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을 인터뷰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인터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인터뷰어의 말을 듣고, 거기서 새로운 화두를 끄집어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적과의 인터뷰는 질문과 답이 이어지기 보다는 한 세대에 영향력을 미친 인물과, 그 영향을 받고 자란 사람간의 대화처럼 이어졌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이적은 한 시대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할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창작에 대한 고민은 아이를 길러야 하는 아버지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고, 그 생활의 모습이 조금씩 음악에 베어 나온 듯 했다. 앨범 전체가 사랑 이야기로 채워지고, 곡들이 트렌디한 사운드 대신 록 밴드에 가까운 연주로 채워져 있음에도 이 앨범이 현재의 느낌을 품고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에는 그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수성이 있다. 그건 그의 바람대로 “오래갈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어덜트 컨템퍼러리’ 음악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곧 다가오는 40대에는 음악극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말 그대로 ‘어른’이었다.

“다른 뮤지션들과의 프로젝트 활동은 당분간 하지 않을 듯”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창작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게 되나. 음악대신 글이나 뮤지컬을 하거나, 아니면 트위터 같은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거나.
이적 : 음악을 트위터 같은 매체와 어떻게 연결 할 건지에 대해 생각한다. 내 노래가 나왔는데 누가 유튜브에 내 노래를 추천한다며 그냥 올리면 그건 저작권법 위반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거 추천하지 말라고 하기는 어렵다. 내 음악을 듣고 좋아한다는데. 그게 또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주니까. 이런 상황에 맞는 뭔가가 나올 것 같긴 하다.

트위터로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매체의 변화가 창작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나.
이적 : 예를 들어 미니홈피 BGM으로 인기 있었던 ‘하와이안 커플’은 미니홈피가 없으면 사랑받기 불가능한 곡이다. 부르기도 애매하고 퍼포먼스를 할 수도 없고. 후크 송도 결국 지금 청취 패턴에 딱 맞는 형식이다. 30초 안에 구매를 결정하는 시대니까.

그러면 앨범의 사운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겠다. 은 보컬이 사운드의 변화를 이끄는 느낌이 뚜렷하게 나오도록 안배된 믹싱을 하기도 했고, 가사에 따라 변화하는 사운드를 정확히 들어야 훨씬 많은 걸 느낄 수 있는데.
이적 : 아무래도 그렇다. 지금은 노트북이나 MP3 플레이어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게 일반화 돼 있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음질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번 앨범을 만들고 나서 별 생각 없이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음질이 너무 나빠서 녹음이 잘 못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폰을 바꾸니까 소리가 달라지더라. (웃음)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쓴다는 거니까 목소리와 멜로디만 크게 강조된 음악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도 예전에는 소리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 분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생활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서 음악을 듣는 포인트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 음악은 변화를 따라가는 대신 오히려 더 과거의 스타일로 간 것 같다.
이적 : 그렇다. ‘빨래’ 같은 곡은 앞에 1분을 들어도 도대체 이게 언제 확 치고 나오는 멜로디가 나오는지 알 수 없으니까. (웃음) 사람들은 최대한 앞에서 치려고 하는데, 나는 거기에 못 쫓아가거나 안 쫓아가는 것 같다. 내 음악은 음악적으로 한 번에 확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음악 전체적으로 봐야 하고, 노래를 버무리면서 불러야 한다. 그래서 음악인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유희열 씨나 김동률 씨는 연주곡으로 만들어도 괜찮은 음악이고, 내 음악은 그러면 애매한 곡들이 있고.

