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 요정이었다. 현실로 내려왔다. 1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모자가 벗겨졌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며.
유진
유진
S.E.S. : 바다(Sea), 유진(Eugune), 슈(Shoo)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 유진은 자신이 살던 괌에 온 이수만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 유영진에 따르면 당시 S.E.S.는 “테디 라일리의 뉴 잭 스윙 스타일을 구현한 여성그룹”으로, 심플한 비트를 바탕으로 ‘느리지만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들려줬다. 또한 곡 내내 멤버 전원이 움직임이 많은 군무를 춰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보다 팀 전체의 밝고 건강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데뷔부터 해체까지 큰 잡음이 없었고, 유진이 “친자매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상적인 걸그룹의 길을 걸었다. 당시 유진은 스스로 “털털 터프 솔직 김유진”이라고 할 만큼 털털했지만, 예쁜 외모로 ‘요정’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또한 “친구와 같이 놀거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거나 하는 평범한 것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 외롭기도 했었다고.

정해익 : SM엔터테인먼트에서 S.E.S.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고, 이후 g.o.d. 등을 매니지먼트한 제작자. S.E.S. 해체 후 유진과 계약, 솔로 활동을 매니지먼트했다. 하지만 개인 활동을 통한 멤버들의 캐릭터보다 팀 전체의 분위기를 강조한 S.E.S.의 이미지는 솔로활동에 오히려 장애물이 됐다. 솔로로 S.E.S.처럼 섹시하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음악을 하기란 어려웠고, 이미 뚜렷하게 만들어진 ‘요정’ 이미지는 대중이 새로운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했다. 음악의 완성도 이전에 대중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릴 방법을 찾지 못한 셈.

이승렬: 유진이 출연한 SBS 를 연출한 감독. 이승렬은 유진에 대해 “가수의 섹시한 이미지와 드라마의 캐릭터가 크게 달라 캐스팅을 고민했지만 실제 연기를 보니 왜 가수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유진은 와 KBS 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에서는 3m 깊이로 수영하는 것을 대역 없이 할 만큼 열심히 했다. 또한 남자가 되면 “화가 나면 코피 나도록 싸움도 하고”싶을 만큼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병 한 번 걸린 적 없던” 탓에 당찬 시골여성의 캐릭터를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걸그룹의 인기 가수가 어느새 “사람들과 팀워크를 이루는 게 재미”있고, “사람들이 내가 연기한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이 올지” 궁금해 하기 시작하며 연기에 빠졌다.

김재원 : MBC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에서 유진은 남자와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보낸 뒤 아이를 갖는 아이 엄마였다. 하지만 는 당시 MBC 이후 많이 등장한 ‘동거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승렬 감독은 유진을 “초창기의 최진실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했지만 착하고, 당차고, 씩씩한 여자 캐릭터는 과거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부터 , KBS , 최근의 MBC 등 작품은 계속 이어졌지만, 어떤 붐을 일으킬 만큼 대중적인 반응을 얻는 경우는 드물었다. ‘요정’ 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돌이 갈수록 비슷한 배역을 맡는 ‘생활 배우’에 가까워지는 애매한 상황.

올리비아 핫세 : 영화 으로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배우. 유진은 “헤어스타일이 바뀌면 더는 그런 얘길 못 들을 거 같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확실히 닮았다. 올리비아 핫세와 닮아 영화 에 출연제의를 받은 건 유명한 일화. KBS 에서 볼 수 있듯, 이마를 드러낸 긴 머리의 유진은 언제 어느 때나 아름답다. 하지만 그건 유진의 딜레마 아닌 딜레마였다. 유진의 똑 떨어진 미모는 많은 드라마 감독들이 그를 찾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유진에게 얼굴만큼이나 정석적인 착한 여주인공을 요구했다.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력, S.E.S. 시절부터 쌓은 인지도는 유진이 꾸준히 연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정작 그 얼굴로 다른 연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다. 아름다운 요정의 현실적인 딜레마.

이민기 : MBC 와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에서도 유진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밝고 당찬 여성을 연기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강원도 사투리를 썼고,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괴로움을 안고 살았다. 전작들과 달리 캐릭터를 기억하게 할 수 있는 특징은 물론, 시청자들이 캐릭터를 보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 여기에 대본에 악센트 기호 표시를 하고, 동료에게 강원도 사투리를 배우면서 연기 또한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또한 에서는 일상을 탈출하고픈 가수를 연기, 보다 현실적인 일상 안으로 들어갔다. 정석적인 연기를 안정적으로 하던 배우가 자기만의 ‘악센트’를 넣는 방법을 찾은 셈. 유진의 진짜 미덕은 외모가 아니라 어쨌건 꾸준히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일지도. 영화 의 김정권 감독은 유진의 뮤지컬 을 보고 “깜짝 놀랐”고, “꾸준하게 자기 트레이닝을 하고, 연기자로서 노력”하는 모습에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이동욱 : 와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유진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은 흥행 결과와 별개로 지금까지 유진의 연기 중 베스트를 보여줬다고 할 만한 작품. 유진은 반듯한 미녀 대신 반복적인 생활과 넉넉지 않은 살림에 찌든 도서관 사서를 연기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약간은 까칠하고, 상황 파악을 잘 못하는 이동욱에게 “아, 장사 한두 번해?”라며 역정 내는 유진의 모습은 새로운 것이었다. 특히 조금은 툴툴 거리는 말투로 어떤 상황이든 조금은 시니컬한 초반의 일상 연기는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작품 속 캐릭터를 금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 남들에게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연기와 배역 모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 셈.

윤시윤 : 에 함께 출연 중인 배우. 이 작품에서 유진은 드디어 ‘착한 여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한다. 주인공 김탁구(윤시윤)에 대한 사랑과 현실적인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을 벌레 보듯 하는 서인숙(전인화)에 눌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은 이전의 유진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유진의 모자가 벗겨지고 긴 머리가 나오는 순간, 그는 자신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한다. 요정에게 현실적인 옷이 입혀지면서, 새삼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먼 길을 돌아, 유진은 다시 자신이 매력적일 수 있는 무대를 찾은 건 아닐까.

소녀시대 : 유진이 S.E.S. 시절 몸담았던 소속사에 있는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곡도 ‘다시 만난 세계’였고, S.E.S.의 일본진출 첫 싱글에 수록된 곡의 제목도 ‘다시 만난 세계’였다. 유진은 얼마 전 KBS 에서 웃으며 “S.E.S.가 소녀시대보다 더 잘 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S.E.S.와 소녀시대 중 어느 쪽이 더 인기가 있는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소녀시대도 언젠가는 유진처럼 혼자 걷는 길을 가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 누군가는 유진보다 더 스타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전성기 같지 않은 인기에 한숨 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얼마나 꾸준히 하면서 무엇을 얻느냐는 것 아닐까. 유진이 이후 갑자기 흥행작을 연달아 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그는 또 여러 편의 범작에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진은 그 와중에 계속 연기를 하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10대 시절 요정으로 불리던 아이돌이 30대를 목전에 둔 지금도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Who is next
S.E.S.가 소속됐던 SM엔터테인먼트의 보아와 미국 에이전시 계약을 맺은 CAA 소속의 톰 크루즈의 영화 에 출연한 와타나베 켄이 나온 영화 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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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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