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 “좋아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안 좋아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저는 성공한 프로그램들보다는 실패한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요. 녹화하러 갔는데 세트가 없어진 것도 있고. 그때는 너무 화나고 그랬지만 그게 없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어떤 프로그램을 실패하고 나서 다른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게 되는데, 이건 저번에 했는데 이런 문제들이 있었더라, 그런 것들을 알고 고치면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니까 프로그램의 목표에 갈 시간을 단축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유재석, 와의 인터뷰에서.

데뷔 20년. 늘 기회를 원하던 무명 개그맨은 대한민국 예능의 정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불안하다. 그리고, 계속 달리고 있다.
유재석
유재석
구봉서 : 유재석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코미디언. 어린 시절 코미디언이 되고 싶던 그는 학교에서 “띠가 뭐냐?”고 물어보면 “땀띠에요” 같은 썰렁한 개그를 하며 아이들을 웃기길 좋아했다. 집에서는 여동생들이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숨기자 동생들이 갖고 놀던 남자 인형의 머리를 깎은 뒤 “군대 갔다”고 할 만큼 장난기도 많았다. 하지만 유재석은 집안 사정으로 4번 전학을 하며 새로운 사람과 낯을 가리는 성격이 됐다. 친구들이 그를 ‘유티’(유재석+E.T.)라고 부르자 상처받아 결석하기도 했을 정도. 그의 프로그램들이 호흡 잘 맞는 친구들과 벌이는 놀이판 같은 건 이런 성격 때문일지도. 또한 유재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장이 됐는데, 어머니는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해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대신 학교에 와서 청소했고, 그는 이 모습을 보며 울었다. 장난꾸러기의 천성과 조숙하고 내성적인 성장 과정의 결합.

찍새 : 유재석의 고교 시절 친구. 유재석은 KBS 에서 그와 산에서 놀다 여자 깡패들에게 맞은 에피소드를 말하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고2때 찍새와 KBS 에 출연, 영화 을 패러디한 콩트로 연말 결선에도 진출했다. 두 사람은 1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방송사를 설득, 학교에 결석을 요청하는 ‘협조공문’까지 받으며 콩트를 준비했다. 당시 유재석은 “수학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 수학 책을 펴보지도 않을 만큼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반면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길 원해 갈등이 많았다. 유재석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독서실에 간다거나 하는 소심한 반항을 했다고.

최승경 : KBS 에 함께 출연, 장려상을 받은 개그맨. “내가 방송에만 나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던 그는 상을 받으러 나오면서 귀를 파며 나오는 건방진 모습으로 선배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고, 그는 콩트 프로그램의 조연을 벗어나지 못했다. KBS 의 ‘남편은 베짱이’처럼 뻔뻔하고 촐싹거리는 남편 같은 캐릭터는 기막힐 정도로 잘했지만 심형래, 이창훈 등 바보 캐릭터가 대세였던 당시에는 개인기 하나 없이 재담과 타이밍만으로 승부하는 캐릭터는 주목받기 어려웠다. KBS 의 ‘봉숭아 학당’의 깐죽거리는 반장이나 여성적인 성격의 남자 등이 그가 맡았던 역할들. 게다가 사람들 앞에만 서면 무대 울렁증이 도지는 탓에 남희석, 김용만, 김국진처럼 버라이어티 쇼에 진출할 수도 없었다. 집에는 개그맨이 된다고 큰소리쳤는데 되는 건 없었다. 개그맨을 관둘지 고민하던 시기.

김용만 : 유재석이 고민 상담하는 형. 근육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자신이 다니던 헬스클럽에 그를 데려다줬기 때문. 김용만은 그가 무명시절 실의에 빠져 일을 그만두고 김태균과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자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유재석은 군복무시절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오버”하던 자신을 반성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길은 안 보였지만 그만두려고 하면 “이 하나씩 들어와 그만두지도 못하던” 시절. 불교 신자인 그는 부처에게 “이 길에 들어서긴 했는데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기회를 주시면 오늘 기도한 거 잊지 않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하기도 했고, 당시의 경험을 되새기며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니까 언제나 (정상에서 내려올)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다”는 도인에 가까운 마인드를 갖게 된다.

