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영화 는 올해의 최고작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최고의 문제작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영화 내내 잔인한 폭력 묘사와 김지운 감독 특유의 유머가 뒤섞인 이 작품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호오가 갈리는 반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결과물과 함께 이병헌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졌다. 이미 할리우드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한 이병헌은 왜 상업영화로서는 위험천만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직접 그에게 물었다.

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 시사회에서는 결과물을 보고 좀 충격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이병헌 : 충격까진 아니고. (웃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와의 느낌과 다른 건 있었다. 시나리오에서 영화의 잔혹성이나 폭력의 수위가 모두 드러나는 건 아니니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굉장히 힘 있는, 복수영화 치고는 색다른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찍어가는 과정에서 오, 이거 좀 세게 나오겠구나 했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세긴 세구나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하는 생각도 났고, 촬영장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도 생각나서 좀 무거웠다. 시사회가 끝나고 민식이 형(최민식)하고 감독님하고 셋이서 대기실에서 잠깐 있었는데 서로 아무 말도 못했다. 민식이 형이 “라이터 있냐?”(웃음) 이러면서 딱 한마디 했다.

“제한 상영가 판결?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했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영화가 제한 상영가 판결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어땠나.
이병헌 :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했다. 그런데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관객의 입장에서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나왔길래 싶더라.

최민식은 배역에 더 몰입했으면 감옥에 갔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웃음) 본인은 배역에서 빠져나오기 어떤가. 워낙 잔인한 행동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이병헌 : 크게 문제는 없다. 배우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캐릭터의 버릇들이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것 말고 크게 문제는 없다. 대신 영화의 여운이 남아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잔혹한 장면이나 폭력이 아니라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느낀 감정들이 남는다. 이게 뭘까하는 허탈함이나 헛헛함이 오래 간다.

그런 헛헛함을 주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이병헌 : 이 영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결국 자기마저도 잃어버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수현이가 느끼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게 시나리오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복수를 다루는 영화는 통쾌함을 주지만 이 영화는 갈수록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지는 기분을 준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수현의 모습을 보면서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거 같다.

수현은 모든 사람들이 말리는 상황에서도 살인마 경철에게 계속 복수를 한다. 그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이병헌 :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면 복수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복수를 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면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본다. 이 영화는 수현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남자가 약혼녀를 아주 잔혹한 형태로 살인마에게 잃었다. 사람들은 백이면 백 찢어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수현도 그렇게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복수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내면이 파괴된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복수의 과정을 고스란히,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거기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 거다. 왜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지. 수현이 그런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 를 할 때가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수현은 대사가 거의 없이 미세한 표정 변화와 행동으로 캐릭터를 보여줘야 했다. 그 부분에서 특히 신경 쓴 게 있나.
이병헌 : 평상시에도 실제 생활에서 사람의 표정이 다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라 연기를 할 때는 약간씩 표정이 과장 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보통 때 나오는 표정보다 덜해도, 그 기분만 드러내고 있어도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하면 그 때 스크린에는 얼굴 크기가 집 한 채만 해지니까. 그 큰 얼굴에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다 전달된다고 믿는다. 어떤 표정을 짓느냐보다 영화에서 어떤 기운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 , , (이하 )까지 모두 액션이 많은 작품이었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분위기와 스타일은 전혀 달랐고. 이런 작품을 연이어 선택한 이유는.
이병헌 : 이유나 계획은 없었다. 읽다가 좋다면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다만 는 전략적인 선택이 있었다. 미국에서 는 워낙 어마어마한 인기를 끄는 작품이고, 주변에서 꼭 하라는 말이 많았다. 특히 에이전트가 강하게 권유했다. 할리우드에서 하고 싶은 작품을 하려면 이런 작품은 필수적으로 해야한다는 조언이 컸다. 하지만 나머지는 온전히 내 감정에 따라서 선택했다. 특히 , , 를 할 때가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내 배우로서의 경력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작품을 결정할 때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는데, 그 때를 지나면서 나를 던지는 스타일이 됐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이런 식으로.

어떻게 그런 변화가 찾아왔나.
이병헌 : 에 출연할 때 정말 많이 고민했다. 거의 1년 동안 고민했는데, 작품 자체가 연기 된 탓도 있었지만 그 때 와 의 시나리오를 함께 받았다. 그 때 를 하기로 하고, 도 하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너무 안 맞았다. 그래서 스케줄을 맞춰줘서 작품 하나 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면 들어가겠다고 했고, 감독님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맞춰주긴 뭘 맞춰줘. (웃음) 촬영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를 찍었고, 결국 에라 모르겠다 그냥 도 하자 이렇게 됐다. (웃음)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까 배우 생활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부딪치며 할 수 있는 게 앞으로 몇 년일까 싶었다. 그러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다 결정했다.

“믿음직한 배우가 되고 싶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이병헌 “복수를 해서 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될 거다”
그런데 그 선택들이 결국 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병헌 :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전략가가 틀림없다고 한다. (웃음) 작가주의적인 작품과 상업주의적인 작품을 동시에 선택한 게 대단한 전략이라는 거다. 하지만 사실 난 에라 모르겠다는 기분으로 해버렸다. 그게 결국 운인 것 같기도 하고. 배우에게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는데, 그 때 선택의 결과가 그 사람의 기운을 바꾸는 것 같다.

국내외를 오가면서 활동 중인데, 할리우드에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이병헌 : 일단 내년 초쯤 속편이 예정돼 있다. 그 작품을 지나면 그쪽 시장에서 나에 대한 이런 저런 평이 있을텐데, 할리우드 작품이라는 이유로 아무 작품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국을 기본으로 일하다 좋은 기회가 오면 가서 찍고, 그렇게 하고 싶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뭔가.
이병헌 :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믿음직한 배우.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도 “저 친구가 나와? 나는 저 친구를 믿으니까 영화 한 번 볼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거라면 어느 정도 이룬 것 아닐까.
이병헌 : 그런데 이번 영화가 너무 잔인해서.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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