“기본적으로 정서의 힘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 같다”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이야기꾼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순간의 감각보다는 서사가 있는.
이적 :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다만 앞으로는 이렇게 음악을 하기는 어려워질 것 같다. 그래서 디지털 싱글도 한 번 해보고 싶고. 싱글로 내면 마음 편한 것도 있다.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해보고 싶을 때 그걸 앨범으로 내면 앞뒤 곡들, 더 나아가서는 앨범 전체까지 그 곡을 염두에 두고 전개해야 하는데, 싱글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이전에 했던 다른 뮤지션들과의 프로젝트 활동 같은 건 당분간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예전에 많이 해서. (웃음)

아예 다른 분야의 창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음악이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창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적 : 40대가 되면 음악극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건 음악과는 또 다른 형식이고, 그에 따라서 내용도 달라질 것 같다. 대중음악은 하나의 정서,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3, 4분의 시간동안 사람을 벅차오르게도 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고. 그게 좋다. 그래서 그런 변화를 담은 가사를 많이 만든 것 같고. 때로는 음악에 대해 테크니컬한 것에 대해 신경 쓸 때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서의 힘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에서 하고 싶은 음악을 자연스럽게 하는 쪽으로 가게 되고.

당신 세대의 뮤지션들을 인터뷰해보면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알릴 것인지에 대해서 거의 똑같이 고민하게 되더라.
이적 : 사실 유행가라는 게 말 그대로 유행하는 음악이다. 사람들이 많이 들으니까 나도 들어볼까,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다 부르는데 나도 한 소절 부를 수 있을까하는 노래인데 요즘 그런 정서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더 TV로 집중이 되는 것 같고.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예능을 통하지 않으면 노래 자체로 의미가 생기긴 어려운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망가졌다는 말을 듣고. (웃음)
이적 : 맞다. 아이돌은 원래 그렇게 나가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잘못 하면 “쟤 왜 저렇게 됐니?” 이런 소리 듣는다. 선을 지켜가면서 간을 보는 게 필요하다. (웃음) 그래서 라디오가 유일한 답이었는데, 라디오도 점점 입지가 축소가 되니까, 알리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 안할 수 없다.

“애가 중학생이 됐을 때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다”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이적│“아이가 자라서 들어도 괜찮을 음악을 하고 싶다” -3
그런데도 에서 같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적 : 그게 안 되니까. 내 마음대로 대중의 마음에 맞는 음악을 할 수 있으면 내가 JYP지. (웃음) 이대로 음악을 만들면 히트한다 그런데 이 콘셉트대로 하려면 여자 4명이 필요하다. 이런 걸 읽어낼 수 있고, 그런 음악을 좋아해야 그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분들처럼 할 수 있는 건데 나는 그런 걸 읽을 능력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음악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라 일단 자신이 만드는 음악을 많이 좋아해야 한다. 내가 그런 음악을 좋아했다면 쭉쭉 만들 텐데, 내 호흡에 안 맞으니까 이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신이 지금 추구하는 음악은 뭔가.
이적 : 더 길게 보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더 그렇게 됐는데, 내 아이가 나이 들어서 이 앨범을 들어도 “아빠 앨범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그리고 애가 중학생이 됐을 때도 어떤 의미로든 현역으로 활동하고 공연했으면 싶고. 인기는 점점 줄어들겠지만. (웃음)

정말 아이는 세상을 바꾸는군. (웃음)
이적 : 하하. 아이가 자란 후에도 내가 내 세대와 계속 호흡하고 있는 걸 보고 “아빠 괜찮아, 멋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게 아빠 마음인 것 같다. (웃음) 그만큼 내 음악이 긴 생명력을 가졌으면 좋겠으니까, 지금 당장은 히트 못하더라도 시간이 한 참 흐른 뒤에도 그 때 그 음반은 괜찮은 음반이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게 나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또 모르지. 애가 컸는데 “아빠는 왜 TV에 안 나와?” 이러면 그거에 자극 받아서 “OK, 너 학교에 갈 때 할 얘기 만들어줄게” 하고 이상한 무리수를 둘 수도 있지만. (웃음) 아직은 애가 그럴 나이가 아니니까 일단 지금은 그런 음악을 하면서 살고 싶다.

사진제공. 뮤직팜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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