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있던 날 산 E는 공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그가 떠올린 가사들을 적는 공책이었다. 다른 래퍼들도 이런 공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 E에게 가사는 또는 랩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로 랩을 쓰기 시작했고, 다시 한국어로 랩을 쓰게 된 그는 랩 하나로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선보인 노래들은 힙합 리스너들에게 화제로 떠올랐고, 그의 노래 ‘Rap genius’는 2010년 한국 대중음악상 힙합 싱글상을 받았다. 그리고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는 그의 음악을 듣고 이례적으로 연습생 과정 없이,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한 음악으로 데뷔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힙합 신의 화제와 기대 속에 나온 첫 메이저 앨범 < Everybody ready >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의도적으로 촌스러운 느낌을 노린 듯한 콘셉트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는 코믹한 랩을 쏟아낸다. 이런 선택의 이유는 뭘까. 산 E가 빠르게 말 하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가요 프로그램 출연은 어땠나.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랩으로 무대를 채우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
산 E : 익숙해질 만하니까 활동이 끝났다. (웃음) 내가 무슨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동작을 해도 숙련 된 게 아니어서 힘들었다. 진영이 형도 “너는 래퍼니까 랩을 죽이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랩만으로 무대를 꽉 채우는 게 어려웠다. 고민이 많았다.

“여지껏 한국에 없던 스타일의 래퍼가 되고 싶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얼마 전 MBC 무대는 멋있더라. ‘빠르게 말하면 돼’ 부분에서 임팩트 있게 무대에서 치고 나가는 느낌이었다.
산 E : 그러니까 나아질 만하니까. (웃음) 처음엔 당황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불 들어온 카메라 말고 딴 데 보면서 한 적도 있다. (웃음) 그리고 ‘빠르게 말하면 돼’에서 컷이 끊기고 다른 카메라로 넘어가면 그 때 다른 카메라를 보면 되는데, ‘빠르…’ 쯤에서 끊어버리니까 이상해지고. 그렇다고 그걸 날 위해서 맞춰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이런 저런 노력을 했는데 익숙해질 만하니까. (웃음)

대중도 당신이 익숙해질 만하니까 활동 안 한다고 할 것 같다. (웃음) ‘맛 좋은 산’은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곡 아닌가. 캐릭터는 웃겨 보이는데 가요계를 비판하고, JYP 소속인데 소속사의 어떤 부분을 비판하기도 하고.
산 E : 그러니까! 인터넷 보면 “산 E 팀킬이네?”이러고 “왜 박진영 까냐” 이러고. (웃음) 그런데 막상 진영이 형이 들었을 때는 재밌다고 했다. 기분 나쁘라고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JYP에 있으면서 이런 가사를 쓰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한 재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중이 볼 때는 역시 이상할 수도 있다. (웃음) 아주 공격적인 것도 아니고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고. 요즘 가요계에서는 포지셔닝이 애매한 걸 수도 있다.
산 E : 걱정은 많았다. 날 지지하는 마니아들이 “산 E가 나오니까 개그맨 됐네?”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봤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너무 코믹 쪽으로 나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계속 활동을 하다 보니까 인터넷에 “엄마가 쟤 랩 재밌다고 하더라”는 평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게 좀 보이는구나 싶었다. ‘맛 좋은 산’은 내가 나 잘났다고 하는 건데,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재밌어 하는 선에서 받아들이도록 노력했다.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랩이란 무엇인가.
산 E : 여지껏 한국에 없던 스타일의 래퍼가 되고 싶다. 얘 정말 특이하다, 유니크하다는 말을 듣는 래퍼. 그게 좋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새롭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데뷔 앨범을 낼 때 회사에서는 대중적인 음악을 원했고, 나 역시 내 스타일의 음악을 하려면 대중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동의했다. 그래서 내 스타일과 대중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를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건 안 벌건 랩에 자신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사운드에 이상한 랩 넣어서 이거 들으라고 했으면 나도 창피했겠지만, 생각 많이 해서 만들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인트로 같았다. 산 E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고.
산 E : 이번에는 “제 이름은 산 E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거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여줄 것들이 있고. 앨범에 실린 6곡으로 끝날 게 아니니까.

“랩 할 때는 무슨 소린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그런데 타이틀 곡 ‘맛 좋은 산’은 박진영의 노래를 샘플링했다. JYP 소속이면서도 직접 프로듀싱하는 래퍼라는 점이 부각됐는데, 박진영의 노래를 샘플링하면 사람들이 결국 박진영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산 E :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진영이 형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 곡의 편곡을 맡은 슈퍼 창따이 형이 처음에 아이디어를 냈고, 힙합이라는 음악 자체가 샘플이라는 걸 빼놓을 수는 없으니까 그 부분이 재밌게 맞아 떨어져서 선택했다.

