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드라마에서 태릉선수촌은 청춘의 패기와 열정으로 채워진 곳이었다. 꿈을 위해서 잠깐의 시련도, 사랑의 상처도 씩씩하게 극복해나가는 에너지로 활기찬 곳. 그래서 태릉선수촌은 청춘을 위해 외따로 마련된 자리 같았다. 그러나 SBS 에서 태릉선수촌은 유예의 공간이 아니다. 의무실 풍경이 추가되면서 드라마에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일상의 고단함이 얹혔다. 연우(김소연)와 도욱(엄태웅), 지헌(정겨운), 희영(차예련)은 모든 만만치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메디컬 드라마’라는 표방답게 이들의 상처를 조금씩 아물게 하고 있는 를 김선영, 조지영 TV평론가가 진단했다. /편집자주

의학 드라마와 스포츠 드라마는 의외로 공통분모가 있다. 생과 사, 승과 패라는 우리 삶의 가장 드라마틱한 갈림길이 갈등의 핵심이라는 점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한 긍정을 향해가는 휴먼 드라마와 흔히 만난다는 점이 그러하다. 스포츠메디컬 드라마라는 장르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 같은 점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이 장르를 표방하는 SBS 는 좀 이상하다. 생과 사의 엇갈림이나 승자와 패자의 다툼이라는 극적인 갈등의 길을 편리하게 따라가며 화려한 승리와 치유에 집중하기보다, 소소한 일상에 밀착된 담담한 목소리로 패배와 상처에 주목하는 드라마기 때문이다. 는 말하자면 도욱(엄태웅)의 전문분야인 재활이 상징하듯이, 그 상처를 딛고 인생의 두 번째 꿈을 꾸는 이들의 회복기다.

태릉선수촌, 재활과 회복의 공간
<닥터 챔프> vs <닥터 챔프>│상처 받은 삶을 위한 처방전
vs <닥터 챔프>│상처 받은 삶을 위한 처방전" />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인생의 첫 번째 꿈에 좌절을 겪은 이들이다. 도욱은 스피드 스케이팅 유망주였으나 척추 손상 사고로 선수 생명이 끝났으며, 연우(김소연)는 교수 자리를 눈앞에 둔 유능한 의사였으나 지도교수의 의료사고에 휘말리며 해임된다. 유도 기대주 지헌(정겨운)은 형의 죽음으로 한때 운동을 포기한 적이 있고, 희영(차예련)은 첫사랑이었던 도욱을 버렸으나 다른 남자와의 결혼 생활에 실패한다. 태릉선수촌은 이를테면 그들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의 두 번째 기회다. 도욱은 의무실장이 되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치료하고, 연우는 마지못해 들어온 이곳에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선수들을 이해하며 진정한 의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뭘 한 번도 제대로 끝까지 해본 적이 없”던 지헌 역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다시 한 번 꿈을 꾸며, 희영은 이혼녀라는 꼬리표에 상관없이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다. 실패했던 이들이 결국 그 아픔을 극복하고 꿈을 회복해나가는 과정, 그것이 의 재활의 서사다.

드라마 안에서 태릉선수촌은 국가대표라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수한 장소로 묘사된다기보다, 좌절한 인물들의 상처를 담담히 끌어안는 일상적 삶의 공간에 가깝게 그려지며 넒은 의미로서 재활 서사의 무대가 된다. 예컨대 극중 의무실 풍경은 다른 의학 드라마 속 병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선수촌이라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장르 특유의 클리셰인 피범벅 응급 치료나 긴박한 심폐 소생술 등이 벌어지는 역동적 공간이 아니라 상담소나 심리치료소의 느낌이 더 강하다. 4회의 간경변 복싱 선수나 5회의 고은미(강기회) 선수 에피소드처럼 선수들의 개인사적 상처가 함께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문제 해결은 대개 그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증후가 그들 삶과 심리의 반영이듯이 는 치유 역시 삶의 의미로 확장시킨다.

