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 : 스타의 동생이었다. 무명배우였다. 매력적인 악역이었다. 포스 가득한 남자였다. 장군님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을 돌아 엄태웅으로 돌아왔다. 평범했던 남자. 하지만 이제는 비범하게 평범한 남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지난 몇 년간 살아온 이야기.
엄태웅
엄태웅
엄정화 : 엄태웅의 누나. 또는 가수연기자 양쪽에서 인정받은 최고의 엔터테이너. 엄태웅이 태어난 뒤 세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어렵게 살림을 꾸려야 했다. 당시 엄태웅과 인형놀이와 소꿉놀이를 하고, 쌀이 없어 수제비를 끓여먹던 엄정화는 연예인이 된 뒤 엄태웅을 뒷바라지 했다. 엄태웅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딱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다 졸업 후 밴드 보컬을 하던 친구가 성대결절에 걸려 대신 무대에 서면서 “박수 받는 직업”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일은 들어오지 않았고, 엄정화에게 하루에 오천 원을 받아 비디오 두 편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 방황하던 시절. 엄정화는 결국 그에게 “1년만 시간을 더 주겠다. 그 때까지 연기자의 길을 다지지 못하면 그만둬라”고 말했다. 그 때 비디오를 보던 동생에게 “또 빈둥거리냐”고 하던 누나는, 요즘은 그가 영화를 보면 “작품 구상하냐”는 말을 한다고.

황인뢰 : 엄태웅이 출연한 MBC 의 ‘십 년 후’, 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연출한 감독. 엄태웅은 영화 , 등 여러 작품의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오디션을 100번 이상 보고, 유명인을 기용하지 않는 콘셉트의 CF에 출연했고, “일을 하고 싶지만 못했던 때가 가장 힘들고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을 정도. ‘십 년 후’는 엄태웅이 이름을 알리기 전 제대로 된 배역을 연기한 작품으로, 십 년 전 사랑했던 여자와 재회하는 남자를 연기한다. 앉아서 얼굴과 몇 마디의 대사만으로 지난 시절의 추억을 연기하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은 이후 그가 보여줄 연기의 시작점이었다.

강우석 : 엄태웅이 출연한 영화 와 를 연출한 감독. 엄태웅은 에서 “안성기에게 현장을 즐기는 법을 배웠고, 설경구에게 연기와 맞닥뜨리는 법”을 배웠다고. 연기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격리된 채 훈련을 받아야 했던 를 계기로 연기에 전념한다. 오디션에서 그의 얼굴을 “밋밋하다”고 하던 사람들이 “여러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얼굴”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또한 에서 악역으로 보여준 냉정한 모습은 KBS , 등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기본적인 이미지가 됐다.

한채영 : KBS 의 상대역. 은 엄태웅, 재희 등 당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남자 배우들을 내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엄태웅은 작품의 원작 에서 악역이었던 변학도를 많은 걸 가졌지만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남자로 재해석해 관심을 모았다. 어느새 그에게는 2천 마리의 종이학에 ‘엄태웅 사랑해’를 적어 보내는 팬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후속작 제안이 이어졌다. 하지만 엄태웅은 “상류사회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변학도를 연기하기 힘들었고, 종이학을 보낸 여성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물은 너무 고맙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합격증도 보여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나는 스타였지만 자신은 참 평범하게 살던 남자가 스타가 됐다.

