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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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딸을 키우는 엄마라면 다들 내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할 사윗감에 대한 바람이 아마 몇 가지 쯤 있을 겁니다. 사람 됨됨이가 아무리 좋아도 돈 없으면 사는 게 지옥이지, 하는 분도 계실 테고 학벌이나 명예를 우선으로 하는 분도 계실 테지요. 저는 무엇보다 제 아이가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 휘말렸다 해도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뭐든 속내를 털어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게 되더군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심정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배우자로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배우자의 연을 맺었으면 서로 이해해주고 지지해줄 단 한 사람이 내 남편이고 아내라면 좋지 않겠어요?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것이지요
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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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간 SBS 를 통해 지켜본 박현정 씨의 남편 양원경 씨는,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한 마디로 최악의 사윗감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저런 남자도 있나 싶게 전근대적인 사고를 지닌 데다, 수년 간 온갖 고생 다 시키다가 이제 좀 살림이 폈다 싶으니 보란 듯 가정을 등한시 하질 않나, 특히나 돈에 인색하기까지 한 점은 보는 사람조차 질리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백하자면, 예쁘고 현숙해 보이는 현정 씨가 뭐가 부족해서 저런 사람을 포기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곤 했습니다. 자식 때문에 눌러 참고 살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었죠. SBS 의 부부 솔루션 특집 ‘자기야 부부 캠프’ 첫 날에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어요. 아니 오히려 ‘큰돈을 통장에 쟁여두고도 없다, 없다하며 시치미를 떼 왔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짐스러워하는구나’라는 자괴감에 견디기 어려웠다는 현정 씨의 눈물어린 하소연을 듣고 난 후에는 마치 내가 현정 씨 언니라도 된 양 더더욱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그래요. 둘째 날 손을 잡고 마주한 두 분이 진심을 담은 속 얘기를 꺼내 놓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알고 보니 현정 씨는 부모님이 자주 심하게 다투시는 바람에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죠? 밤이면 밤마다 닥쳐올 전쟁이 두려워 자리를 펴고 애써 잠을 청했다고요. 잠을 자야 아침이 오고, 그래야 싸움이 멎을 테니까요. 그러다 급기야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아버지가 없으면 좋겠다, 차라리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면서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너무나 빨리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고, 그랬으니 어린 가슴엔 깊은 회한만 남았을 밖에요. 나중에야 아버님이 외로움에 사무쳐 그리 하셨으리라는 걸 이해하게 됐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그저 가족을 괴롭히는 몹쓸 사람으로만 다가왔을 거예요. 그제야 비로소 알겠더군요. 왜 현정 씨가 남편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왔는지를. 이미 현정 씨는 아버지와의 경험을 통해 남편이 왜 저런 엇나간 행동들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던 거예요.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한 없이 약한 남자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던 거죠. 부부 사이란 과연 남들은 알 수 없는 부부만의 사연과 끈끈한 감정 교류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맞잡은 손, 이제는 놓지 마세요
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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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아서, 술 먹고 아버지처럼 집안을 풍비박산을 만들지 않을 것 같아서 양원경 씨를 선택했다는 말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선택한 남편인데 결국 딸 수인이에게서 ‘엄마는 동생과 내가 싸우면 둘이 똑 같아서 싸우는 거라면서 왜 아빠 엄마는 싸우느냐. 우리가 너무 불안하니 제발 싸우지 말아 달라’라는 편지를 받고 말았으니 왜 아니 억장이 무너지겠어요. 현정 씨는 단지 나를 아껴주고 아이들 잘 챙겨주는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지녔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반면 양원경 씨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평생을 돈에 찌들어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지긋지긋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내인 현정 씨가 점점 자신의 어머니와 똑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기막힐 밖에요. 게다가 원인 제공을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자신이 했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터라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잘못이라 해도 그 곱던 아내가 한 없이 피폐해지는 건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고요. 두 분 모두가 각자 안고 있는 이 같은 문제들을 그때그때 꺼내놓고 풀어갔더라면 좋았겠지만 마냥 피하기만 해왔기에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던 거죠. 다행히 양원경 씨가 ‘자기야 캠프’를 빌미로 이제 강한 척 해왔던 자신만의 틀을 깨고 현정 씨의 손을 잡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자기야 캠프’를 주관하신 상담 소장님 말씀은 저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현정 씨네 부부는 어린 시절 내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마음 속 깊이 상처로 남아 있는 케이스라며 내 부모의 갈등이 내게 상처가 되었듯 우리 부부의 다툼도 내 아이에게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고 하셨죠. 불행이 전수된다니, 행복하게 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다니, 얼마나 끔찍한 얘깁니까. 무미건조한 성격 탓에 평소 소 닭 보듯 지내온 우리 부부도 반성 많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정 씨, 우리 ‘누구 품에서 울어야 한다면 내 배우자 품에서 울어라’는 소장님 말씀,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자고요.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박현정이라는 이름을 찾고자 애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냥 양원경 씨의 부인으로, 수인이 어머니로 남기엔 너무나 아까운 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부인으로, 어머니로만 남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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