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는 KBS 는 최근 자주 등장하는 개발과 성장의 논리를 그리는 작품, 혹은 한국에서 태어난 수많은 사극과 궤를 같이 한다. 선악이 분명한 캐릭터, 한 회를 놓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폭풍전개는 가 많은 한국 드라마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요인이다. 많은 시대극이 그러하듯 9회를 앞둔 역시 초반 부모세대를 둘러싸고 응집된 에너지가 아들세대로 대물림되었다. 탁구(윤시윤)는 그동안 엄마와 자신을 찾으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왔지만, 이제 그의 손은 밀가루를 찾게 될 것이다. 탁구의 ‘천재적인 빵 만들기’와 함께 새로운 삼각관계로의 이야기를 시작할 를 강명석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분석했다. / 편집자주

KBS 는 MBC 의 한국현대사 버전 같다. 금와왕(전광렬)은 거성그룹 총수 구일중(전광렬)이 됐고, 욕심 많은 본처와 그의 아들은 서인숙(전인화)과 구마준(주원)이 됐다. 유화(오연수)와 주몽(송일국)처럼 김미순(전미선)과 김탁구(윤시윤)는 서인숙의 악행을 피해 살아남았고, 활 대신 빵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탁구는 숱한 고비와 시험을 거치며 ‘왕’으로 성장해 나간다. 는 시대극의 외형에 처럼 끊임없는 시련과 숙제로 주인공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미션 사극’의 엔진을 부착, 시대극의 오락성을 강화시켰다.

지워진 시대적 배경, 더 짙어지는 이데올로기
<제빵왕 김탁구> vs <제빵왕 김탁구>│왕의 자서전
vs <제빵왕 김탁구>│왕의 자서전" />이는 가 시대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배경을 생략한 이유다. 정확한 시대를 알려주는 배경이나 사건은 생략하고, 서영춘의 코미디나 구형 삐삐 같은 ‘복고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사라진 대신 탁구공처럼 빠른 이야기와 ‘높을 탁, 구할 구’라는 뜻 그대로 높은 자리에 오를 탁구의 다이나믹한 인생이 만드는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된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 생략될수록 그 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들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에서 남자들은 불륜을 저질러서라도 대를 이으려 하고, 여자들은 결혼 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남자는 아들에게 물려줄 터전을 만들고, 여자는 아들을 교육시킬 의무를 갖는다. 탁구와 사실은 한 실장(정성모)의 아들인 마준의 차이도 ‘핏줄’과 ‘어머니’에 있다. 아마도 탁구는 일중처럼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왕이 될 것이다. 가부장제의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그들은 회사와 나라에서도 모두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다. 그리고, 개발 시대에 우리가 성장의 과정보다 성장 자체에 환호했듯 는 탁구가 사건들을 빠르게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든, 는 개발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복원한다.

물론 탁구는 그의 시대를 바꿀 것이다. 거성 그룹과 달리 그가 제빵 기술을 배우는 팔봉제빵점은 여자인 양미순(이영아)도 빵을 만든다. 또한 거리의 깡패부터 일중까지 모두 폭력에 익숙한 시대에, 탁구는 빵을 만들며 폭력을 버린다. 회를 거듭하며 폭력과 가부장제의 전근대가 남녀평등과 비폭력의 현대로 넘어오지만, 이 변화는 희생에 가까운 탁구의 용서 때문이다. 어머니로부터 ‘착한 사람’이 되라고 배운 그는 인숙의 모욕을 참아내고, 어머니를 납치하려 했던 한 실장을 큰 원망 없이 바라보며,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실종시킨 진구(박성웅)마저 용서한다. 피해자의 용서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건 이상적이다. 진구를 용서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는 윤시윤의 연기, 정적과 어둠이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탁구의 표정을 잡아내는 연출은 시청자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용서 뒤에 숨은 깊은 고통은 사라졌다
그러나, 는 한 실장의 협박으로 일중을 떠난 뒤 ‘그리고 12년 후’라는 자막으로 오랜시간동안 부모 없이 거리를 방황했을 탁구의 끔찍한 청소년기는 생략한다. 다만 12년 후 코믹하게 액션을 보여주는 청년을 보여줄 뿐이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유경(유진)도 마준에게 “세상에는 깡패한테 돈 뜯기고 몇 대 얻어맞는 것보다 훨씬 험한 꼴을 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정폭력은 그의 아버지가 베개를 휘두르는 정도로 순화해 보여준다. 는 “결국 착한 사람이 이긴다”며 피해자의 용서에 대해 강조하지만, 피해자가 겪을 고통은 눈감는다. 는 개발시대의 피해자나 패배자로 규정된 사람의 성공담을 그리지만, 그 메시지는 오히려 가해자와 승자를 옹호하는 것에 가깝다. 피해자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건,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건 왠지 그 시대의 가해자에 대한 죄를 묻지 않고 피해자의 용서를 통한 화해로 봉합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는 ‘시대적인 시대극’이다. 한국 시대극이 상업적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의 개발시대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불편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가 궁금해질 만큼 오락적이다. 이건, 좀 무서운 일이다.
글 강명석

