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우리나라의 배우들을 인터뷰이로서의 능력으로 줄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 거론되는 배우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정우성이 분명 선두그룹을 형성할 것이다. 그와의 대화는 나 얼마 전 다녀온 베니스영화제 등 당장의 화제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꺼내놓는 답변들은 정우성이라는 사람 안에 들어찬 생각들을 쫓게 만든다. “사람이 눈 뜨고 있고, 말한다고 해서 깨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마음을 자꾸 되돌아보는 게 중요하지 어떤 하나의 생각이 자리 잡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자리를 잡고 확고하게 한다는 건 편협하고 편식하겠단 얘기거든요. 물론 그 안에서 분별력이라는 건 있어야겠죠. 사실 불교철학에선 분별하지 말라는 것도 늘 얘기하긴 하지만요. 분별한다는 건 단정 짓는 다는 거니까. 여기서 제가 얘기하는 건 그런 단정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판단이에요. 근데 사실은 그것도 하지 말래요. (웃음)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 되는 거 같아요. 계속 이렇게 화두의 화두를 열고 쫓아가다 보면 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거죠.”

생활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일상에서 언제나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그는 자신에 대한 인식 또한 명확하다. “대중들이 제게 원하는 이미지라는 게 있죠. 분명 제가 입고자 하는 옷과 어울리는 옷은 다른데 그걸 깨기 위했던 게 같은 작품이었구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제게 맞는 옷, 어울리는 옷을 다시 돌아보게 됐죠. 그런 시간 속에서 자신의 장점을 명확히 알았을 때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니까요. 스타로서의 자각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가고자 하는 첫 번째 단계의 시작점이죠.”

에서 정우성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사람이 보여주는 한 단계 발전된 맵시를 뽐낸다. 그래서 오우삼 감독이 만드는 무협액션에서 정우성의 기여도는 특별하다. 오래 전부터 러브콜을 보내왔던 감독이 이후에도 어떤 프로젝트이건 간에 자신이 관여하는 영화에는 무조건 참여시키고 싶다고 밝힐 만큼. 활극만이 넘쳐날 것 같은 영화에 소소한 웃음과 사랑의 온기를 더하는 것도 그의 몫이고, 생략과 암시로 진행되는 지앙과 정징(양자경)의 인연에 절절한 멜로의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도 그의 재능이다. 다음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감탄을 내지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피사체이면서도 정진을 멈추지 않는 정우성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이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1. (A Better Tomorrow)
1986년 | 오우삼
“중학교 3학년 때 본 것 같은데 물론 흉내도 많이 냈고, 그 감수성의 영향은 엄청났죠. 남자들의 의리하며 도시가 갖고 있는 외로움까지. 모든 캐릭터들이 다 주인공이었지만 도시도 주인공이었던 것 같아요. 주윤발이 세차장에서 밥 먹는 모습도 기억에 남고, 주윤발이 건물 옥상에서 구타를 당하는데 코피가 터지는 장면은 충격이었죠. 코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어떻게 찍었지, 저건 진짠데 하면서 감탄했어요. 요새도 영화 찍을 때 코피는 그냥 찍 흐르고 마는데 말이죠. (웃음)”

은 단순히 인기 있었던 영화라기보다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 자체다. 바바리와 쌍권총, 성냥개비 등 몇 개의 소품을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긴 영화는 최근 로 한국 감독과 배우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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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emories Of Murder)
2003년 | 봉준호
“아직까지 아무도 을 추천 안 했다고요? 저는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예요. 심각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영화인데도 그걸 해학으로 풀어서 마당놀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만듦새는 세련됐죠. 촬영이나 미술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의 밸런스가 참 좋았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치밀함은 드라마와 유머, 때깔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수작을 만들어냈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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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eppermint Candy)
1999년 | 이창동
“에서는 시대가 갖고 있는 억울함이 인간 군상을 통해서 그대로 전달 됐어요. 굉장히 강렬하게. 도 그렇고 도 그렇고 이창동 감독님 영화를 참 좋아해요. 언젠가 감독님을 우연히 뵀을 때 “감독님 작품 좋아하는데 아쉬운 게 저라는 배우는 감독님 작품과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감독님께서는 “왜요? 어울릴 수 있는데. 어울릴 텐데” 하시면서 오히려 부정하시더라구요. 근데 그래놓고선 한 번도 불러주진 않으시고. (웃음)”

반짝반짝 빛나던 영호(설경구)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사랑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에도 행복했던 그는 어째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을까? 아무리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해봐도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더없이 안타깝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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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e Getaway)
1972년 | 샘 페킨파
“스티브 맥퀸의 도 좋아하지만 가 제가 하고 싶은 형태의 영화예요. 액션멜로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또다시 리메이크를 한다면 “제가 할게요”하고 달려가고 싶은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이 놓여있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남자를 위해 여자는 자기 몸을 가볍게 던져버리고, 남자는 거기에 또 분노해서 여자를 때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잘 살린 것 같아요.”

은행털이범 부부는 경찰에게 쫓기고 동료의 배신으로 위협받는 동시에 서로의 사랑까지 의심하게 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이 영화로 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우는 실제 부부가 되었고, 리메이크된 94년 작에서도 실제 부부인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가 주연을 맡았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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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Plein Soleil)
1960년 | 르네 클레망
“남자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죠. 의상이나 까무잡잡한 얼굴, 여리지만 여심을 녹일 것 같은 몸까지 에서 알랭 드롱은 모든 것이 정말 멋졌어요. 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차라리 주드 로가 맷 데이먼이 했던 역할을 하고 주드 로 역할을 좀 더 느끼한 누군가가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웃음) 아무래도 그 때 주드 로는 패셔니스타 같은 느낌이 강했으니까요.”

는 지중해의 햇빛과 한 남자의 욕망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리플리(알랭 드롱)는 분명 선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완전범죄가 무너지는 순간은 허망하고 또 애처롭다. 모든 것을 원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하게 되는 리플리의 마지막이 오래도록 남는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정우성│감탄을 자아내게 한 영화들
“계속 그런 질문을 받아요. 할리우드는 언제 진출할 거예요? 같은. 대중들 역시 제가 큰 시장에서 활동하기를 바라는 것 같구요. 그렇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어떤 행로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그런 바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왕 할리우드에 가는 거면 좀 더 크게, 오랫동안 제 영역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거든요. 물론 할리우드는 거대한 시장이고 좋은 기술력이 있죠. 그 안에서 연기하는 건 좋은 기회지만 할리우드에 가는 것만이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훌륭한 배우들이 할리우드로 건너갔지만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 캐릭터로 주저앉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나 정우성은 그저 할리우드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당장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쉬이 지쳐버리거나 주변의 기대에 압사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긴 다리만큼이나 긴 호흡으로 계속 걸어갈 그라면 최종 목적이 할리우드가 아닌 지구 정복이라고 해도 기꺼이 응원하고 싶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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