곡을 만드는데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일단 대중적으로 친숙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거기서 당신의 랩 실력도 보여줘야 하니까.
산 E : 생각이 많았다. 언더그라운드 시절보다 오히려 고민했다. 심의 문제도 있고, ‘맛 좋은 산’의 2절에서 내가 하는 가요계 비판은 잘못 풀면 욕먹을 이야기니까. 그런데 난 그렇게 비판한다는 느낌보다는 유쾌하고 가볍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랩의 모든 부분에 다양한 재미를 넣으려고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산이 소개하기’에서 ‘2010 아이돌 세상에 아이고 세상에 잘난 애들 쎄고 쎄쎄쎄’나 ‘맛 좋은 산’에서 ‘대세는 여자 그룹 아이돌, 그런데 난 여자, 그룹, 아이돌 셋 다 아니고’ 이런 부분은 내용과 랩의 기술적인 부분을 어떻게 같이 가져가느냐로 고민했을 것 같다. 가사 전체에 인용이나 패러디도 많고.
산 E : 어떤 분들은 ‘내 랩을 들어봐 넌 쿨해지고’ 이 부분을 허경영 표절이라고 하던데. (웃음) 그런 재미를 최대한 많이 주려고 했다. ‘엄마 엄마 이거 사 줘 나’에서 ‘줘 나’를 일부러 붙여 읽어서 욕 비슷하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사를 읽으면 계속 그런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미국에서 살다왔지만 오히려 한국의 발음이나 단어가 가진 재미를 최대한 이용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 E : 그게 랩이라고 생각한다. 랩은 전달이 중요하다. 화려한 플로우를 만들어 놔도 전달이 안 되면 안 된다. 가사 전달과 플로우가 충돌하면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쪽을 선택한다. 가사를 가사집 보고 알 수 있는 랩이라면 좋은 랩이 아니다. 랩 할 때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듣겠다가 후렴구 멜로디 나올 때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건 랩의 재미가 없는 음악이다. 사람들 귀에 팍팍 꽂히는 랩을 하고 싶다.

이번 앨범에는 ‘맛 좋은 산’을 비롯해서 JYP의 다른 가수들이 피처링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당신의 랩을 전달하기엔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피처링 때문에 랩이 끊기는 부분을 계산하기도 해야 하고.
산 E : 그런 걸 계산 많이 했다. 일단 랩을 하면서 여기에 보컬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보컬을 넣고 조율하면서 많이 맞췄다. 그리고 원래 팝적인 걸 좋아한다. 래퍼와 R&B 뮤지션이 협업한 곡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회사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회사나 진영이 형이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때도 있고. 진영이 형은 이 계통에서 노하우가 많고,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사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걸 전적으로 믿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곡들도 많이 신경을 썼지만 ‘맛 좋은 산’만큼 신경 쓰기는 어려워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

“유교문화와 힙합이 섞이면서 한국의 힙합문화가 독특해졌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산 E “쟨 뭐냐? 나도 내가 궁금하다”
당신이나 회사는 길게 본다고 하지만, 한국은 굉장히 반응이 즉각적이다. 특히 언더그라운드에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 메이저에서 ‘맛 좋은 산’ 같은 곡으로 데뷔한 것에 대해 많은 반응이 있었다.
산 E : 힙합을 너무 낮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예술로만 보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내가 에 나오니까 “산 E 나왔네? 음악 좀 하나 싶더니 저렇게 나가는 구나”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많더라. 그런데 힙합은 대중적인 음악이고, 그 안에서 음악을 제대로 한다면 그 외의 것들은 괜찮지 않을까. 흑인 음악이라고 해서 내가 권총이라도 들고 나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웃음) 한국에서 그게 먹히지도 않는 것 같고, 미국에서도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미국에서 힙합은 대중적인 거라서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소통하면 되는데, 한국은 아티스트와 대중과 마니아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 힙합 문화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나.
산 E : 우리나라 리스너들은 지금 유행하는 음악 보다는 랩 위주의 클래식한 힙합을 좋아한다. 그리고 항상 헷갈리는 게, 힙합은 디스가 문화의 하나인데 한국은 유교 문화가 있다. 그래서 내가 선배 뮤지션을 디스하면 “쟤 선배를 까네?” 이런 반응이 온다. 그러면서도 힙합에서는 당연히 디스를 해야 한다고 그러고. 원래 힙합문화와 한국 문화가 섞이니까 어떤 부분은 이젠 미국에서도 없는 것들을 쫓기도 하고, 반대로 힙합문화 안에서는 당연한 건데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미국에 중학교 때 가서 자신을 표현하려고 랩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랩을 했나.
산 E : 흑인은 자신을 과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장신구도 크고 빛나는 걸 하고. 아니면 분노를 표현한다. 나도 그랬다. 이민 가서 부모님이 한국 음악을 못 듣게 하셨다. 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하니까. 그 때 힙합음악을 접했고, 나도 내 얘기를 랩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인종 차별을 겪었던 게 사실이니까. 사실 처음에 영어로 랩을 쓸 때는 엄청 못 썼다. (웃음)

그래서 당신의 음악은 래퍼가 된 리스너의 힙합음악 같기도 하다. 미국 힙합 음악과 문화에 푹 빠져서 힙합을 자연스럽게 알고, 그러다보니까 인용이나 비틀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산 E : 미국에서 음악을 들었던 방식이 그런 거니까 관계가 많다. 흑인 친구들이 많았고, 걔네하고 놀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게 랩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줬다. 그들과 함께 놀면서 여러 음악을 알게 되고, 뮤지션들의 스타일을 섭렵했으니까. 그래서 요즘 여러 스타일을 소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경험 때문에 오히려 한국어의 발음이나 단어 선택에 굉장히 노력하는 것 아닌가.
산 E : 그런 것도 있다. 처음 한국어로 썼을 때는 문법이 틀리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에미넴 자서전에서 읽었는데, 래퍼들은 항상 신선한 단어를 모아놓는다고 한다. 나도 그래서 늘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전철을 이용하는 당신이 으뜸 시민”이라고 적혀있으면 ‘으뜸’을 어떻게 랩에 녹일까 생각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놓는다. 그리고 사물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

대중들도 당신을 좋든 싫든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웃음) 지금 생각하는 당신의 스타일은 뭔가. 리스너나 대중이나 “쟨 뭐냐?”이러는 것 같다.
산 E : 맞다. “쟨 뭐냐?” 그게 지금 나에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래야 다음에 또 뭔가 보여줄 수 있으니까. 나도 내가 궁금하다,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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