KBS 는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이다. 책 표지나 날개에는 이런 문장을 적어 넣으면 좋을 것이다. ‘김탁구는 어떻게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제빵왕이 되었나?’ 이는 이 드라마가 단순히 영웅담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는 2010년이라는 시대의 시선으로 1970년 즈음을 바라보며, 성공한 착한 사람 김탁구의 시선으로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조명한다. 구일중(전광렬) 집안사람들을 “편 가르기”에 능하다고 표현했던 어린 자림(김소현)의 말을 빌리자면, 는 김탁구(윤시윤)의 편에 서서 김탁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드라마인 셈이다.

더 이상 효력이 발휘되기 힘든 착한 사람 공식
<제빵왕 김탁구> vs <제빵왕 김탁구>│왕의 자서전
vs <제빵왕 김탁구>│왕의 자서전" />이러한 시선은 남아선호사상과 불륜, 치정, 폭력, 출생의 비밀이 혼재되어 폭풍처럼 전개되었던 아역 출연 시기에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의 1970년대는 점쟁이의 말과 미신이 유효하고, 내일의 사건을 예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다. 서인숙(전인화)이 듣게 되는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아올 것이고, 당신은 남편에게서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요지의 점쟁이 말은, 이 드라마 속에서 일종의 계시처럼 작용한다. “다른 씨”에게서라면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남편의 불륜에 맞추어 맞바람을 피우게 만들고, 이로 인해 한 운명을 나눠 가지게 된 탁구(윤시윤)와 마준(주원)이 태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탄생사를 그릴 때, 는 철저히 김탁구의 편에 선다. 불륜이라는 사실은 동일함에도 일중과 미순(전미선)의 관계와 인숙과 승재(정성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그 와중에 미순이 배경이 원래 단순히 가정부가 아니었고, 비교적 잘 사는 집이었음을 굳이 설명하며 탁구가 “어쩌다 생긴 불량품 쓰레기”가 아님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서 이 ‘편들기’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속 출생의 비밀은 막장의 키워드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비밀도 아니다. 왜냐하면 가 기억하는 그 시절에, 씨받이를 통한 불륜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하지는 않아도 수치는 아닌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순(전미선)은 “회장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린 탁구(오재무)를 일중의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는 일중의 “유일하고 특별한 아들”인 탁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성장하고 변화하기도 전에, 고난과 역경이 펼쳐져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 이름이 제목인 드라마에서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무엇이라고 말해도 “믿게 만들”만큼 매력적인 탁구의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어두운 부분을 중화시켜 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버린 이후 이러한 시선은 양날의 검이다. 출생의 비밀과 탁구의 운명을 놓고 쉴 새 없이 사건이 벌어지던 아역 시절과는 달리 탁구가 ‘제빵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게 될 7회 이후의 내용에서는 이야기가 급격히 단조로워질 위험이 있다. 성인이 된 탁구와 마준에게는 ‘부모의 사랑’ 외에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해졌고, 더 많은 인물이 이야기에 개입하게 된 이상 단순히 “착한 사람이 이기는” 공식과 탁구가 이미 가진 것들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운명에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작연필봉(作緣必逢). 맺은 인연은 반드시 만난다. 어머니를 찾으러 가겠다는 어린 탁구를 떠나보내며 팔봉선생(장항선)이 중얼거리는 이 사자성어 속에는 의 운명론이 담겨있다. 하필이면 팔봉선생의 빵집에서 탁구와 마준이 재회하게 된 것도, 결국 애증의 ‘빵’으로 둘이 경쟁해야만 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겹치게 되는 것도 모두 질긴 운명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가 아니고 저항하는 태도다. 운명대로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운명이 손드는 편에 서서 성공과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루하다. 성공한 제빵왕 김탁구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김탁구가 성장하며 성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인가. 이 둘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가 다 읽고 나면 허무해지는 성공 스토리 자서전이 될지 아니면 김탁구라는 매력적인 한 인물의 성장담이 될 지가 달려있을 것이다.
글 윤이나

글. 강명석 two@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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