故 최진실 : 1990~2000년대 최고의 스타. 2000년 MBC 예능국 PD였던 은경표에게 “KBS에 메뚜기라는 개그맨이 진짜 웃기더라”며 유재석을 추천했다. 당시 유재석은 매일 오락 프로그램들을 녹화, MC의 멘트가 나오기 전 정지버튼을 누르고 자신이라면 어떤 멘트를 해야 할지 고민했고, 생계 해결을 위해 온갖 토크쇼와 밤무대에 나가며 무대 울렁증을 극복하기 시작했으며, 메뚜기 탈을 쓰고 리포터 역할을 하며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훗날 김제동은 “유재석이 좋은 거 보자며 집에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오더라. 알고 보니 자기가 출연한 방송을 녹화한 테이프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유재석은 KBS 에서 멀리뛰기 7m 50cm를 기록하며 우승, 메뚜기 같은 점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범수 : 은경표 PD가 MC를 맡긴 MBC 의 ‘동거동락’에 함께 출연한 배우. 유재석은 ‘동거동락’에서 MC로서 자신의 특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연예인을 모아놓고 즐거운 놀이판을 만들었고, 이범수 등 출연자들의 특징을 잡아내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며, MC이자 출연자들에게 구박당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건 평소엔 소심하지만 놀 자리가 깔리면 마음껏 노는 ‘오락부장’이던 그를 위한 자리였다. ‘동거동락’은 MBC , SBS 등으로 이어지는 젊은 연예인들 중심의 집단 버라이어티 쇼의 시작점이었고 버라이어티 쇼가 캐릭터, 스토리, 게임 등을 모두 망라한 엔터테인먼트가 됐음을 보여줬다. 유재석은 ‘동거동락’을 시작으로 MC와 다른 출연자들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시대의 MC의 기준을 제시했다. MBC 에서 볼 수 있듯, 그는 프로그램 진행과 출연진의 하나가 돼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오가는 MC다.

강호동 : 유재석과 여러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MC. 두 사람은 사석에서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친구이자 2000년대 후반 오락 프로그램의 대세다. KBS 의 ‘MC 대격돌’은 표면적으로는 ‘쿵쿵따게임’을 했지만, 게임을 빌미로 출연자들끼리 서로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약점을 들춰내며 끊임없이 치고받았다. 이는 MBC 의 ‘퀴즈의 달인’의 원형이라 할만하다. 또한 < X맨 >은 ‘동거동락’과 유사한 틀을 가졌지만 강호동이 ‘강팀’의 주장이 돼 게임을 휘젓고, 이를 유재석이 조절하며 보다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만들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유재석의 진행과 출연자의 연애마저도 승부를 붙일 만큼 리얼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능한 강호동이 만나 ‘리얼’한 ‘버라이어티쇼’가 탄생했다.

김원희 : 현재 만 6년을 넘긴 MBC 의 공동 MC. 과거 오락프로그램은 시청률과 별개로 MC의 계약기간이나 방송사의 개편에 따라 폐지되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유재석은 , , KBS 등을 모두 5년 이상 진행 중이다. 이는 “9번 타자가 9번 타자 역할을 해주고, 외야수가 외야수의 역할을 해주면서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화합이 돼야 최강의 팀”이라는 지론을 가진 그가 자신의 뜻대로 팀을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명시절 때문인지 여전히 “개편 철엔 굉장히 불안”하고, 아버지가 사업실패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일을 쉴 수는 없었고, 쉬지 않으려면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유지해야 했으며, 그러면서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을 다하는” 예능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유재석은 그 모든 딜레마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예능을 추구한 사람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태호 : 의 PD. 의 ‘천하제일 외인구단’과 SBS 의 ‘유재석과 감개무량’ 등 ‘대한민국 평균이하’들의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표출”하고 싶어 하던 유재석은 을 통해 “자아실현”에 성공한다. 김태호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을 성장시켰고, 어떤 상황에서든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는 유재석은 김태호의 실험성을 만나 시청률과 트렌드를 동시에 가졌다. 또한 매주 장르가 바뀌는 을 통해 진행, 몸 개그, 성대모사, 토크 등 예능의 여러 요소를 복습했고, 때론 레이싱이나 에어로빅을 배울 수 있었다. 유재석은 필요에 따라 MC가 되기도 하고, 레이서도 할 수 있으며, ‘식객’, ‘궁밀리어네어’ 등에서는 실제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도 된다. 이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에 MC들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능력이다. 이제 그는 김구라의 말처럼 “방송도 더할 나위 없이 잘하고, 개인기도 있고, 연기도 잘하고,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잘하는” 예능인이 됐다.