박찬홍 : KBS 과 의 감독. 제작 전 꿈에서 엄태웅이 보여 그를 만났고, “웬만한 배우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시켜만 주십시오. 저는 자신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모습”에 엄태웅이 마음에 들었다고. 은 MBC 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돼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치밀한 각본과 시청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 연출로 시청률이 상승, 수많은 마니아 팬을 만들어냈다. 특히 작품 초반에는 쌍둥이 형제인 하은과 신혁의 1인 2역을 연기하고, 중반부터는 “신혁으로 살지만 문득문득 하은이가 보이는” 실질적인 1인 3역을 연기한 엄태웅은 작품 전체의 팽팽한 긴장감을 그대로 짊어지면서 ‘엄포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평범하게 살던 남자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바꾼 뒤 겪는 삶에 대한 부담감을 늘 다소 긴장한 듯한 얼굴로 표현한 그의 얼굴은 전체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평범한 남자에서 어느 날 스타가 된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김규태 : KBS ‘제주도의 푸른 밤’을 연출한 감독. 엄태웅은 이 작품을 위해 김규태 감독과 한 달여를 함께 보냈고, MT만 세 번 갔다고. 그만큼 ‘제주도의 푸른 밤’은 엄태웅이 당시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진 것 없어 사랑하는 여자와도 헤어졌던 소심하고 자신감 없이 산 평범한 남자의 모습은 엄태웅이 바라본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고교 시절 전학 가서 사귄 친구들이 가난한 자신의 집을 보고 멀어진 것에 상처를 입기도 했고, 인기를 얻은 뒤에도 “배우가 내 직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자신이 얼마나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스스로 “지금도 그런 열등감이 드라마틱하게 어느 순간 해소될 것 같지 않”고, “연기자 엄태웅은 매력이 많을 것 같은데 인간 엄태웅은 매력이 별로 없다”고 할 정도. 하지만 그래서 엄태웅은 자신감 없이 사는 평범한 남자를 연기할 수 있었고, 그 남자가 한발 짝 나아가는 순간 ‘드라마틱’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동료 배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착하다”라고.

문소리 : 영화 과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후 엄태웅은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하지만 MBC 는 출연자의 부상으로 중단됐고, SBS 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한 처럼 평범한 남자의 일상을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연결시킬 수 있는 작품을 제외하면 그가 기존 드라마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은 넓지 않았다. 스스로 “트렌디 드라마보다 구질구질한 인생 얘기를 하는 드라마가 연기하기 편하다”고 했을 정도. 대신 영화가 그의 연기를 발견했다. 엄태웅은 에서 ‘엄포스’의 모습 대신 연상의 여성과 누나에게 얹혀사는 껄렁한 남자를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줬고, 에서는 냉정하고 다소 이기적인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연기했다. 두 작품에서 그는 작품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연기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김유신 : MBC 에서 연기한 캐릭터. 선한 마음과 진중한 성격을 가진 김유신의 캐릭터는 엄태웅의 이미지상 그가 TV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는 “캐릭터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이해를 해 나가는 게 힘들었”고, 미실과 비담 등이 다양한 감정 폭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늘 무게감 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줘야 했기에 감정 표현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작품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유신이 바위에 목검을 만 번씩 내려치는 노력으로 성장했듯, “나는 재능이 많지 않으니 노력밖에 없다”던 엄태웅은 “부단히 노력”해 김유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그는 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선, 명분, 대의 같은 단어들을 지키는 단단한 캐릭터로 남았다. “밑천이 다 드러나면 어쩌나 걱정”하며 연기하던 캐릭터가 어느새 대하사극의 무게감을 그대로 지탱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 참고로, 엄태웅은 목검을 바위에 내려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요령 없이” 진짜로 계속 내려치는 바람에 수없이 목검을 부러뜨렸다고.

이민정 :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엄태웅은 에서 옛 연인과 다른 남자가 잘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입장의 남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금은 찌질하고, 조금은 이기적인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주도의 푸른 밤’이 그런 남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줬다면, 에서는 자신의 일에 있어 철저하고, 사랑했던 여자 앞에서 능글맞은 모습을 보여주며 보다 선명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엄태웅이 “보기에는 치밀하지만 사실상 치밀하지 못한 헐렁헐렁한 사람”이라 연기하기 편했다는 의 캐릭터는 그의 원래 성격과 연기 스타일을 상업적인 작품에 용해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SBS 에서는 독선적이거나 카리스마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능글맞은 표정과 재치 있는 독설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는 악역과 형사와 장군을 하는 사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에 용해시키며 ‘포스’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만의 캐릭터로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배우가 성공하지는 못한다. 모든 노력이 보상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결국 그걸 해낼 때가 있다. 목검을 바위에 만 번씩 내려치는 노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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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과 KBS 에 출연한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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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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