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맡은 배역에 무섭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래요.” 취재 전 미리 귀띔을 듣고 갔지만 그렇다고 놀라움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KBS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철없는 어른아이 현추 역을 맡은 윤희석은 어디까지가 본인이고 어디부터가 현추인지 가늠이 안 갈 정도로 배역 안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조명 기구와 카메라의 위치를 재조정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순간에도 그는 천진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팔다리를 흐느적댔다. 미워할 수만은 없던 배신자 손태순()이나, 일그러진 미소 틈새로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던 조현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찾아 온 휴식시간, 윤희석은 “이 의상 그대로는 인터뷰를 진행할 순 없다”며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마치 현추라는 인물에서 윤희석으로 돌아오기라도 하는 듯. 문득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전작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이 카멜레온 같은 배우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졌다.

트위터를 보니 추석 연휴 내린 폭우로 시금치랑 배추가 다 떠내려갔다고. 상심이 크겠다. (윤희석은 부모님을 도와 인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윤희석: 아니, 내 트위터는 어찌 알고! (웃음) 올해는 이상하게 일 거들러 갈 때마다 계속 비가 오더라. 떠내려 간 후에 다시 심긴 했는데 또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다소 상심한 목소리로) 올해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 번외편이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
KBS <드라마 스페셜> ⑫│윤희석 “단막극은 미래지향적이다”
⑫│윤희석 “단막극은 미래지향적이다”" />
인연이 참 재미있다. (이하 ) 때 배우들이 모였다. 심지어 대립구도로 있던 사람들과 가족의 연도 맺고.
윤희석: 할 때 다들 워낙 친했으니까. 혹자는 뭐 “ 번외편”이라고 얘기도 하고. (웃음)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다.

철없는 현추는 어른스러운 지완과 대비를 이루다가 조금씩 서로 닮아가는 인물이다. 서신애와의 연기는 어떤가.
윤희석: 쉽게 말하면 어른아이와 애어른의 만남인 거다. 현추가 가지고 있는 소년성, 지완이 가지고 있는 성숙함이 서로에게 시너지를 주고 하모니를 이루는 거니까. 신애 양은 워낙 연기를 잘 하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서 함께 연기하는 데 문제는 없다. 내가 어떻게 하면 소년성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소년성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나.
윤희석: 성인 남자들도 누구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가지고 있다. 다만 그걸 얼마나 표현하느냐의 차이겠지. 어렸을 때는 뭘 해도 재미있고 즐겁고, 어른의 눈으로 보면 유치한 걸 가지고도 깔깔대지 않나.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동적이니까, 오버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떤 재미있는 액션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 중점을 뒀다.

백수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소년을 간직한 인물이란 점에서 본인은 현추라는 인물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윤희석: 현추가 처한 상황 자체가 나와 비슷한 거 같다. 배우라는 직업이 사실 불러주기 전까지는 늘 백수의 상태니까. 사회 생활하는 친구들은 벌써 다 장가갔고, 그 친구들하고는 쉬 어울리기도 힘들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도 어른스럽지 못 하고, 실은. (웃음) 철이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비슷한 거 같다.

“1년에 한 편 이상은 공연을 꼭 하려고 한다”
KBS <드라마 스페셜> ⑫│윤희석 “단막극은 미래지향적이다”
⑫│윤희석 “단막극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럼 올해 맡은 의 손태순이나 의 조현감 같은 역할 중에선 현추가 본인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편인가.
윤희석: 그렇다. 이번 작품은 내가 선택하기도 했고. 지금 내 마음, 내 모습에 조금만 연기를 첨가하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배역이나 조금은 그렇지 않나? 윤희석이 아주 배제된 캐릭터는 없는 거 같다. 어차피 모두 나로부터 출발하는 거니까. 구석 구석 윤희석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 HDTV 문학관 - 봄, 봄봄 >도 그랬지만, 유독 단막극에서 인상 깊은 순간을 많이 남겼다. 단막극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윤희석: 단막극은 TV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니시리즈를 60~70분 안에 담아낸 정도의 굉장한 밀도가 있으니까 좀 더 섬세하다. 감독이나 배우에게도 기존의 연기나 연출 문법들을 탈피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미래지향적인 거다. 앞으로 수 년, 수십 년 뒤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미리 시도해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때론 서툴러 보일 때도 있겠지만.

작년까지 , 과 같은 뮤지컬 무대에도 꾸준히 서 왔다. 앞으로도 계속 뮤지컬 무대에 설 계획이 있나.
윤희석: 꼭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라도 1년에 한 편 이상은 공연을 꼭 하려고 다짐한다. 올 연말에 못 하면 내년 초라도 하려고. 사실 나는 공연이 주업이니까.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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