박명수 : 에서 “유재석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다”던 예능인.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유재석에게는 박명수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박명수가 무엇이든 던지면 유재석이 그걸 확대하거나 박명수에게 되받아치는 것은 과 의 패턴 중 하나. 이는 유재석이 출연자들과 끊임없이 사적으로도 대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박명수의 대소사를 챙기고, 초반 하차를 고민하던 정준하를 설득해 하차를 막았으며, 방송 출연을 고민하던 신인 시절의 노홍철을 목욕탕에 데려가 몸을 씻겨주며 설득했다. 유재석이 박명수를 비롯한 동료들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쇼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드는 건 그가 평소 팀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유재석이 프로그램에서 다른 출연자들과 보여주는 팀워크는 단지 MC로서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뒤의 끊임없는 조정 작업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봉선 : 에 함께 출연 중인 MC. 유재석이 연출자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추천했다. 또한 리쌍의 길과 개리는 출연을 거쳐 과 SBS 의 ‘런닝맨’에 함께 출연한다. 팀의 중요성을 알고, 예능인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예인들과 친분을 쌓는 그는 꾸준히 새로운 인력들을 발탁하고, 그들의 캐릭터를 발견한다. 특히 코미디언 출신들로만 구성된 는 과 또 다른 의미로 유재석의 ‘놀이판’의 절정이다. 마치 조직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브라질 축구팀처럼, 유재석-박미선-박명수-신봉선은 프로그램 안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하며 어떤 게스트든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고, 토크뿐만 아니라 노래, 춤, 상황극 등 온갖 형태의 예능이 가능하다. 그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는 사이 모든 예능과 예능인을 겪은 유재석이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연출자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그만의 예능이다.

이효리 : 유재석과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 가수 겸 MC. 박명수는 < X맨 >, , 등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유재석과 만나기 전에도 예능과 가요계 양쪽의 스타였다. 그만큼 이효리는 유재석과 비슷한 위치를 누릴 수 있었고, 유재석을 거리낌 없이 구박할 수도 있었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보듯,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서로의 캐릭터를 만들었고, 프로그램의 두 축으로 작용하며 프로그램을 빠르게 자리 잡게 할 수 있었다. 강호동 역시 < X맨 >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1인자’가 각자의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요즘, 유재석이 강호동이나 이효리 같은 톱스타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는 ‘런닝맨’에서 거의 혼자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할 입장이다. ‘런닝맨’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이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그는 누구를 통해 자신의 프로그램에 새로운 색깔을 더할 수 있을까.

지석진 : 유재석의 친구. 다른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유재석은 자신의 예능계 동료인 그와 ‘런닝맨’을 끌고 간다. 두 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 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지석진은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석진은 빠른 호흡의 게임에 휘말려 아직 이렇다 할 역할을 못한다. 오히려 사진찍기 게임에서 활약한 개리나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는 광수가 스스로 캐릭터를 잡아나갈 정도다. 또한 계속 게임이 반복되는 ‘런닝맨’의 구성은 유재석마저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잡거나 스토리를 만들어낼 시간을 주지 않는다. ‘런닝맨’은 유재석의 장점을 묶어놓고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2회만으로 유재석의 실패를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그는 지난 20년 동안 시청률의 부담을 짊어지고, 가족을 짊어지고, 다른 출연자들을 짊어졌다. 하지만 그는 모든 부담 속에서도 모두를 끌어안았고, 그들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가 가족이나 프로그램의 흥행에 대한 부담을 비교적 떨쳐낼 수 있던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는 언제나 불안 속에서 자신과 동료와 쇼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예능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러니 한 번 지켜보라. 그는 지금 절정에 오른 순간 누구도 가지 못했던 예능의 길을 갈 기회를 얻은 것이니.

Who is next
유재석과 KBS 를 함께 진행한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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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윤종신김종국최지우휘성박찬호이효리장서희최양락다니엘 헤니이수근권상우소지섭이민호최명길정형돈김남주박진영손담비김태원신해철송강호김아중김옥빈이경규김혜자고현정원빈이승기닉쿤지진희박명수김혜수신동엽현빈윤은혜G드래곤하지원타블로김C유승호양현석강호동김태희김연아장동건장근석김병욱 감독정준하손석희정보석고수이병헌이수만김현중김신영장혁김수로이선균신정환김태호 PD강동원송일국노홍철조권김제동문근영손예진김수현 작가하하이미숙전도연유영진강지환김구라박지성탁재훈오연수최민수

글. 강명석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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