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영화 은 어느 소심한 남자의 짝사랑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어느 카페의 종업원. 그는 그녀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떤 멘트로 주문을 받는지 얼마나 상냥한 미소를 짓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느끼지만 정작 그녀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기 위해 꼭 자세한 프로필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감을 느낀 후부터는 그 사람의 세세한 디테일을 알고 싶어지는 법이다. 영화 속 남자가 그녀, 선아를 보며 그러하듯. 그리고 우리가 선아를 연기한 배우 류현경을 보며 그러하듯.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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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고요?” 1996년, SBS 에서 김혜수의 아역을 맡은 이후,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은 것에 비해 정작 배우 본인의 프로필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는 말에 류현경은 장난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동의했다. 작품에서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 에서는 남자도 쏘기 어렵다는 애기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왈가닥으로, 에서는 춘향이와 동등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당찬 향단이로, 혹은 SBS 의 민폐 캐릭터 공육공으로, 그녀는 설명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할만한 인상들을 남겨왔다. 단지 그것들이 한 명의 배우에게로 소급해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내 삶을 잘 살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많으면 작품 속 사람의 삶도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게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데 또 다른 분들은 감독님과 대중들에게 저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그것도 맞는 말 같아요.”

그냥, 이라는 말은 애드벌룬과 같아서 그 뒤에 붙는 말들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내 삶이라는 단어에는 14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자로서의 경력과 몇몇 작품을 직접 만든 연출자로서의 능력이 단단한 무게로 매달려 있다. 특히 “중학교 때 故 곽지균 감독님이 을 만들며 영화 현장에서 자신의 행복과 슬픔을 담아내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아” 시작하게 된 연출은 “이재은 씨가 서태지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걸 보고, 혹시라도 서태지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연기를 시작한 소녀가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녀는 오랜 시간 영화라는 경계 안에서만 꿈을 키워온 이유에 대해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하하하하”라고 유쾌하게 털어놓는 가벼운 20대 청춘의 태도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진지한 표정의 묵직함 사이, 그 어느 즈음에 자신의 균형을 잡고 있다.

그저 묵묵하게 삶을 살아가는 배우
[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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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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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푸트코드에서 일하는 친구를 도와 직접 관객들에게 핫도그를 팔았지만 다들 공연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연관 검색어로 ‘류현경 굴욕’이 뜰 것 같은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너무 재밌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털털함을 무기로 한 이미지 메이킹 같은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카메라가 돌아가는 영화 현장은 “어려서부터 배운 게 이것밖에 없고 앞으로 평생을 걸어야 할” 직장이자 삶의 터지, 카메라 바깥에서 스타로서 으스대기 위한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PIFF에서 만나 숙소 근처에서 사진을 찍느라 배경과 옷이 맞지 않아도, 장소에 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옷을 갈아입고 올까요?”라고 물어보는 그녀에게서 꾸밈없는 소탈함을 느끼기란 어렵지 않다. 요컨대 그녀는 알게 될수록 작품 속 이미지가 남긴 호감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타입이다. 물론 잘 알지 못해도 좋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사람의 더 좋은 면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드물다. 앞으로 우리가 류현경이라는 배우와 즐길 연애가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PIFF+10] 류현경│연애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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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부산=위근우 기자
사진. 부산=채기원 기자
편집. 부산=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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