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가 이겼다.” 타블로의 학력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한 왓비컴즈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하다. 왓비컴즈는 학력 증명을 명분으로 그에게 인신공격을 했고, 그와 가족들의 사생활을 파헤쳤다. 그 모든 걸 저지르고, 타블로가 < MBC 스페셜 >을 통해 학력을 증명하고 나서야 그는 타블로의 ‘승리’를 인정했다.

타블로의 학력논란이 끔찍한 건 결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붙여서만은 아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데 있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켜주지 않은 태도 그 자체다. 학력 증명을 위해 성적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할 수는 있다. 미국 학위 검증 기관인 NSC의 검증을 받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졸업한 ‘진짜’ 다니엘 선웅 리가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권이나 출입국 기록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깟’ 여권이나 출입국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별 것 아닌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 당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일이다. 의혹을 증명하기 위해 사생활을 공개하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치욕이 될 수도 있다. 학력의혹으로 시작된 일이 이중국적, 병역면제, 가족들의 사생활 문제로 번졌다면 더욱 그렇다.

사회적 죽음은 관심 없는 게이머들의 세상
[강명석의 100퍼센트] 타블로, 아바타가 아닌 인간이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타블로, 아바타가 아닌 인간이다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타블로가 그랬던 것처럼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신분을 밝히고 타블로에 대해 수사 의뢰를 한 건 타블로가 그들을 고소한 후다. 또한 그들은 타블로가 제시한 증거들을 의심했을 뿐, 어떤 새로운 증거도 스스로 찾지 않았다. 진실을 요구하면서도 그것을 밝히는데 필요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대신 의혹을 받는 당사자에게 ‘그깟’ 사생활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왓비컴즈가 “타블로가 이겼다”고 말한 건 이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게임하듯 타블로의 사생활을 파헤쳤고, 불리해지자 ‘GG’를 치고 달아났다. ‘진실’을 밝히는 동안 한 사람의 사생활이, 가족이,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은 그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에 ‘데스노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 신분을 감춘 채, 방에서 죽여야 할 사람의 이름을 끼적거린다. 이름이 적힌 자는 결백을 증명할 때까지 수많은 모욕을 당하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사회적 죽음을 당한다.

인격을 가진 인간임을 증명할 증거는 어디 있는가

그 점에서 < MBC 스페셜 >은 다소 아쉬웠다. < MBC 스페셜 >은 타블로의 학력을 증명했고, 어떤 증거를 보여줘도 믿지 않는 네티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냈다. 어떤 이는 타블로가 기득권자의 옹호를 받고 있다고 믿고, 어떤 이는 ‘힙합이나’ 하던 그가 스탠퍼드 대학을 나온 걸 믿지 않는다. < MBC 스페셜 >을 통해 우리 사회가 때론 지독한 편견과 광기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 MBC 스페셜 >은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부분은 타블로와 전문가들의 몇 마디 멘트로만 정리됐다.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했다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사생활을 폭로하는 건 또 다른 죄다.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이 일단락 돼 가는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생활이 ‘진실’이나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까발려지고, 어떤 언론들은 네티즌을 방패 삼아 당사자에게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한다. 그리고, 어느새 이 ‘사냥’의 범위는 연예인에서 지하철에서 소란을 일으킨 학생이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네티즌으로 넓어지고 있다. 왓비컴즈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건 눈 뜨고 볼 수 없는 블랙 코미디다. 이는 인격에 대한 존중 때문에 사생활 폭로를 멈춘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신상 털기’ 끝에 그 칼날이 자신에게 겨누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것을 포기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격을 가진 인간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 있는가.

타블로는 < MBC 스페셜 >에서 자신이 학력논란 이후 가장 먼저 지켜야 했던 건 가족이라고 말했다. 어떤 네티즌들은 그에게 무슨 의혹이 제기되든 빨리 답하라고 채근했다. 타블로가 의혹에 대답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게임 아바타라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은 그 사실 여부와 별개로 자신과 가족의 마음부터 돌봐야 한다. 진실은 방구석에 앉아 키보드만 두들긴다고 밝혀지지 않는다. 키보드만으로 세상을 뜻대로 하고 싶다면 이나 해라. 그것도 꽤나 어렵긴 하겠지만, 최소한 실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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