 다 해치웠는데 말이야. 저엉말 좋아졌어, 그렇지 걸오?” 걸오? 그 미친 말 문재신! 그렇다면 저 느끼하게 웃는 자가 분명 여림 구용하일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밖으로 삐져나온 저고리를 대충 안으로 쑤셔 넣는데 갑자기 구용하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유, 보아하니 성균관에 들어온다고 시전에서 제일가는 윤가네 포목점에서 비단 두루마기를 해오셨구머언. 그런데 어쩌나, 선비의 의복이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갈하게 깔맞춤으로 입어야 하는 것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내 두루마기를 풀어헤쳤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저고리와 바지가 드러났다. “아이, 좀 잘 차려입지 그랬나. 이러고서 두루마기로 대충 덮으면 되겠는가? 내가 잘 정리해줌세. 아, 손 치워어. 나 구용하야. 우선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나서 다시 정리해야지. 자, 이렇게 벗고 나서 다시… 아, 이런. 벌써 일각이 다 흘렀던 말인가? 아이, 이걸 어쩌나아… 할 수 없지. 우선 이대로 줄을 서시게.”
<성균관 스캔들>│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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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상투가 비뚤어진 녀석, 신발을 구겨 신은 녀석, 두루마기로 대충 가린 녀석들은 있었지만 나처럼 저고리까지 풀어헤친 몰골은 아무도 없다. 선진들이 복장을 검사하며 통과 불통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 때, 걸오 문재신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야.” “네?” “우습냐?” “네?” “우습지?” “아니요.” “뭐가?” “아무 것도 우습지 않습니다.” “왜 그래, 우습잖아.” “아닙니다.” “우습지 않으면… 이게 무슨 꼬라지야!” 야, 왜 이래. 분명히 아까 구용하가 내 옷을 풀어헤치는 걸 처음부터 보고서도 이러기야? 하지만 여전히 본능은 입을 다물라 했다. “밖에서 수재 소리 듣던 몸이니까 성균관이고 선진이고 우습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우스운 게 아닙니다.” “그럼 맞는 건 뭔데.” 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이를 악물었다. 분노 때문이 아니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발작적으로 시작된 흐느낌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잘…못… 흐흑…했…끄윽..스..스읍…끅…니다…흑…”

고백하건데, 혼자서 살기등등한 걸오의 눈빛을 견뎌냈던 몇 촌의 시간에 비하면 동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시작한 앉았다 일어섰다 백 회는 별 것 아니었다. 서로의 속도가 맞지 않아 파도가 칠 때마다 새로 시작해야 해서 실제로는 오백 회 정도 했지만, 나 혼자가 아닌 동기생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은 훈훈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한 동기가 부축을 해주었다. 처음 본 얼굴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지옥 같은 신방례를 함께 한 동기니까. 그리고 앞으로 성균관의 나날을 함께 할 친구니까. 비틀거리며 동재로 향하는데 그들, 잘금 4인방이 앞에 등장했다.
<성균관 스캔들>│잘금 4인방, 지옥의 신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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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괜찮은가?” 역시나 자상한 이선준의 목소리. “괘… 괜찮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친구가 있지. 즐거운 날을 함께 하는 친구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친구. 나는 성균관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후자가 되길 바라네. 비록 오늘 하루가 고됐지만 자네는 이미 수십 명의 진정한 벗을 얻은 셈이네. 어쨌든, 오늘 하루 무례가 컸네.” 살짝 미소 짓는 이선준의 얼굴은 처음 본 그 때처럼 자상했다. 그 때 걸오 문재신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자식, 아까는 많이 당황했지? 이 곳 성균관과 반촌을 오가다 보면 아까랑은 비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일들을 많이 목격하게 될 거야. 한 줌 권력만으로도 얼마나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보았으니 그런 것들이 이제 눈에 더 잘 들어올 게다.” 씨익 웃는 걸오 사형의 얼굴이 더없이 정겹다. “사형…”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짭짤하게 입안을 적셨다. “아유, 왜 울어. 이걸로 닦게나. 청국에서도 귀한 명나라 시대의 비단 손수건이라네.” 여림 사형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닦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내 등을 토닥이는 작지만 야무진 손은 대물 사형의 손이리라. 한참 이 광경을 흐뭇하게 보던 가랑 사형이 말했다. “우리 이렇게 말을 섞은 것도 인연이니 그냥 심심풀이로 뭐 하나만 물어보겠네.” “네, 사형, 말씀만 하십시오.” “응, 별 거 아니야. 우리 넷 중 누가 제일 잘생긴 거 같은가?”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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