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드디어 양병준 전무(김상중)께서 마음을 돌리셨더군요. 결국엔 그리 되리라 여기고는 있었지만 막상 두 분이 결혼을 하시게 됐다니까 어째 심사가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불란지 펜션 식구들처럼 무턱대고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보낼 수는 없더라는 얘기에요. 물론 조아라(장미희) 대표님의 아버님이신 회장님께 재산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어이없는 의심을 받았으니 꼬장꼬장한 성품의 병준 씨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겠죠. 가뜩이나 결벽증 있는 양반이니 구정물이라도 뒤집어쓴 양 울화가 치밀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점 백번 이해한다고 쳐도 아라 씨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혼인 파토 선언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니었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감당해야 할 상실감에 대해 바늘 끝만큼이라도 고민을 해봤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고요. 하기야 어머니에다 형님 내외에다 동생, 조카들까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다 터놓고 사는 병준 씨 입장에서야 스산하기 짝이 없는 아라 씨의 삶이 짐작이나 될 리 있나요. 그러나 사정 몰라 저러지 싶다가도 그처럼 난데없이 뒤통수를 쳐놓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수면유도제 끊어라, 술 마시지 마라, 불쑥불쑥 잔소리만 해대는 걸 보고 있자니 어찌나 얄밉던 지요.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죠?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가 수년간 괜히 불면증에 시달려 왔으며 괜히 약을 먹고 잠을 청해 왔겠어요? 겉으로는 재산이며 학벌이며 미모며, 남부러울 것 없어 뵈지만 보아하니 마음 기댈 곳 없는 무원고립 신세시던 걸요. 게다가 가뜩이나 외로운 마당에 아버님까지 와병 중이시니 오죽 쓸쓸하고 헛헛하셨겠습니까. 돈이 많으면 걱정도 그에 비례한다고 미래에 대한 염려 또한 많았을 거고요. 그러던 차, 내 남자다 싶은 사람을 찾아내고 또 그 남자의 마음을 어렵사리 열어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으니 얼마나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셨겠습니까. 그런데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이거야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사다리 치운 꼴이지 뭐겠어요. 병준 씨와는 달리 긍정적이고 속 넓은 아라 씨는 백일 동안은 화를 내야 되겠다고 했다가 그 말이 무색하게 키스 한 번으로 마음을 풀고 말았지만 보는 저는 찜찜하더군요. 진심 어린 사과 없이 대충 스킨십으로 해결을 하려 드는 건 대체 뭐냐고요.

아마 아라 씨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거예요. 헤어져 지내는 동안 아라 씨가 내렸다는 병준 씨에 대한 재해석, 그거 꽤 맞는 얘기라서 말이죠.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그 옛날 그 사람에 대한 의리도 자기애였으리라는 거,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존심을 접고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 역시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은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눈을 안 감으시겠다고 협박을 하시는 바람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지만 그건 괜한 소리죠.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쪽이 훨씬 큰 비중이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자신과 결혼 말까지 나온 상대가 한없이 무너져 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아라 씨도 한 없이 너그러운 사람을 만나는 편이 좋았을 텐데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저는 사실 외로운 아라 씨가 자신을 마냥 받아주는, 뭘 하든 그저 예뻐만 해주는 너그러운 사람과 만나길 바랐습니다. 이를테면 동서 되실 민재(김해숙) 여사처럼 말이에요. 가만 보면 민재 여사의 첫 남편인 지혜 친아버지(한진희)와 병준 씨는 닮은 구석이 참 많더군요. 민재 여사와 헤어진 후 어쩔 수 없이 가족 곁으로 돌아갔지만 평생을 물에 뜬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지냈다는 지혜 친아버지나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첫사랑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온 병준 씨나 꼿꼿한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요? 폐가 될까봐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살았던 대쪽 같은 자존심이며 결벽증도 비슷하고요. 아마 아라 씨와 민재 여사의 남자 취향은 같지 싶어요. 죽음을 목전에 둔 지혜 친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민재 여사의 얼굴엔 여전한 사랑이 엿보이더군요. 일생을 증오하며 살아왔지만 그 미움 밑바닥엔 애틋한 사랑이 감춰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민재 여사는 순전히 딸 지혜를 위해 첫 남편과는 전혀 다른 타입인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 병태(김영철) 씨를 선택했던 걸 거예요. 밤마다 족욕을 해주고 어깨를 주물러 주고 늘 무조건 민재 여사의 편이 되어주는 병태 씨를 보면 아라 씨도 저런 한 없이 너그러운 사람을 만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형님 내외를 보고 산 세월이 있으니 병준 씨도 마냥 이기적이지는 않겠죠. 그래도 턱하니 믿지는 말아요. 자기 자신보다 아라 씨를 더 사랑할 사람은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시죠?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아라 씨, 무조건 병준 씨만 믿지 마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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