관계의 회복으로 치유되는 것
이 드라마 재활의 서사를 완성하는 최종 관문은 관계의 복원이다. 는 인물들이 기존의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옛 연인 도욱과 희영이 서로에 대한 원망과 상처의 과거를 잊고 이해하는 이야기이자, 지헌이 과거의 친구이던 상봉(정석원)과 형수인 석란(송지은)과 화해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저 혼자 똑똑해 “남의 도움 받는 건 질색이던” 연우가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8회에 마침내 도욱의 반어법을 이해하고 지헌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말하는 연우는, 첫 회에서 지헌의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도 할 줄 모르던 모습에 비해 한 뼘쯤은 성장한 것이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유독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과 고맙다는 감사의 말, 그리고 도와달라는 부탁의 말이 자주 등장하는 는 결국 우리 삶의 상처에 대한 진정한 처방전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리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던 도욱이 연우에게 청하듯 우리에게 공감의 손을 내민다.
글 김선영

아무리 경쟁을 통해 최고를 선발하는 태릉선수촌이지만 SBS 의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조금 심할 정도의 불운을 자랑한다. 그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모든 것을 잃거나, 배신당한다. 능력도 의지도 뛰어난 의사인 연우(김소연)는 하루 아침에 일하던 병원에서 쫓겨났고, 선수촌 의무실장 도욱(엄태웅)은 불의의 사고로 연인과 꿈을 모두 잃어버리고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아야 한다. 오매불망 유도에 살고 죽는 지헌(정겨운)은 어렵게 재입소한 태릉선수촌에서 부상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도욱의 과거 연인이었던 수영코치 희영(차예련)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도욱을 버리고 결혼했다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다. 그렇게 꿈꾸던 삶에서, 한참 멀어졌거나 멀어진 그들이 태릉선수촌에 모였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기엔 너무 바쁜 일상
<닥터 챔프> vs <닥터 챔프>│상처 받은 삶을 위한 처방전
vs <닥터 챔프>│상처 받은 삶을 위한 처방전" />연우가 서교수(조민기)의 의료 과실을 직접 목격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한국대학병원의 펠로우가 되었을 것이다. 스포츠에 애정도 상식도 없는 그녀가 태릉선수촌의 의무실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연우가 현재까지 태릉선수촌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가 아니면 그녀를 받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욱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희영과의 사랑이 그렇게 잔인하게 끝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빛나던 꿈을 스러지게 만들고, 삶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케 만드는,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불시에 찾아온다. 지헌이 입은 부상처럼. 어떤 잘못도, 악행도 저지르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닥친 불행은 그렇게 삶을 난도질한다. 그리고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칠까?’ 하는.

그러나 에서 지독한 불운 혹은 불행에 대한 자기 연민의 시간은 길지 않다. 수렁에 빠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이다. 사악한 서교수가 한국의료원에서 해임되었다고 해서 연우의 평판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번민의 시간은 우선,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실존적 문제로 채워진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다시 구하고, 그렇게 구해진 일터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연우의 일상은 눈물겹다. 도욱 역시 선수촌의 관행적 시스템에 맞서 집요하게 싸우는 중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선수촌의 선수들 역시, 불시에 닥치는 부상과 슬럼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금지약물 복용과도 같은 편법과 반칙에 쉽게 노출된다. 그러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직에 속하기도 쉽지 않지만 언제나 최대한의 성과를 목표로 하는 조직의 특성은 때때로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를 건드리기도 하고, 조직원 다수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는 개인의 능력이나 역량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연우가 한국의료원에서 버려질 때의 신속한 프로세스를 보라. 조직에서 배제되지 않으면서도 직업인의 윤리를 깐깐하게 지켜나가는 것은 어떤 직업세계에서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꿈꾸는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
는 신중하다. 불운은 한 순간에 극복할 수 없다라는, 담담하지만 냉정한 현실인식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 재활이 필요한 것은 부상당한 운동선수만이 아니다. 인대가 손상되고, 뼈가 다친 사람에게도 재활이 중요하지만, 마음의 상처에도 그만큼의 재활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연우는 그래서 의 핵심 인물이다. 그녀는 지헌과 도욱의 재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의 재활을 도우면서, 진짜 의료인이 되어가는 연우의 모습 그 자체가 성장드라마의 외연에도 충실하다. 그러니까 는 어른들의 성장드라마다. 좌절이 거듭되어도 하루하루 뚜벅뚜벅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고단한 삶에 대해,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그 삶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연민 따위에 쉽게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물들이 여기 있다. 그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꿈꾸기 위해, 혹은 꿈이 사라진 후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알기에 애쓴다. 참으로, 의젓한 청춘이다.
글 조지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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